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동렬 (미주 주간현대, 샌프란시스코)
dyk47@yahoo.com
클린튼 전 대통령이 다시 뉴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압록강에서 국경침범죄로 구속된 미국인 두 여기자를 거의 5개월 만에 평양으로부터 데리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린튼은 명색만 전직 대통령이 아닌 확실한 미국의 해결사로 다시 한번 그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아니지만 국무장관 부인을 둔 그를 의식해 북한은 예외적으로 현직 대통령에 버금가는 예우를 갖추고 대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튼의 활약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그와 유사한 입장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클린튼이 했다면 노무현도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가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후보자 당시 대통령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던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 어떤 환경의 차이점이 있었길래 결과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 자문자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미국 전직 대통령 역할
한국과 미국은 비슷한 대통령 중심정치제도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거의 황제에 버금 가는 절대권력자로 비유 되지만 실제 미국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에 비유될 수 있다. 그 차이는 무대가 틀린다는 점이다.
한국대통령은 한국 주권이 비치는 땅에 통치권이 머물지만 미국대통령의 경우는 세계가 무대인 것이다.
결국 같은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쓰지만 그 스케일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절대 권력을 갖고 있지만 그런 권력에 견제역할을 하고 있는 의회는 대통령도 탄핵시킬 수 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갖고 있지만 민의를 대표하는 의회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활동을 벌리지 못하면 제대로 법안을 통과 시키기도 힘들다. 대통령과 의회가 항상 대립과 타협을 반복하는 시스템을 가졌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처럼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갖고 있으면서 공천권으로 여당 국회 의원에게 절대적인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결국 의회가 견제역할을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재직 시 절대권력을 휘두른 것만큼 퇴임 후 절대 보복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치는 너무나 당파적이고 여야가 극단적이기 때문에 ‘산 권력’이 ‘죽은 권력’을 죽이는 일이 관례화 되어 있다.
지금 야당은 여당이 노무현 대통령 서기 이후 거리에 나서 만 보아도 권력을 잃으면 얼마나 비참해 지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적대적인 정치환경에서 전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산 권력’에 대해 투쟁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정치 쇼크를 불러왔으며 후일 현 대통령이 물러나면 또 어떤 일이 반복될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 두 나라의 전직 대통령은 퇴임직후 부터 모습과 역할이 매우 달랐던 것이다. 한국 노 전 대통령은 권력투쟁의 패자가 되고, 미국 클린튼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특사로 다시 대통령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한국 국민들은 정권이 바뀌면 권력투쟁의 희생자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원인이 자살로 알려지자 흥분한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도 똑 같은 정치적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죽음 자체에만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외 절대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또 하나의 선진국은 프랑스다.
프랑스 대통령도 한국 대통령만큼 절대권력을 유지 하기에 재직 시 이런 저런 정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러나 퇴임 후 재직 시 일어난 일로 수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국가 명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 정치인들이 퇴임 후 물러난 대통령에 대해 과거를 묻지 않는 불문율이 지켜왔기 때문이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시 혼외정사를 비롯 하여 숨겨진 딸의 폭로 등 적지 않은 여자문제로 곤경에 빠졌지만 퇴임 후 한번도 문제시 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경우 ‘산 권력’이 ‘죽은 권력’의 과거를 들추어 비리를 찾아내는 것이 정권교체 후 관례처럼 되어 버렸다. 일부 국민들 가운데는 정권교체를 합법적인 정치보복으로 생각할 만큼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정치풍토에서 전직 대통령의 경륜과 역할을 기대하기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과 다름없다. 노 전 대통령에게 클린튼의 역할을 기대하는 자체가 한국의 고약한 정치토양에선 불가능했던 일이었을까?
미국의 힘은 전통에서
미국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미국의 힘은 전통에서 나온다.
과거의 경험을 존중하고 지도자의 경륜을 아끼는 정치풍토가 미국의 국력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정쟁과 이해관계만 있고 지도자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는 환경 속에 있다. 미국에선 전직 대통령의 역할이 종종 신문의 머리 기사를 차지한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북미간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일련의 미국 전직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부정 부패에 연루된 한국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모습에 아쉬움이 크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기 위해선 퇴임 후 검찰청에 출입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