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사진과 글은 강현님이 열린마당에 올리신 것인데,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허락없이 씨엔드림에 대신 올립니다. 마당에서 이 게시판에 글 올리기가 불편하다고 하셔서 불편은 제가 대신했지만, 서툴러서 폰트의 칼라는 입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게시판이 깨지는군요. www.ma-dang.org 에 가시면 강현님의 다른 여행기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이 것을 퍼 올린 것은 강현님의 모든 글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생각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 아프리카 올림
치앙마이는 아름답고 격조있는 도시다. 아마 조만간 이 도시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태국에는 불교사원이 많다. 특히 란나 왕국의 수도였던 치앙마이 구 시가지 안에는 쌀국수식당 보다 고찰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도처에 널려있는 이 고찰들이 풍기는 분위기란 고리타분함이라던가 종교적 교조주의가 풍기는 악취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강요나 권위를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 문화와 일상생활의 일부로 표나지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줄곧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잇었다. 20 분 정도가 지난 후 두 신도의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 할 무렵 나는 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스님이 혹시 마네킹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차마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Zoom을 열었다.
내 종교배경은 기독교다. 외할아버지가 목사님이셨고 사촌 형(미국)과 와이프(캐나다)는 현직 목사다. 나 역시 기독교인이다. 그런데도 치앙마이의 고찰에 들어서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예불을 드리는 신자들이나 설법을 하는 스님의 표정에서 천박함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은 요새는 바빠서 잘 가지 않지만 캐나다의 교회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마음의 안정과 같은 종류의 심리상태임을 깨달았다. 묵직하면서도 온화한 종교적 무게가 주는 안정감일 것이다. 온화함이나 관대함은 커녕 격조조차 찾아 볼 수 없는 한국의 상당수(일부가 아니다) 보수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도대체 그들의 종교적 체험 속에서 무엇을 배운 걸까?
이들은 다른 종교와의 대화나 소통을 이야기하면 “관대해 보여야 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 몰상식한 소리는 1950~60 년대 남부 시골마을의 KKK단원들이 당시 민권운동을 지지하던 언론매체와 대학, 연방정부 관리들을 향해 내뱉던 말이다.
도이수텝 사원에서 내려다 본 치앙마이 전경
아무래도 관광지라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이야기를 더 나눌 수는 없었지만 아마 이 크리스챤 친구는 불교나라 태국에 와서는 현지식으로 법당에서 예불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주일 종교의식을 대신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유럽이나 캐나다에는 기독교에서 불교나 이슬람으로 개종을 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현각스님 같은 사람이 특별한 케이스는 아니다. 이 종교가 진리인 줄 알았는데 저 종교가 진리여서 개종했다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와 닫는 느낌이 더 강하고 설득력 있기 때문에 개종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개종을 했다면서 전에 자기가 가졌던 종교를 비난하고 헐뜯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 전에 있던 곳에서 인간적인 마찰이 있었거나 돈을 떼어먹고 도망 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종교적 깨달음에 바탕을 둔 개종이라면 다른 종교를 헐뜯을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그럴 시간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조상이 하나(또는 아주 소수의)의 개체였듯,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종교의 뿌리도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나로써는 거의 ‘믿음’에 가까운데, 이런 형태의 종교적 통찰과 직관이 가능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의 진보를 위해 다행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생각이고 의견일 뿐 이니까 아니라고 생각해도 할 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