도대체 어떤 기억을 간직 하셨길래…
아래 그림은 뭘까요?
예 맞습니다, 스토운헨쥐 (Stonehenge)입니다. 아직도 이런 돌 덩어리를 왜 허허 벌판에 가져다 놓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돌 덩어리를 가져온 사람은 무엇인가 의도가 있었을 것인데, 그만 기억 (memory)의 체인이 끊겨서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엔 널려 있는 것이 돌인데, 왜 하필이면 그 돌일까요? 사람들이 무엇인가 전하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을 했을 이 돌덩어리들이 우리에겐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군인가요?
프란쯔 카프카 (Franz Kafka)입니다. 문학에 관심이 없는 분은 얼굴만 보면, 잘 모를 테지만 국어 시간에 안졸았던 분은 실존주의문학의 선구자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카프카 문학은 제 “젊은 날” (?)에 저의 문학적 감성 (?)을 뒤흔든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카프카를 읽고 카프카를 생각하며 카프카를 되뇌곤 하였지요. 그러나 그의 생애는 외로움과 불운, 그리 질병의 연속이었고, 그의 문학마저 당대에는 아무도 알아 주질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shy했던지 그의 친구이자 유언집행자인 막스 브로트 (Max Brod)에게 자신이 죽으면 모든 유고들을 태워달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저는 1992년 겨울 체코의 프라하를 방문해서 카프카가 묘사한 성 (城) 뒤편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이었던 현재의 그의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막스 브로트가 아니었다면 카프카의 문학은 어쩌면 영원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카프카의 문학을 단순히 실존주의라는 범주에 넣는 그 자체가 선택적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의 언어적 감성, 존재로서의 떨림,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이 아니며, 체코에 살면서 독일어를 사용하던 외로운 사람. 그를 기억의 생존으로 이끄는 사람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독자이지요.
삶의 연속은 어쩌면 기억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고 죽고 잊혀지거나 기억되듯, 문화 역시 잊혀지거나 기억됩니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유학을 오거나 이민 올 사람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한국에서 쓰던 모든 가구며, TV며, 책장이며, 딤채며…….이런 모든 짐을 다 가져 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부칠 짐이 한정이 되듯, 우리의 기억 역시 선택적입니다. 저는 한국을 떠날 때, 수천권의 책을 두고 와야 했습니다. 일부는 처가에, 일부는 누이 집에, 일부는 모친이 계시는 곳에 뿔뿔이 흩어 놓고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민 온 많은 분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잘살기 생존운동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쿠데타의 주역인 박정희나 그의 하수인 차지철 같은 이의 사진을 좋아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농부 이미지로서의 박정희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가슴 절절히 각인되어 눈시울을 적실 분도 있겠지요.
어떤 분은 한국 전쟁의 참담함에 지금도 치를 떨며 분노를 삼키는 분도 계셔서 조금이라도 남북 화해를 이야기하면 “뽀올~갱이” 넘들에게 욕을 해대는 불행한 기억을 간직하시는 분도 있지요.
어쩌면 이런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한국 전쟁의 참담함을 모르고 남한의 인권을 말하고, 민주화를 선언하며, 이명박 독주를 떠든다고 혀를 차는 어르신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는 못 말려 노친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여러분은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보며, 공부안하고 정신나간 학생들이라고 떠드는 진짜 버르장머리 없는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기억을 우리가 다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나 사상을 가지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그 만남이 빚어내는 기억의 연쇄들의 조합일 수 있으니까요. 이런 기억을 우리는 사회적 기억 (social memory)이라고 합니다. 그 기억의 연쇄는 바로 그 기억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억하려는 노력 (desired memory)에 의하여 연속적이게 되겠지요.
어떤 이는 광주의 망월동으로 가서 꽃잎이 날리는 5월의 봄날 눈물을 흘리며,
어떤 이는 마석의 모란공원에서 자기를 불살라 어린 여공들의 인권을 부르짖은 전태일 열사와 해마다 그를 찾는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한국 전쟁으로 희생당한 영령들을 찾는 유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억들의 현재를 우리는 기억의 문화라고 합니다. 무엇인가 잊지 말고 간직하자는 것, 그것은 돌비석에 아로새겨진 이름이자 그 이름을 찾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은 누구보다도 슬픈 기억을 많이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그 기억이 지나치게 선택적일 수도 있고, 일방적일 수도 있습니다. 허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그런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진 것, 문화적 기억의 원형을 다시 찾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죽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듯, 우리 자신들 역시 죽고 사라져 갈 기억입니다. 이민자로 와서 여러분은 무슨 기억을 간직할 것입니까? 코리안 데이는 그런 기억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무슨 행사를 행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기억의 영향아래 있습니다.
Pioneer님, 씨엔드림 게시판은 흙탕물이 아닙니다. 그것을 진흙탕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님의 마음에 그렇게 반사되기 때문입니다. 혼돈 속에서조차 질서를 찾는 열정, 그것이 있다면 세상은 다시 보일 것입니다. 성공하셨습니까? 성공의 잣대가 무엇인가요? 예수는 33살의 꽃다운 나이에 정치범으로 처참하게 처형당했으며, 붇다는 세상의 부귀 영화를 버리고 걸식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나의 생존과 성공을 자랑하기 보다는 이 세상이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단순히 실현되지 않은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이뤄져야 할 꿈입니다.
아직도 자기 성공이 너무나 기뻐 혼자 즐기기에 아깝다고 생각하기 전에 내 스스로 발을 딛고 살아갈 힘조차 없는 노숙자나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거기에 희망이 있고 유토피아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 의 300억 기부에 탄성을 지르기 전에, 그가 저지르는 인권탄압과, 장애인 예산 삭감이나 언론의 자유를 막기 위해 아직도 몸을 뒤틀고 몸부림치는 저 망나니만도 못한 대통령을 가진 한국에 조종을 울려야 하지 않은가요?
이런 생각에 동의하든 안하든 그것은 님의 자유입니다. 님이 간직하진 그 기억의 상처, 충분히 우리가 이해는 못할 것입니다. 님만이 이 한국 전쟁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닙니다. 저 자신이 한국 전쟁의 희생자의 자손이며, 아니 일제의 잔악한 통치의 슬픈 기억을 제 슬픈 가족사와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Market Mall 건너편 Goodwill 이라는 thrift stored 지난 주 2불 50전 주고 책을 샀습니다. 이 중고책은 싸지만 "기억해" 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다가 님이 떠올라 이렇게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님을 기억해 드리기 위해서요.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기억을 주는 법이지요. 이 책도 그렇고 님도 그렇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아프리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