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동렬 (미주 주간현대 발행인, 샌프란시스코)
dyk47@yahoo.com
미국인들 사이에선 지금의 자신을 벽에 부딪친 사람으로 잘 표현한다.
부시 대통령 시절 북한과 이란을 싸잡아 ‘악의 축’ 이라고 말하던 그 자신감과 객기를 찾기 힘들다.
그 큰 이유는 경제 때문이다.
요즘 미국인이 가장 걱정하는 우선순위 1위는 이란도 북한도 아닌 ‘집을 어떻게 지키느냐’ 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 라도 집을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잠을 못 자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집은 누구에게나 매우 소중하다.
주거지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모든 정신과 애정이 그 집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구석구석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집을 강제적으로 떠나게 된 미국인들 마음엔 자녀들이 뛰어 놀던 농구대며, 바람에 나무가 뽑혀 앞 마당을 가로 막던 일이며 이런 저런 사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집에 얽히고 설킨 추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들의 무형 자산이다.
이런 가족의 냄새가 물씬 물씬 나는 집이 차압 당할 지경으로 가정 경제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저런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귀가 번뜩이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집은 지켜야
많은 미국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언제나 신문의 머리 기사에만 신경을 쓰지 실제로 국민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번 주택차압 관련된 구제책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젠 대통령 말도 신뢰 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아무리 대통령과 재무부 장관이 떠들어도 은행들은 눈 하나 깜작하지 않는다.
자신들 코가 세자나 빠졌는데 무슨 소리냐고 한다.
자신들이 정부로 받는 수모와 불이익을 빨리 면하기 위해선 무자비한 차압 방법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융자금 조정을 하려고 아무리 은행에 전화를 해도 담당자와 통화가 쉽지 않다.
담당자들은 “하루 8시간 똑 같은 소리를 듣는다”고 호소한다
내용은 똑같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다르다는 이야기다.
은행은 항상 “현재 고정 수입이 얼마냐”에 포인트를 두고 묻는다.
고정수입이 충분하면 왜 은행에 와서 문전박대를 받겠나.
결국 은행과 채무자의 관계는 평행선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미국인들은 은행에 가서 사정하느니 “돈 있는 삼촌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났다”고 생각한다.
포기할 수 없는 집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 채무자의 비극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야
금융업은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비밀의 병기였다.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에 걸맞게 세계 금융을 지배하기 위해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금융에 대한 연구가 많은 나라다.
지난해 리만 브라더스 사태로 시작된 금융부실도 따져보면 미국 금융기관들이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금융파생 상품을 개발하고, 금융도매업의 판을 너무 키우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자금이 몰리고 주체 할 수 없는 자금이 주택 시장에 파고 들어 집값이 고공행진 한 것이다.
심지어 자격 미달자에게도 ‘묻지마 융자’를 마구 해주면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했던 것이다.
이런 부도덕한 은행들이 정부로부터 저금리 융자를 받아 다시 소생하고 있다.
결국 국민의 돈으로 은행을 살렸는데, 반대로 그들을 살린 국민은 죽게 된 것이다.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은행을 탓 할 수 없다.
지금처럼 실업률이 높고 스몰 비즈니스가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차압 위기에 빠진 미국인들을 구제 융자는 불가능하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주택차압을 완화 또는 유예 시킬 수 있는 힘은 중앙정부뿐이다.
정부가 차압 된 집을 사서 다시 집 주인에게 저리로 융자해 재판매 해야 무더기 집 차압을 막을 수 있다.
15%의 주택이 위기 상황
현재 미국 내 약 15%에 이르는 주택이 차압을 당했거나 집행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는 약간 하향 조정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지만 지난 2007년 12월 공식적으로 시작된 불경기 시작 후 최대치에 달하고 있다.
주택 100채 가운데 최고 15채가 차압 또는 그 위기에 있다는 것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최고 위기 수준이라는 것이 금융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의 이런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기엔 그 숫자가 너무 많고 앞으로 줄어들 가능성보다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에 정부도 신경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은행들에게 반 강제적으로 이자율을 하향조정에 응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그리고 융자 조정을 희망하는 주택소유주와 적극적인 대화를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이제껏 채무자와의 만남조차 기피하던 은행으로선 당국의 명령에 아직도 주춤한 상태에 있다.
정부는 지금의 상태를 방치하면 정말로 겉잡을 수 없는 제2의 금융파동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오바마 정부가 또 다른 금융위기를 자초하지 않으려면 최우선적으로 주택차압 정지 또는 완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세계는 또다시 미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벌써 1백 개 이상의 은행들이 문을 강제적으로 닫았다.
자기 자본을 까먹는 은행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한국계 은행들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기관의 위기가 또다시 금융파동으로 이어질 지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금융기관들의 재무구조가 심상치 않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 이유는 기업들이 더 이상 고용창출 계획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번 경제 위기를 통해 고용인원을 20% 이상 줄여도 여전히 이익은 줄지 않고 개인 생산량이 증가 했기 때문에 고용 증가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직장을 잃은 사람이 다시 그 직장에 돌아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수 백만 명을 먹여 살린 닷컴(dot com)과 같은 먹거리 사업이 새로이 개발되지 않는 한 벽에 부딪친 미국인은 늘어날 것이다.
미국인과 비슷한 생활 수준의 동포들이 느끼는 위기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가 오는 경인년 새해에는 이런 어려움이 우리들의 가정에서 물러가는 소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