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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년 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진보진영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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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81 |
작성일 2007-12-29 11:24 |
조회수 5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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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후배에게 이 곳에 올리는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을 보냈습니다. 1987 년 식 사고방식과 철학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진부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한국 진보진영의 모습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생물학적 생존본능과 윤리가 충돌할 때 생존본능을 택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양식이고 이번 선거에서 그 보편적인 행동양식을 보여준 것이라는 한 복음주의 목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굳이 장일조 교수의 욕망과 충족의 변증법을 동원해 증명하지 않아도 동의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겉으로는 종부세에 찬성하는 척 하면서 결국 집값 올려 줄 후보에게 몰려간 한국의 3-40 대 가 이를 멋지게 증명해 주었습니다. 답은 아주 가까운데 있는데 쓸데없이 멀리 돌아가기를 좋아하는 진보진영의 인텔리들이 그저 복잡하게 머리만 굴리다 보니까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벌인 선 후배들과의 토론과정을 통해 그들이 국민 그리고 민족 이 두 단어에 대해 환상적 개념을 가지고 쉽게 기대를 가지거나 절망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의외로 많은 활동가들이 이 두 단어를 너무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떠 올랐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많은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문제입니다.
첫째 대중, 인민 또는 국민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이 사회과학적으로 내포하는 개념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생긴 인식의 오류가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미 제 1 세계 형 가치대결구도로 서서히 전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인민민주주의’에서의 인민이나 총화단결 시대의 국민과 같은 추상집단으로서의 대중개념은 그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공통된 신념체계를 가지고 제반 쟁점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으로서의 대중이 그 의미를 대체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중이라기 보다는 의사 표현집단 또는 세력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서로 다른 의사표현 대중집단들이 균형과 견제를 이루며 한 공동체를 이끌어 갑니다.
이 집단은 중단기적인 정세변화나 선전 선동가들의 설득에 따라 자기 신념이 휘둘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적극적 대중입니다. 때로는 그 정치집단의 엘리뜨들 보다 훨씬 강경하게 여론을 조성해 내기도 하고 전문가 뺨치는 세밀하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 내기도 합니다. 이런 역동적이고도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지지세력’들이 등장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전자매체의 발달로 인한 지식과 정보의 폭발적인 확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국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 작은 예 입니다. 2005 년 12 월 펜실베니아 주의 도버라는 도시의 교육위원회에서 창조론의 변형인 지적설계이론을 교육과정에 편입시키자는 결정이 났습니다. 주민투표가 실시됐고 이 도시의 주민들은 이 정신 나간 기독교 근본주의자 교육위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낙선 시켰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이 도시 시민 전체를 상대로 증오와 저주를 퍼 붙는 댓글과 의견들이 수 십 만 건이 쇄도했고 이 무명 도시는 일약 그때부터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창조론과 진화론간의 새삼스런 논쟁의 중심지가 돼 버렸습니다. 88 년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로 무시 못할 지지를 받았던 팻 로버트슨 같은 작자는 ‘도버의 주민들 당신들은 하나님의 저주가 내릴 때 기도따위는 할 생각도 말라’는 폭언을 여기 저기서 퍼 붓고 다녔습니다.
주로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수 천 만 명에 달하는 이 ‘대중’은 오늘도 일요일 마다 떼거리로 몰려 다니면서 ‘God Bless America’를 합창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부시 정부를 닥달해서 줄기세포 연구를 중지시키는 등의 만행(?)을 서슴지 않는 ‘조폭 대중’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중은 한국의 많은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이 기대하듯 설득하면 다시 돌아설 수 있는 대중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가치와 신념체계를 구축하고 적극적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정치세력입니다. 주목할 점은 어떤 의사 표현집단이건 전 연령대와 전 사회경제적 계급을 골고루 망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은 종교-이민-동성결혼-낙태-해외파병 등의 문제를 둘러 싸고 대중들간에 (정치집단 간이 아닙니다) 칼로 벤 듯이 나뉘어 져 서로 직접(간접이 아닙니다)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문화 배경을 가진 미국이나 캐나다 하고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화당의 고정적 지지집단을 이번에 이명박을 선택한 지지집단과 단순 비교하는 것이 무리가 있는 줄은 압니다(솔직히 한국에 살지 않아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상대방의 정치세력에게 표를 주지 않을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점에서 한국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1987 년의 한국 과 2007 년의 한국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 점점 가치 문화적 쟁점들이 다양해 지고 사람들의 사고 및 신념체계가 덩달아 점점 구체화되고 강고해 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점점 심화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계급기반과는 별로 관계없이 형성된 종교적 신념이나 사회적 가치관 등이 보다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이런 신념체계가 한 번 형성되고 나면 종종 어떤 계기가 생길 때 마다 그 집단적인 신념이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윤리적 기준을 넘어서는 황당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황우석 사태와 이명박 지지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이번 한국의 대선은 황우석의 예와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 무언가가 보편적인 윤리적 기준을 넘어서긴 했는데 이번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왼쪽은 찍지 않을 신념파 뿐만 아니라 유물변증법 대신 ‘욕망과 충족의 변증법’으로 현상법칙이 잠시 대체된 돌연변이 대중까지 가세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하이에나 같은 BBC 나 로이터 통신이 이를 놓치지 않고 ‘돈에 눈이 먼’ 이라든가 ‘개가 나와도’ 와 같은 모멸적인 언사를 내뱉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유권자를 모독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짚은 말입니다. 그러나 기대 하세요. 예상컨데 앞으로 해가 갈수록 과도기적 변종인 이 돌연변이 대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앞서 이야기한 '하늘 두 쪽' 대중이 대부분 차지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때 가면 국민이니 대중이니하는 추상적인 단어를 쓸 기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줄어 들 겁니다. 미국에서 '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부시하고 백악관 대변인밖에 없는 줄 압니다.
둘째 민족 이라는 낱말입니다. 심지어 ‘민족끼리’라는 말을 자주 하는 진보진영 활동가들도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진보진영은 고사하고 극우파를 제외한 보수진영에서 조차 사용하지 않는 용어입니다. 사실 저는 일시 체류자 뿐 아니라 영주 의지를 가진 엄연한 외국 출신 거주자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안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진보진영이 왜 아직도 배타적 개념인 민족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공공연하게 자주 사용하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았습니다. 통일이라는 한반도 특수 과제의 매개는 제국주의적 국제관계의 청산에서 찾아야지 행여라도 다른 부분에서 사상적 충돌과 자기모순을 야기할 수 있는 ‘민족끼리’ 운운 하는 극우적 발상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약 50 만에서 1 백 만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결혼 등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 영주 목적으로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노동허가 나 체류허가 등과 관련된 법령이 1960 년 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해외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 각국에 나가 벌이고 있는 착취와 수탈, 불법적인 폭력과 횡포는 그 내용을 들을 때 마다 낯이 뜨거울 지경입니다. 문제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자기 나라의 가장 기층에서 학대에 가까운 차별을 당하고 있거나 외국에서 자국 자본에 의해 부당하게 수탈당하고 있는 이들과 얼마나 연대하고 있으며 사안에 걸 맞는 중요한 정책으로 다루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권이 진보진영의 어젠다를 제대로 담보하지 못했던 것을 화풀이하기 전에 자기들의 어젠다부터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진영 스스로 반성이 필요하다면 이런 문제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쟁점의 크고 작음을 떠나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차별과 소외(정서적 소외를 포함해서)를 막고 개개인의 천부적 인권을 보위하는 것은 진보진영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 소양이기 때문입니다. 대선 패배가 NL 계의 친북성향 때문이니 PD 계의 종파주의자들 때문이니 하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들을 할 시간이 있거든 어떤 가치들을 공유해서 아군 대중을 다시 결집시키고 세계의 진보진영과 연대할 것인가를 공부하는 것이 훨씬 유익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제기와 토론은 항상 새로운 사고와 접하는 것을 통해 자기를 다시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겁고 유익한 일입니다. 찬반론을 펴는 이유는 재검증없이 자기 주장만을 합리화하고 관철하려는 편협하고 교조주의적인 사고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사고체계에서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 해 좀 더 나은 변화를 이루려는 데 그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토론이 격렬해 지다 보면 가끔 상대가 기분 나쁠 정도의 공격적 표현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혹 이 글에서 그런 게 있었다면 제 표현 방법의 서투름 외에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니까 그냥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게시판 방문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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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07-12-31 06:5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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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도 앞으로 정치집단은 \"자유를 추구하는 가치관\" 대 \"전통을 보호하는 가치관\" (검열, 낙태등의 잇슈) 그리고 \"약자를 어우르는 정책\" 대 \"성장과 발전을 최우선시하는 정책\" (복지, 이민자, 정책등) 을 대변하도록 나뉠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특성상 후자쪽이 훨씬 더 중요한 구분이 되지 않을까 추측을 했습니다. 후자의 정책에서는 말씀하신대로 이민자정책등이 잇슈가 되겠지요. 아마 이민자 잇슈도 10년뒤에는 \"약자를 어우르는 정치\"을 추구하는 정치집단의 발목을 잡는 뜨거운감자가 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펜실베니아 도버 교육위원회 얘기도 잘 읽었습니다.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를 보았습니다. 다음은 간추린 내용. 도버교육위원회에서는 9학년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치기전에 [진화론은 \"사실\"이 아닌 \"이론\"이며 \"지적설계론\"등의 대안적 이론도 있다]라는 말을 반드시 이야기하게 했다는데요... (참으로 천인공로할 일이죠). 결국재판에서 이런 규정은 헌번에 위배된다는 ruling을 받았고, 강현님 말씀대로 이런 말도안되는 결정을 지지한 위원은 하나도 당선되지 않아, 재판의 항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암튼 미국은 위태위태해도 굴러가기는 하는 이상한 나라인것 같습니다.
재밌는 글 잘읽었다는 말 할려고 몇자 적었습니다.
방문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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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7-12-31 09:3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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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감사합니다.
이 글은 분석보다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떠오른 느낌을 토대로 쓴 글이라 올릴까 말까 약간 망설였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몇 몇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답답한 마음도 있었구요.
도버의 사례는 그 내용을 잊어먹었었는데 최근에 읽은 Dawkins 의 책이 remind 시켜줘 말씀대로 새삼스런 공분을 느꼈습니다..
곧 새해군요. 1987 년 12 월 이래 맞는 가장 재수없는 세모 같습니다.
어쨋든 그건 그거고......
토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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