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동렬 (미주 주간현대, 샌프란시스코)
전 국민 가운데 96퍼센트가 혜택을 받는 법안이라면 좋은 법안으로 생각되는데 그렇지 못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지난 7일 미국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하원은 개혁 건강보험 법안을 5표 차로 통과 시켰다. 5표 차이는 결국 3명의 의원이 마음만 바꾸었다면 법안이 통과 되지 못했을 만큼 근소한 차이다. 그러면 왜 이 법안 통과가 그렇게 힘들었는가. 그 이유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부터 존 딩켈 하원의원(83)이 매 회기마다 의료보험 개혁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결국 45년만에 역사적인 하원 통과를 한 것이다.
의료시설은 선진국, 혜택은 후진국
미국의 의료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선진국 시스템을 갖고 있다.
대부분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는데 비해 미국은 사기업인 보험회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결국 공익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그런 의료보험 시스템이 지난 반 세기 이상 자리를 잡아온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전국민을 의무적으로 커버하는 보험제도를 새롭게 개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과거 역대 대통령의 선거공약에 건강보험 개혁은 거의 단골메뉴로 등장했지만 누구도 진정을 보이지 않았다.
유권자들도 그런 대통령의 선거공약(公約)을 그저 공약(空約)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의료시설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연구활동이 활발히 진행된 이면에는 돈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결국 돈벌이에 급급한 보험회사들은 이번 건강보험 개혁안을 극구 반대했다. 자신들의 수입이 어떤 형태로 줄어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없고 직업을 잃은 사람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볼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국민들은 혜택 받지 못하는 후진국 수준인데, 의료장비와 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아이러니 한 구조를 만든 것도 미국 자본 주의다.
오바마의 승리
전국민 의료 보험 시대가 열리기 까지 적어도 44년이 걸렸다.
1965년 노인들을 위한 의료보험 채택 이후 건강보험을 개혁하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이번 건강보험 개혁안 통과로 오바마 대통령은 적어도 역사에 남는 찬란한 업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과거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현 국무장관이 함께 시도한 바 있었지 만 결과는 실패였다. 지도자가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떻게 진실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국민이 받는 그 혜택은 큰 차이가 난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전 국민 혜택 의료보험 개혁은 가히 링컨대통령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치적으로 후세에 빛날 것이다.
이번 건강보험 개혁안 의회통과로 오바마 대통령은 더욱 개혁적인 다른 정책도 밀어 부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개혁을 통하여 왜곡된 부의 재분배와 피부 색깔에 관계없이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미국의 부가 일부 특권층에 집중되어 있는 부의 편재가 후일 사회충돌과 문제가 야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빈부격차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건강보험 개혁에 이어 금융개혁으로 연결 되기 바란다.
샴페인은 아직 일러
이번 하원 통과 시 보여준 양당의 대결은 상원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겨우 5표 차로 승리를 거둔 만큼 건강보험개혁을 반대하는 보험업계와 공화당은 마지막 관문인 상원에서 필사적인 저지 운동을 벌일 것이다.
일부에선 이미 오바마 정부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오바마 정부가 필요한 상원 60표를 분산 시키기 위한 막후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해관계에 민감한 상원의원들은 여론 추이를 보아 가면서 투표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의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론이다.
여론 공화국이라고 할 만큼 미국에선 여론 향배가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갖게 된다. 이런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 내 언론은 다소 관광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잘못하면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본질에서 벗어나 주위에서 눈치만 날리고 있는 실정이다. 하원 통과 후 일부에선 건강보험 개혁안의 상원 통과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일부 유권자들은 이미 지역 상원의원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숫자가 커지지 않으면 요지부동하는 것도 미국 의회의 관례다. 이번에 건강보험 개혁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면 가까운 시간 내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의료비를 내나
이번 건보개혁안을 운영하기 위해선 약 1조 1천억 달러가 다음 10년간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민의 1/6이 현재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추산 됐다. 인구 3억 가운데 1/6이라면 많은 숫자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다. 이들을 위한 재원은 결국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올 예정이다.
년 수입 1백만 달러 이상의 고 수입자들은 특별 부가세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부자들이 극렬히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번 법안은 분량이 1천 990쪽이고 무게도 15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천225쪽인 ‘전쟁과 평화’라는 책보다 더 두껍다고 한다. 이런 법안을 앞두고 민주 공화당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다.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화당과 서민을 대변하는 민주당과의 싸움은 결국 만만히 끝날 것 같지 않다.
‘건강이 좋든 나쁘든, 소득이 적든 많든 이제 미국국민들은 필요할 때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평화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83세 노의원 존 딩켈의 소원이 2개의 과정만 남겨 놓고 있다. 상원 통과와 대통령의 서명만 기다리는 96% 국민의 기대가 무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dyk47@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