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그 동안 한국과 태국에 다녀왔습니다. 사진들 정리하고 여행기 쓰는데 여가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토요일 토론에 교역자 협의회 교역자들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토론초청에 가타부타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예상했지만 좀 한심합니다.
애당초 저는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와 만민교회간에 존재하는 신학적 거리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문제는 신문배포거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문배포 거부를 결정하기까지 교역자협의회와 개 교회의 당회, 제직회 또는 공동의회 등의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절차를 준수했느냐 하는 문제도 (이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역시 부차적인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교역자협의회에 소속된 교역자들의 양식과 철학이 과연 캘거리 교민사회에서 이 정도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합당할 만큼 이성적이고 mature 한가 하는 점을 교민사회 스스로가 공정하고 과학적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기독교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교민사회 전체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를 제기하게 된 동기는 신문배포거부결정이라는 이 분들의 구체적 행동입니다. 이 분들은 그 구체적 행동을 통해 교민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분들의 영향력 행사의 사정권에 들어있는 교인과 교민들은 이 분들의 교민사회 영향력 행사와 관련해 그 자격여부를 심사할 ‘사회적’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이게 공정한 게임이고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위한 상호 견제와 균형유지행위입니다. 교포사회에서 교회란 특정 종교의 신앙 공동체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한인사회의 social gathering place로서도 기능합니다. 따라서 이런 견제와 감시는 당연하고도 정당한 것 아닐까요?
누가 먼저 제안했던 어떤 형식이었던 또 참석자가 누구였던 토요일 토론회는 그 행동평가와 조정작업의 첫 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평가와 조정작업에 당사자들인 교역자들은 참석해서 소명할 건 소명하고 경청할 건 경청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이 사회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을 생산한 데 대해 그 동기와 명분 그리고 절차가 공정하고 합당했는지 설명하고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는 말 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잠깐 여담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은 자기의 양심과 인격, 그리고 사고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한 지식과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부류의 위험한 사람들은 ‘인격과 사고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한국 기독교의 문제란 것도 이런 위험한 분들이 자기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동체로부터 견제와 심사를 받지 않고 종교적 권위라고 하는 엄폐물 뒤에서 터무니없는 존경과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 입니다.
오해말기 바랍니다.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에서 신문배포거부 결정을 내린 목회자들이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교민사회가 한국의 기독교계 일각에서처럼 철학이 천박한 분들이 지도자연하면서 조직까지 만들어 일종의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그런 교민사회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국면에서 섣불리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지만 실망은 실망입니다.
캘거리 교역자 협의회에서 신문배포거부를 주도하신 목사님들에게 부탁합니다. 일을 먼저 벌였으면 수습도 함께 도와주는 미덕을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떳떳한 것 아닌가요?
신문배포거부를 결정한 교회에 소속된 교인님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신문배포거부결정이 개 교회 안에서 민주적인 동의절차를 거쳐 이루어 진 것인지와 아울러, 과연 교역자협의회의 결정이 옳은 일이었는지 의견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arni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