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내가 겨우 친일파? 듣는 안익태는 섭섭하다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
게시물번호 1891 |
작성일 2009-11-09 00:43 |
조회수 1900 |
|
|
안익태는 친일작곡가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내가 대한민국의 ‘애국가’를 애국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가 친일작곡가여서가 아니다. 그런 진부하고 새삼스러운 사실은 전혀 내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어차피 해방 후 피치 못해 대한민국에서 살기로 작정한 당대의 지식인 거의 전부가 그 기록을 읽기도 낮 뜨거운 노골적인 부역행위를 했다는데, 그 대한민국의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인물인들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현재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의 총장을 지냈다는 어느 유명한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는 국회답변에서 731 부대를 항일 독립군 부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 때, 그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은 야당의원이 밉살스러운 나머지 엿이나 먹으라는 의도에서 이런 대답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진짜 그런 줄 알고 그렇게 대답한 모양이다. 텔아비브 국립대학 총장 출신의 이스라엘 총리가 지금까지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지역에서 나치에 저항했던 유대인 비밀 유격부대 캠프인 줄 알았다”는 답변을 했다고 가정하면 아마 이에 필적할 만 한 답변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총리로 앉아있는 이런 나라의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이 친일 전력이 있다는 건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안익태의 친일행위는 그 개인적인 족적에 비추어 볼 때 별로 중요한 활동도 아니다. 그는 미국에서 잠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본 시민권의 보증을 기반으로 동맹국 나치 독일과 나치의 점령지역에서 지휘자로서 활동하면서 틈틈이 중국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만주국 축전’을 작곡하고 직접 지휘하는 부업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친일인명사전에 그 이름이 올라간 모양이지만 그의 친일이야 말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충성스럽고 눈물겨운 훌륭한 친일로 보였을 것이다. 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잠시 쉬는 틈을 허비하지 않고 멸사봉공한 틈새 친일이기 때문이다.
안익태의 절친한 후원자이자 스승이기도 한 Richard Strauss 라는 유명한 음악가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눈물깨나 찍어내야 할 만큼 곡절이 많다. 그는 오스카 쉰들러 만큼이나 나치 상층부에 절친한 친구들이 많은 아주 사교적인 인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 학살의 정당성을 문화이론화해서 대중을 설득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괴벨스 박사와 연분이 두터웠다. Strauss는 당시 Ministry of Propaganda라는 요상한 이름의 부서 장관을 하던 이 궤벨스 선생에 의해 나치의 국립 음악기관 총재 (President of the Reichsmusikkammer, the State Music Bureau)로 발탁되기도 한다. Strauss의 눈물겨운 스토리라는 건 나치 치하에서는 별 소리 없다가 주로 패전 이후에 그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인데, Alice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며느리가 유대인이라 그녀와 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나서서 적극적인 친 나치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다.
30 대 시절 안익태는 궤벨스 박사의 soul brother 이기도 한 눈물의 곡절 Straus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스와스티커 깃발들이 가로로 세로로 장중하게 걸려 있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키스트라와 Grosser Rundfunk-Orchester Berlin (나치의 선전용 관현악단) 에서 신 들린듯이, 미친듯이 유감없이 지휘실력을 발휘했다. 이 때가 1940 년, 이미 5 년 전 선포된 뉘른베르크 인종분리법을 근거로 유대인과 집시 동성애자들에 대한 집단 대학살의 서막이 울리던 바로 그 해에 있었던 일이다.
안익태는 1943 년부터 1 년 여 간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1944 년 연합군과 레지스탕스에 의해 파리가 해방되자 강제추방 당한다. 당시 해방된 프랑스의 분위기에서는 나치부역자로 체포즉시 현장에서 사살될 수도 있었는데, 잡아 놓고 보니 동양에서 온 외국인인데다가 나치 신봉자 같지는 않고, 그냥 음악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치 치하든 스탈린 치하든 지휘봉을 흔들어 댈 준비가 돼 있는 골이 빈 재주꾼 정도로 생각을 해서 그냥 석방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내가 직접 본 건 아니니까 확언할 순 없지만 세계인이 다 보는 백과사전에 나온 다음과 같은 쪽 팔린 문장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Ahn found another place to work, the Orchestre de Paris, but he was forced to leave in 1944, when Paris was liberated from the German forces. He was invited by the Spanish ambassador to conduct for the Orquestra Simfonica de Barcelona.
그러고 보니 파리에서 쫓겨나 바르셀로나로 가게 된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운명적 사건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반려자가 될 Talavera Lolita를 이곳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천재 음악가였을 뿐이다. 어떤 때는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보인 적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지성을 가진 조선인, 그리고 한국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평범한 지성이 감당하기에는 그의 재주가 너무 비범했다는 게 탈이었다. 그뿐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다만 그가 그 시대에 그런 활동을 하면서 작곡한 그 곡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윤리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대표하는 ‘애국가’로 삼을 수 있느냐는 게 문제다.
석 달 후면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며칠 시간을 내서 밴쿠버에 갈 계획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역시 미리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날 어느 스케이트 링크에서는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 질 것이고 그 소녀는 또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조금이라도 역사에 관심과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의아해하면서 한편으론 착잡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근 거릴지도 모른다.
“금메달을 받은 저 선수의 나라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은 옛날에 제국 일본의 황국신민으로서 서유럽에서 나치에 부역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래”
“그런데 저 선수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의 부역행위가 친일에만 한정된다면 우리끼리 쉬쉬하고 넘어갈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부역행위는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아주 거창한 것이다. 그는 특별히 나쁜 사람은 결코 아닌데 시대를 잘못 만나고, 그 평범한 인격에 비해 지나치게 비범한 재주를 잘못 타고 난 죄로 우리 모두가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
|
|
|
|
|
|
|
와치독
| 2009-11-10 04:19
지역 Calgary
0
0
|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 중학교까지만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 땐 史자 들어가는 과목은 정말 다 싫어했습니다. 사람 이름, 숫자 외우는 머리가 전혀 없어서 애를 무지 많이 먹었거든요. 그런데 쬐금 나이가 드니까 역사처럼 재밌는 게 없더군요.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순진하게 살다 보니 머리 잘 돌아가는 놈들한테 딱 당하고 살게 될 것 같아 과거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나 할까요. ㅎㅎ
글 읽다가 3가지 정도가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이명박 아키히로 대통령 각하 (what a mouthful!)도 여간 골치 아픈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친일파 후손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신할 것 같습니다. 골때리는 씨츄에이션이 시간이 갈 수록 H1N1 바이러스 증식하 듯이 악화되고 있는 듯 하네요. (저런 인간들한테 감염 안되는 백신은 없을까요)
두 번째는, 예술인들의 ethics (윤리관)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과연 예술인들에게 윤리적인 의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반론을 피하기 위해 얘기를 다듬어 보자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통용되는 도덕관을 보여주길 기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언행을 보이더라도 예술인들은 보편적 윤리관보다 예술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고방식으로 비난하거나 어떤 응당한 처벌을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지저분하고 괴팍한 언행이나, 창녀촌을 밥 먹듯이 들락거리는 바람에 서른도 안돼 매독에 걸렸던 슈베르트나, 우리가 그들의 훌륭한 예술성을 찬양하는 것이지 행실이 바르고 마음씨가 착해서(?) 존경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세 번째는 두 번째 포인트에 이어지는 것인데, moral alternative 가 없는 상태에서 (최소한 당사자가 생각하기에) 내린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가 없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가 애국가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치뤄야 했던 많은 희생들에 대한 보상심리거나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성취감에 대한 감정적 반응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애국가에 얽힌 친일 역사를 알고 흘리는 눈물이 아닐 것이라는 점과, 따라서 그런 수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느껴야할 \'moral requirement\'가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김연아씨가 애국가의 친일 역사에 대해 알게 된 다음부터는 moral alternative 가 주어지게 되고, 그 다음 선택은 본인 몫이 되는 것이겠죠. 만약 김연아씨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가슴에 손을 얹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게 갈릴까요. 전 그게 더 궁금하네요. ^^
뻘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강현
| 2009-11-10 09:27
지역 Calgary
0
0
|
|
뻘글이라니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보편적 윤리관보다 예술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술인들 고유의 가치판단 잣대일 것 입니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한 결과가 보편적 윤리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겼다면 거기에 대한 책임 또한 그들의 몫일 것 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예술인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2 차 대전이 끝난 후 명 지휘자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친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스트라우스의 예술적 재능에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의 인격적 수준을 이야기할 때는 내 모자를 다시 쓰겠다…… 정확하고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와 보편적 가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가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들의 지적 활동이 그 예술적 지적 가치의 발현에도 불구하고 다른 면에서 그 사회의 시대적 광기를 증폭시키는데 기여를 했다면 이건 이것대로 또 저건 저것 때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과를 서로 상쇄해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안익태나 스트라우스의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나치에 협력한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감추고 그 사실을 자신들의 활동기록에서 삭제했다는 것 입니다. 저든 누구든 불행한 시대를 잘못 만났던 그들 개인을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예술적 성과물은 그들의 부역행위와 관계없이 그대로 남는 것 입니다. 다만 그런 배경을 가진 작품들이 한 국가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는 national anthem으로 기능하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사안입니다. 예술적 성과물에 대한 평가는 예술가의 잣대로 판단하면 될 것이고, 그의 예술활동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보편적 윤리의 잣대로 평가 받으면 될 것 입니다.
개인적은 결론을 말씀 드린다면 저는 대한민국의 national anthem은 반드시 다른 것으로 교체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리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 입니다. 그가 애국가 작곡가의 숨겨진 과거를 알건 모르건 그것에 관계없이 말이죠. 이 사례를 든 것은 역사의 질곡이 가져온 파행과 비극이 과거와 아무 관계도 없는 어린 세대에 까지 아픔을 주는 것에 대한 은유일 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다니 기회가 되면 구입할 생각입니다. 혹시 제 조상들 중 그 명단에 들어 있는 사람은 없나 궁금하기도 하구요. ㅎㅎ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