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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에서는 휘파람을 불지마세요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2365 작성일 2010-02-19 19:21 조회수 1933

>>>>> 이 행진곡 여기에서만 듣고 콰이강의 다리에 가서는 휘파람을 불지마세요. -----------------------------------------------------------------

이 세상에는 개 같은 일이 참 많이 일어난다. 오늘 다루려고 하는 개 같은 경우를 이해하기 위해선 약간 지루한 설명이 필요하다.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총 26 만 명 중 10 만 3 천 명이 죽었다. 1942 년 여름부터 시작된 방콕과 양곤 간 415 km 에 이르는 죽음의 철도 공사현장에서의 이야기다.

죽음의 철도 (The Death Railway)란 현재 관광지가 된 칸차나부리와 남똑 구간뿐 아니라 이 두 도시간에 이어진 전 철도구간을 의미한다. 일찍이 버마를 식민 통치했던 영국은 이 지역의 철도 공사를 고민 끝에 포기했었다. 지형이 너무 험난해 공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 지역을 점령하자마자 도쿄의 대본영은 철도공사 강행을 명령했고, 이 명령을 접수한 일본제국군(Imperial Army) 남양방면군 총사령부는 현지 주민 20 여 만 명과 전쟁포로 6 만 여명을 강제 동원해 죽음의 철도 공사에 착수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콰이강의 다리’ 의 배경은 바로 이 죽음의 철도 구간 중 방콕 기점 100 여 km 정도 서부에 위치한 칸차나부리지역의 한 철교 공사장이다. 나는 이 영화를 결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인의 멋’을 부각시키기 위해 역사의 비극을 말도 안되리 만큼 축소시키는 우를 저질렀으니까. 아니, 우를 저지르고 있는 건 영화가 아니라 칸차나부리의 그 철교를 기차를 타고 건너가면서 열심히 ‘휘파람 행진곡’을 불러대고 있는 여행객들인지도 모르겠다.  

1941 년 12 월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과 때를 같이 해 감행한 싱가포르 점령작전으로 대규모의 연합군 포로가 발생하는데 영국군이 대부분인 이 연합군 포로들이 그로부터 6 개월 뒤 죽음의 철도 공사현장에 투입된다.          

당시 연합군 포로들은 그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인간적이고 신사적인 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포로의 약 20 % 인 1 만 3 천 명이 굶어 죽고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또 위험한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통계가 상황의 처참함을 잘 말해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연합군 포로들보다 더 혹독한 굶주림과 매질에 시달리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 속에 죽어갔던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영문도 모른 채 그 공사에 강제 동원됐던 약 20 여 만 명에 이르는 동남아의 현지 주민들이다. 이들 중 공사기간에 죽은 사람들은 무려 8 만 여명, 그러니까 사망률이 연합군 포로 사망률 20 % 의 두 배에 달하는 40 % 에 이른다.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포로수용소에서도 이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이처럼 짧은 기간 안에 이렇게 높은 사망률을 기록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전쟁의 비극을 한낱 군인정신으로 포장한 낭만적인 영화 따위가 과연 죽음의 철도의 그 참상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이 철도 공사의 무식한 강행은 아마 그 이듬해 창설된 버마 방면군의 인도침략 구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임팔작전의 실패로 이 새로운 침략전쟁에 참여한 버마방면군 제 15 군 휘하의 3 개 사단 소속 대부분의 병력이 버마의 정글 속에서 끔찍한 죽음을 당했지만, 당시 일본은 동맹국 독일과 의논 끝에 인도를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군사력을 분산시키고 동남아시아 자원을 안정적으로 장악하기 위해 인도침략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죽음의 철도는 바로 이 침략전쟁의 군수물자 및 병력의 수송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1945 년 종전 후 연합군 포로수용소를 관리하던 병력은 무장해제와 동시에 전범재판에 회부된다. 아마 당시 이곳에 끌려온 조선인들은 징용으로 끌려왔건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왔건 그래도 일본의 황국신민이었으니만큼 약간의 행세를 하는 지위를 부여 받았던 모양이다.

‘포로 및 강제 노역자 감시원’이라는 직책이 그것이다. 그 알량한 행세를 한 덕분에 이 불쌍한 조선 청년들은 전쟁 종료와 함께 전범 재판소에 끌려가 재판을 받았다. 그 중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포로감시 활동을 하던 청년들은 ‘포로학대’라는 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면 그 사형을 당한 조선 청년들에게 포로학대를 명령하고 죽음의 철도 공사를 추진해 10 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장본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제부터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개 같은 경우다.

당시 잔혹한 포로 학대로 가장 악명을 떨쳤던 현장 책임자 한 분과 가장 무식한 작전계획(임팔작전)으로 모든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높은 분 한 분 딱 두 분만 예를 들겠다. 히로시 아베 (대일본제국 육군 중위 연합군 포로수용소 소속 장교이자 죽음의 철도 송크라이 구간 현장 책임자로서 무려 3000 여 명의 연합군 포로를 사망에 이르게 한 무자비한 일본군 장교의 전형. 1948 년 B/C급 전범으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싱가포르 창이 교도소 수감 중 1948 년 15 년 형으로 감형. 1957 년 석방. (이렇게 살아나는 바람에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과거 전쟁범죄를 참회하는 말도 하는 등 칭찬도 받음)  

무다구치 렌야 (대일본제국 육군 육군중장 버마 방면군 소속 제 15 군 군사령관) 연대장(대좌) 시절 노구교 사건을 일으켜 1937 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 무다구치 중장께서는 일단 연합군에 연행되어 싱가포르 전범 재판소에 회부되기는 했는데 불기소 처분으로 곧 석방돼 잘 먹고 잘 살다가 1966 년 78 세를 일기로 작고하심.    

불기소 처분된 이유가 뭐냐고? 임팔작전에 실패해 3 만 명이 넘는 일본군을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작전과 사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공로로 정상참작이 됐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군속으로 강제로 끌려와 명령에 따라 포로를 감시하던 조

선인 청년들은 B/C 급 전범으로 분류돼 사형이 집행됨. 당시 스무 살짜리 (히로시 아베가 1922 년 생이고 철도공사 시기가 1942 년이니까) 육군 중위는 B/C 급 전범으로 기소돼 복역하다가 12 년 만인 1957 년 석방됨  

이 모든 비극을 초래한 현지 주둔군 총사령관 육군 중장 놈은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고 연합국과 일본 양 쪽으로부터 공로자 대우를 받으며 천수를 누림.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나?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칸차나부리에 가서 그 철교를 건너갈 때 휘파람 행진곡을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홧김에 한 잔 걸치고 정신 없이 돌아다니다가 연합군 묘지 상석 위에다 오줌이나 갈기고 오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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