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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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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613 |
작성일 2009-07-21 17:43 |
조회수 1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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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가 길고 요란하긴 해도 이제 아주 떠나신다니 섭섭해서 pioneer 님께 마지막으로 인사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 자꾸 나타나 자기 이름을 거론하며 말을 거는 것처럼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도 드물 것 입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자기 좋아하는 일만 생기게끔 재단돼 있지는 않은 법이어서 때로는 보고싶지 않은 상대와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통해 생각의 차이는 못 좁히더라도 서로 미워하지 않고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법이나마 배운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지만, 캘거리-에드먼턴 한인 목사님들이 말하는 그런 인격신으로서의 하나님이 진짜 존재한다면 지금 멋지게 작별인사를 나누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고 마치 ‘유산을 둘러싸고 칼부림을 벌였던 자녀들이 다시 화해하는 모습을 본 부모’처럼 기뻐하실 것 입니다.
제가 작년 봄에 이세진 씨를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꾸로든 바로든 역사란 용기와 비판의식을 겸비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져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처음 하는 얘긴데 나는 ‘묵묵히 자기 맡은 일만 충실히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은 별로 믿지 않는 편입니다.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사람들, 흩어져 있는 에너지와 상호교감을 조직하고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일단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과감한 공개발언과 행동을 통해 검증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새 세상을 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한국 사회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배가 산으로 올라 갈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역동성이 지난 20 년 간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이런 이유로 나는 일단 이세진 씨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품성의 바탕은 싹수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세진 씨 아시죠? 작년 봄 광화문에서 용감하게 ‘반 촛불 홀로시위’를 했던 그 대학생. 그가 들고 서 있던 팻말에 써 있던 글은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김정일이 핵을 쏘고 300 만이 굶어 죽을 때는 왜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까?”
이 팻말의 내용이 말이 되건 안 되건 당시 촛불항쟁군중에 의해 완전히 장악돼 있던, 말하자면 적(?)의 심장부 한복판이었던 광화문에서 혼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pioneer 님에게도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십자포화를 맞고도 의지의 한국인처럼 끝내 자기 할 말 다 하고 떠나는 모습이 별로 보기 나쁘지 않습니다. 조롱이 아니고 진심입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저는 생각이 비슷한 분들보다는 생각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하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 입니다. 이런 토론마당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좀 싱거운데, 생각의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마음에도 없는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아도 돼서 토론줄기 외에 쓰잘떼기없는 외교적 언사를 꾸며내야 하는 부담감이 비교적 덜하기 때문입니다. 상대 기분을 따로 맞출 필요가 별로 없이 필이 꽂히는 대로, 아는 대로 자기 이야기를 비교적 쿨하고 솔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세상을 혼자 통달한 척, 마음이 넓은 척, 예의 바른 척하며 똥 밟은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토론 주제의 핵심을 중심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간결한 문장으로 할 줄 아는 능력이 참 중요한데 불행하게도 우리 40 대 이상은 이런 훈련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일방적인 지시사항 아니면 전달사항만 주고 받았지 토론이라는 걸 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Pioneer 님의 중고등학교시절은 어땠나요?
한 예로 공정택 같은 인간은 교장을 할 때 교직원들이 발언하고 토론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상명하달 군사문화의 전형’이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오다가다 교사나 교직원을 마주칠 때마다 군대식으로 구호를 붙이며 거수경례를 하도록 강요받았구요. 그 학교 경례구호가 ‘성실’ 이었던 모양인데 조회시간마다 일부 ‘개념 있는’ 학생들은 거수경례를 할 때 ‘실!성!’ 하고 외쳤다지요. 그 학교 출신이 하는 말이니 사실일 겁니다. 이런 문화에서 자라 온 세대니 어떤 때는 가마떼기처럼 아무 말 못하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어떤 때는 욕설과 고함을 지르며 싸움박질을 벌이기 일쑤이지요. ‘싸움’을 말로 하는 법을 배운 적이 극히 적으니까.
저도 pioneer 님처럼 청소년들의 장래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하는 포인트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Pioneer 님은 우리 청소년들이 삐뚤어진 생각에 오염될까 봐 걱정이라고 하시지만, 저는 우리 청소년들이 ‘이명박, 공정택 같은 삐뚤어진 인간들만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할 까봐 그게 걱정입니다. Pioneer 님은 인생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가르쳐 주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고 계신데요, 제 경험으로는 왠지 우리 세대가 그들에게 가르쳐 줄 것도 많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배울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별하는 마당에 괜히 딴지걸고 또 다른 논쟁을 유도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마지막으로 제 생각을 전달한 것뿐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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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 2009-07-21 22:5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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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을 위해 각자 열심히 삽시다. 저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교회를 못나가는데 님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 이라니 참 세상은 희한한 세상입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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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09-07-21 23:41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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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현님이 말하는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 이란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걸 희안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니 정말 희안한 세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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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아빠
| 2009-07-22 07:1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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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언록의 자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요. 하지만, 종교적인,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대화로 반론을 제시하는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유사이레 종교문제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말에 현혹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시는 분은 믿지 않은 분의 본이 되도록 교회에도 더욱 열심히 나가시고, 기도 도 열심히 하시고, 성경말씀도 열심히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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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안타갑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광아빠님을 비롯 많은분들이 생각이 비슷할겁니다 어디 가셔서 바람이라도 좀 쏘이고 오세요 남자 여자할것없이 요즘 조금 힘든사람들이 칼가리에 많어진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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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 2009-07-22 21:2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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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네요.. 마녀사냥 비슷한 걸 여기서도 보게되니..
한사람 바보 만들기 쉬운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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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9-07-22 22:01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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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아이디어입니다. 저는 며칠 전 바람 쏘이러 다녀왔습니다. Sunshine Meadows 라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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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생명의 소중함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Sunshine Meadows 가 바로 그런 곳 이더군요.
록키산맥 자체가 거대한 대륙분수령(Continental Divide)인데, Sunshine Meadows는 짧은 거리의 하이킹을 통해 이 대륙분수령을 발로 밟고 서 있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Banff 에서 자동차로 Lake Louise 쪽으로 8 km 정도 가면 Sunshine Village로 가는 Exit를 만납니다. 이 길을 따라 7 km를 올라가면 Sunshine Ski Resort에 도착합니다. 여름에는 물론 스키장이 문을 닫는데 Sunshine Meadows로 가는 셔틀버스는 이 곳에서 탑니다. 왕복 25 불. 비포장 편도 5 km 정도인 걸 고려하면 결코 싼 요금은 아닙니다. 셔틀버스도 2차 대전 시절 사용하다 버린 것 같은 노란 색 스쿨버스입니다. 돈 아깝고 타기 싫으면 오르막 내리막 왕복 10 km 비포장도로를 흙먼지 뒤집어 써가며 걸어서 가도 되긴 하지만 저는 그냥 타고 갔습니다.
고물 스쿨버스를 타고 15 분쯤 올라가면 리조트 확장공사가 한창인 Sunshine Village Station 에 도착합니다. Sunshine Meadows 트레일 표지판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버스 타고 위에 오를 때까지의 비포장도로-공사판 모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해발고도 2200 m. 바로 이 곳이 식물생장한계선이었습니다. 산 꼭대기에 펼쳐진 7 월의 평원에는 키 작은 전나무, 향나무 등 침엽수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들판에는 이름 모를 알파인 꽃들이 한 창이구요.
이 지역은 1 년 중 9 개월은 눈 속에 파묻혀 있답니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1 년에 단 3 개월에 불과하지요. 9 월이면 벌써 칼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겨울 내내 영하 30-40 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눈보라가 계속됩니다.
나무들이 키가 작지만 수령 200 년 이상 된 것들이 많습니다. 연중 생장기간이 짧기 때문에 키가 작은 것 이죠.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남쪽으로 가지가 무성한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나무들이 서로 바람을 막아주느라고 섬(island) 형태의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혹한 자연환경과 투쟁하며 자신을 그것에 적응시키고 생존해나가는 그 고원의 작고 가냘픈 알파인 꽃들을 보면서 뭔가를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영광아빠 님, 언제 시간되시면 요리 이야기 한 번 올려주셔야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은유로 이해해 주세요.
알렉산더 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치 종교적인 주제로 어떤 주장을 하게 되면 반론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것 입니다. 때로는 반론이 우호적인 의견보다 압도적일 경우가 있는데 자칫하면 이런 현상을 두고 마녀사냥으로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pioneer 님도, 그리고 저를 포함한 反 pioneer 그룹도 결코 그들 자신이 바보가 됐다거나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서로 이야기를 한 것 뿐 이지요. 속은 것도 아니고 억울하게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닙니다. 자기들이 각자 자기 신념대로 주장하다가 욕을 먹었든지 반격을 받았든지 한 것 뿐 인데 그런 것 가지고 마음의 상처를 받을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 것이 두려웠다면 그 분들은 아예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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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신랑
| 2009-07-23 01:2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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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님 그동안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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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09-07-23 11:0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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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님 저두 그 동안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이스한 마무리두요! 좋은 여름 보내셔요--모든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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