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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거가 생겼다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6476 작성일 2022-10-10 05:02 조회수 3172

 

매일 저녁 무렵 카카오톡 음성으로 아내와 통화한다. 서로 별일 없었냐며 안부를 묻고 통화를 끝낸다. 전화상으로는 서로 수다스러운 성격이 아니기에 통화는 보통 5분을 넘기지 않는다. 대화의 시작은 보통 '별일 없었어?' 다.

 

'미안해! 별일 있어.'

 

며칠 전 아내가 불쑥 말했다. 별 일이 있다니, 별 일도 다 있다!

 

***

 

아내의 직장은 집에서 가깝다. 바삐 걸으면 10분, 천천히 걸으면 15분 정도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내는 집에서 굴러다니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에 스포첵에서 떨이하던 접이식 미니벨로였는데 튜브 고무가 경화되어 앞뒤 모두 순차적으로 빵꾸가 나고 말았다. 유튜브에서 튜브 바꿔 끼는 걸 공부한 후 월마트에서 튜브를 사서 바꿔줬다. 그 후 여러 달 동안 아내의 출퇴근은 즐거운 자전거 라이딩이기도 했다.

 

어느날 아내가 지인을 만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멀리까지 갔다. 식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외부에 묶어놨는데 그 사이에 누군가 체인을 끊고 훔쳐가 버렸다. 튜브를 바꿔준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말이다.

 

그래서 별 일 없던 일상에 별 일이 생기고 말았다.

 

어차피 겨울도 다가와서 내년 봄에 새로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의 직장과 스포첵이 제휴하여 최대 70%까지 할인이 가능한 쿠폰이 나왔다. 아내는 이 쿠폰으로 자전거를 사기를 원했다. 알맞은 자전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스포첵에 가봤다. 별로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 아내에게 미니벨로를 사 주고 싶었다. 그런데 단거리 출퇴근을 위해 샤방샤방 타기에는 너무 거창한 자전거들 뿐이었다.

 

아내가 자전거를 당장 원하는 것 같아서 다른 매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캐나디안타이어에서 560불 정도 하는 접이식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존에서도 800불 대의 자전거를 390불 정도에 세일 하고 있었다.

 

아마존에 주문을 했더니 이틀 만에 왔다. 공장에서 막 보내 준게 맞다. 하나도 세팅이 안 되어 있었다. 브레이크를 조정하고 타이어의 중앙을 맞추는 작업등을 하면서 여러 시간을 보냈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팠다. 초보자의 세팅이라 크게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시운전을 해보니 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내가 퇴근해서 자전거를 보더니,

 

'싸구려네!'

 

했다. 상처 받았다.

 

사실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뒷 기어는 시마노 7단이지만 앞 크랭크가 너무 작아서 전혀 속도가 안날것 같다. 즉 최고속도에 크게 제한이 있다. 단거리 출퇴근 이외의 레저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도 걸어 다니다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아내가 만족해 한다.

 

며칠 후 아마존과 캐나디안 타이어 사이트를 보니 가격이 변동되어 있었다. 아내의 자전거는 500불대로 가격이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캐나디언타이어 자전거는 320불대로 떨이 중이었다.

 

아내에게 이걸 말하니 당장 그걸 내 자전거로 사자면서 캐나디안타이어로 가자며 일어났다. 매장에서 직접 본 자전거는 예상 밖으로 꽤 고급져 보였다. 아내가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역시 아내는 반짝반짝 광나는 소재 보다 무광택의 물건을 더 좋아한다. 내가 보기에도 블랙 무광택 프레임이 더 고급져 보인다. 나는 탈 시간도 별로 없어서 사고 싶지 않았지만 아내의 강권에 의해 결국은 사고야 말았다.

 

이모저모 뜯어 보니 아마존에서 산 것 보다는 몇 등급 위다. 뒷 기어 뿐만 아니라 스프라켓과 변속 레버도 시마노 부품이였다. 앞 크랭크도 꽤 커서 속도도 잘 나올 것 같았다.

 

무척 오랜만에 내 미니벨로가 생겼다. 신난다.

 

다음날 아내가 출근한 사이, 혼자서 새 자전거를 타고 보우강까지 내려가 강변을 달리다가 올라왔다. 집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을 낑낑거리다가 결국은 끌바를 하고야 말았다. 내가 소싯적에는 절대 업힐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나이였는데, 늙어버리고 말았다. 노즈힐 언덕을 한 번도 안쉬고 올라가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래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니 너무 좋다. 한국에서 가져온 다혼-like 한 미니벨로를 잃어버리고 한동안 안타다가 아내 때문에 또 자전거를 타게 됐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행복을 다시 찾았다.

 

***

 

아마존의 그 자전거는 지금은 또 499 불이 돼 있네. 왜 가격이 자꾸 바뀌지? 그런데 이거 사실 바에야 캐나디안 타이어의 320불대 자전거가 훨씬 더 좋습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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