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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 본 받을 점 찾아내기.....노무현 |
작성자 pioneer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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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2188 |
작성일 2010-01-12 12:10 |
조회수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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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에 불행하게 우리들과 이별을 한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하여 건방진 표현이지만 칭찬이라는 단어로 그분을 생각해 볼까 합니다.
저는 그 분이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가 아닌 수도권 지역에
변호사의 자격으로 모회사 노사분규 현장을 방문 했을때
실물을 보았습니다. 대화를 할 입장이 아니였으니까요.
당시 저의 선배이신 해당구역 국회의원이 불평을 하신것을 옆에서 들었습니다. 노무현 변호사는 없는 자들 편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분이셨지요.
고등학교를 나와서 사법고시를 패쓰하고 판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능력이 충분히 명문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김영삼대통령도 그를 장관의 위치에 임명을 했으니 그분의 능력은 전 정권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이지요.
대통령이라는 위치, 최고권력자라는 위치에서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결코 어색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도 그가 보여준 획기적인 일입니다.
가장 신나는 일은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로 일관하던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져 상처를 입힌 일이지요. 생방송으로 나오는 장면이 얼마나 통쾌하던지....그게 법적으로 잘못된 일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속이 후련 합디다.
누가 뭐라해도 사실 그분 만큼 사리사욕 없이 대통령의 임기를 마친 사람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흠을 찾아내기 시작하면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고 생각 합니다. 심지어 교황도 나찌 전력이 있다고 하던데...
각계각층에 남아있는 특권층의 기득권을 없애려고 애쓴 점도 있지요.
기득권의 심한 반발도 있었지만 노무현이 아니면 할수 없는 일이지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를 줄이려고 애쓴 점은 그 성과와 상관 없이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메이져 기득권 언론들과의 힘든 싸움은 임기내내 계속 되었지만 굴복을 하지는 않았지요.
사실 그분의 노력과 성과를 모두 다 알지 못합니다.
제가 모르는 그 분의 성과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더 이해를 할 수 있도록요.
말 싸움은 그만 하렵니다.
상대방에 대해 충고하기를 시작하면 진심일지라도 싸움으로 끝나고
칭찬으로 시작하면 모두가 친구가 되는 것을
경험으로 압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의 본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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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 2010-01-12 13:2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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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당황스럽고 혼란스럽습니다. 처음에 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분이실 것 같다 그러다 조심 시간이 지나면서 아니야 이런분이 확실한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그런 심정 입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 혹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마음에도 없이 싸웠던 친구와 악수를 나누던 일이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대화 상대를 이해하려는 저의 노력이 웃음 거리가 되는 듯한 느낌 때문인거지요. 저는 님과의 토론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질 않습니다. 솔직히는 좀 더 눈치를 살펴본 후에 토론에 참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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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 2010-01-12 14:2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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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점은 좋은 점이고 나쁜 점은 나쁜 것이지요. 누구든지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요. 당연히 그분들이 모든 것이 다 옳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박정희가 무조건 나쁜 악당이 아닌것 처럼 다만 좋은 점들을 생각하고 배울 건 배우자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화해도 된다면 더 좋은 것이지요. 사실 노무현전대통령에 대해서 자세히 잘 알지 못하거든요. 위에 제가 열거한 것들은 저의 진심입니다. 다만 정치라는 것, 권력이라는 것은 부모형제 까지 죽일 수 있게 하는 잔인한 것이라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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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저를 보지 않을 것처럼 말씀은 하셨어도 자꾸 제가 했던 표현 같은 것을 인용하시는 걸 보고 댓글 안 달면 섭섭해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회고담 시간을 갖는 것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저도 그냥 잔잔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빨갱이’가 아닐까 하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우선 출신성분자체가 거리가 멀거든요. 부친 가족은 북한 (철원-평강)에서 대지주 출신으로 해방 이후 서울로 넘어 오셨구요. 모친 쪽은 외할아버지부터 아주 보수적인 목사님 집안입니다. 숙부는 9.28 수복 직전 때 당시 서울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 당국에 체포 됐습니다. 가족들은 납북됐다고 하는데 저는 좀 더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사찰(대공)계통 경찰관으로 북한의 후퇴국면에서 체포됐다면 결과는 보나마나일 것 입니다. 출신성분으로 치면 빨갱이는 고사하고 집안에서 서북청년단이 나오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지경이지요.
Pioneer 님의 노무현 경험담 잘 들었습니다.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지만 품격판단의 기준은 이념의 차이를 막론하고 대동소이할 것 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그가 가진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논할 때와 개인의 진정성이나 인격을 말할 때는 주제 자체를 구별해야 되겠지요.
Pioneer 님이 이명박 대통령을 별로 안 좋아하시듯이 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는 그 분을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파병 이후에는 작은 기대조차 접었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옛날부터 그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인상이란 꼭 거창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소한 스침 속에서도 필이 꽃히면 강한 자국으로 남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입니다. 1989 년 4 월 말에 부산교대 학생 하나가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뇌사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지요. 당시 나는 전민련(아마 아실 겁니다) 편집기획실 간사 자격으로 그 학생의 부모를 면담하고 그 여학생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부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 월 3 일 동의대 사태가 터집니다. 전민련 본부에서는 부산에 내려와 있는 저에게 사태파악과 취재를 우선 시작하라고 해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돼 있는 학생들을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당시 경찰 분위기는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 조차 분향소에서 봉변을 당할 정도로 험악했습니다.
본부 박용일 변호사와 부산의 김정남 씨(실화니까 실명공개해도 상관없겠지요) 등의 주선으로 노무현 의원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노무현은 당시 통일민주당 부산 동구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가 학생들이 수감돼 있던 경찰서 (이름 생각 안 남) 서장(황 모 씨였음)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것 입니다.
그 자신도 바쁘고 잘못하다가는 서장 친구고 뭐고 이성을 잃은 경찰관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개의치 않고 직접 전화를 걸어보고 양해를 구하고, 상황을 일일이 물어보고, 경찰서까지 같이 가 주는 등 차분하게 일 처리를 착착 해 나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그 경찰서의 서장실에서 서장 입회 하에 이른바 주모자로 분류된 학생들을 만날 수가 있었고 유치장까지 내려가 학생들을 면담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지못해 우리 일행을 안내하면서 적의에 찬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던 그 경찰서 직원들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당시 쟁점이 발화 원인이었는데 그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학생들이 화염병을 먼저 던진 게 아니라 시너통이 싸여있는 위험한 건물내부에서 총류탄을 마구 발사한 경찰측에 책임이 있다는 요지의 특집기사를 쓴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그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딱 두 차례밖에 없지만, 내가 본 그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한 일은 마무리를 짖고 확인까지 하는 아주 성실한 인간형이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내 작은 경험 속에서 그의 인간형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고 다른 분들은 또 각자 나름대로의 시각이 있겠죠.
저는 그 분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남긴 일들이나 명쾌한 논리-철학 이런 것 보다는 작은 일상에서 사람됨이 돋보였던 기억이 더 남습니다. 하기 싫으면 얼굴에 싫은 표정이 금방 드러나고, 마지못해서라도 일단 도와주기로 한 것은 기대도 하지 않은 것까지 마무리를 져 주는 성실한 자세, 이런 일들이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Pioneer 님의 의외의 노무현 칭찬을 읽으며 저도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을 좀 보태봤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인간이 또 나타나 본 글보다도 더 긴 댓글을 늘어 놓아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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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 2010-01-13 00:5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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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도 보기 싫긴요?
사실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제가 머저 사용한 빨갱이라는 단어 때문에 생각 나는 것이 있습니다.
젊은날 제가 서울명동에 모백화점 본점 증개축공사와 관련하여 일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회사의 고객 가운데 노신사 사업가 한분이 계셨지요.
젊은 저를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셨고 도움이 주셨던 분입니다.
아마 그 당시에도 무척 연로하셨으니 지금은 안계실 가능성이 크지요.
그 때에 젊은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민족 이념으로 나뉘어져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면 되겠는가?
혈육이 중요한가 이념이 중요한가?
저에게 물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통일이 무조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내 가족과 다시 살수 있지 않은가? 내 아버지가 빨갱이면 어떻고 자본가면 어떤가?\"
그 당시 이휘호여사와 약속이 있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할때 그 커피샵 구석에서 이야기는 듣지 못햇지만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분도 뵐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인자하고 좋으신 노인이 적화통일도 상관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척 당황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하면 잡혀가 엄청 고생을 하는 시절이지요.
저는 그 말씀을 오래 기억을 했습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의도를 갖고 나에게 이야기를 한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한 젊은이에게 인간적인 고뇌를 이야기 한 것인가?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에는 큰 형님이 한분 계십니다.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1.4 후퇴 당시 곧 다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신 제 부모께서 너무 어려서 같이 데리고 내려오지 못하고 할머니께 맡겨두고 오셨기 때문에 출신 성분이 아주 나쁜데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너무 나쁘다 하니 생존을 확신하기 힘듭니다.
어떤 때는 캐나다 시민권을 받아 캐나다시민의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 처자가,형제 부모가 이산가족이 되어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내가 살고 있을까?
아마도 지금은 그 노신사와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념이 가족사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치인도 아니면서 어떤 이념을 두고 언쟁을 격하게 하는 것도
어쩌면 무척 어리석은 짓일지 모릅니다.
혹자는 정말로 무책임한 말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전쟁이 난다면 물론 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겠지요.
늙었다고 집에 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요.
오늘은 부질 없는 비생산적 언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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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 2010-01-13 01:1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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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탈자가 있지만 수정하는 것이 안되니 그냥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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