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역전을 좋아한다.
약자로서 역사의 주인공보다 들러리에 선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럴것이다.
그래서 늘 역전을 꿈꿨다.
그러나 역전은 자주 있는게 아니다.
가끔 있어서 역전이지 자주 있으면 그게 일반적인 상황이 된다.
맨날 얻어 터지다가 모처럼 이겨야 기쁜거다.
그러면 맨날 이기다가 모처럼 눈이 밤탱이되면?
아니면 이제는 진 기억이 가물가물 해졌다면?
이런 상태가 되면 이제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거다.
그건 이제 역사를 이끌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 50대 이후의 아저씨들 기억 속에는 4전 5기의 홍수환 권투선수가 자리 잡고 있다.
4번 줄창 다운 되다가 5번째엔 상대방을 다운시킨 장면에 국민 모두가 일어섰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가 당시 유행어이다.
스포츠판에 끼어 본 적도 별로 없는 데다가
제대로 이겨본 경험이 없고 이겨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다가 역전으로 이겼다.
김득구 선수처럼 그것도 안되면 쓸쓸히 역사의 현장에서 퇴장당하는 아픔도 가지고 있다.
지고 있다가 이겼다는 얘기지 실력은 좀 모자란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두고 두고 써먹었다.
한국은 역전의 명수라고...
이건 내가 아직 실력이 없다고 얘기하고 다니는 거지만
그래도 어떠랴 모처럼 이겼는데...
그러나 이 말은 한국은 여전히 조연이란 얘기다.
우리끼리는 잘 통하는데 세계로 나가면 주눅이 들고 그랬다.
그러다가 아시아에선 통하는데 세계의 벽은 높다느니 하면서 또 역전을 꿈꿨다.
그러나 역전은 약자에게 통하는 논리지 강자에게 통하는 논리는 아니다.
약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
우연히 강자가 실수한 틈을 노리는게 역전의 의미다.
히딩크는 약자가 강자가 되는 법을 알려 줬다.
세계 4강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난 그걸 더 친다.
역전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되는 법을 안 것이다.
강자는 쫄지 않는다.
그런 자세를 강자가 되어 봤던 사람에게서 배운것이다.
대장이 쫄지 않으면 졸개들도 안쫀다.
그 대장을 만났고 그 자세를 배운것이다.
한 사람이면 족하다.
그런 한 명의 천재가 같은 공동체의 모든 사람의 위치를 끌어 올리는 거다.
히딩크가 한 단계 끌어 올린 위치를 야구가 끌어 올렸고
김연아가 두 단계 더 상승시켰다.
진검 승부에서 숫자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일본의 축구팀과 야구팀 숫자를 자꾸 비교하는 짓은 이제 하지 말자.
일본은 이미 강자의 맛을 보고 그 위치에 올라온 나라다.
이젠 피겨에서 그 일본도 꺾은 것이다.
피겨의 불모지라고?
그건 정말 스포츠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스포츠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종목들이 통해 있다.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도 올라간다.
역전이건 뭐건 간에 한 번 정상에 올라가면 그 때부턴 모든게 가능해진다.
이겨 본 사람이 이기는 거다.
어제 저녁에 김연아의 프리 스케이팅을 보고 느낀 점이 그것이었다.
아사다 마오가 더 이상 역전을 꿈꾸지 못하게 만든 제 일인자의 연기.
이겨봤기 때문에 이긴거고 역전의 맛을 알기 때문에 역전의 틈을 안 준거다.
아마추어의 바둑도 아니고 프로 4,5단 끼리의 승부도 아니다.
입신이라 불리우는 프로 9단끼리, 그리고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과의 진검 승부다.
역사를 쓰고 있는 장면에서의 승부다.
당사자는 물론이요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는 짜릿한 한 판이다.
누가 흐름을 주도하고 있고 누가 그 틈을 치고 들어오는 가를 봐야 한다.
그런데 김연아는 그 틈을 완전 봉쇄했다.
게임 끝.
오늘 아침에 인터넷 기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평이 없는게 아쉬웠다.
절반 정도의 기사가 쥬니어에서부터 이어진 아사다와의 긴 승부에서 이겼다는 둥
오서코치의 한을 풀었다는 둥..
남자부로 가도 정상권의 점수라는 둥-도대체 남자들이 왜 끼나, 하긴 이런 가십도 필요하겠지만-
아직 약자의 입장에서,아마추어 기자의 입장에서 쓰고 있다.
판을 내려다보면서 써야 한다.
역전의 역사를 알고 써야 한다.
김연아가 홍수환처럼 역전으로 이긴건가?
아니다 흐름을 알고 그 흐름을 이끈거다.
여기엔 히딩크같은 오서코치의 힘이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연기가 끝났을 때 난 역전은 없다라고 단정지었다.
관객 뿐만 아니라 심판들까지도 감동을 선사하는 연기에 어떤 역전이 있겠는가?
이제 한국인은 김연아로 인해 명실공히 주인공으로 등장한 거다.
김연아가 있음으로 곽민정이 올라서는 거고
제2, 제3의 김연아가 줄을 이어서 계속 주류를 이어가는 거다.
그렇게해서 불모지가 옥토로 바뀌는 거고
한 번 옥토로 바뀌면 여간해선 다시 잡초밭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쇼트트랙은 우리가 흐름이다.
때로 역전을 허용한다는 것이 이미 우리가 강자라는 걸 입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젠 스피드 스케이드도 접수했고 피겨도 접수한 거다.
그러면 동계 올림픽도 접수되는 거고 하계는 이미 매년 10위권 이내이다.
동계 올림픽의 접수.
내가 보는 김연아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단순히 피겨의 퀸이 아니라 한국이 동계 올림픽의 주류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힘을 실어 준 김연아.
지난 번에 '김연아의 眞,美'에서 김연아를 쓸 때 왜 그녀가 진인가 왜 미인가를 썼다.
이젠 그녀를 통해 우리가 역사에 등장하는 걸 쓰는 거다.
단순히 한 사람이 아닌 한국이라는 흐름이 역사에 등장하는 그 순간과 앞으로의 미래를....
추운 지방의 나라이거나 고기 먹고 자란 힘으로 밀어부친 나라들에 치여서
몇 십년을 구경꾼으로 보내야 했던 시절.
그러다가 쇼트트랙으로 치고 올라가 어께를 내밀기 몇 년만에 주류가 되었다.
그걸 김연아를 통해 이룩한 거다.
실력만이 평가 기준인 그래서 냉혹하다는 평가 또한 가지고 있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주류가 되었다는 건 이제 다른 분야를 이끌 수 있는 힘도 가진다는 의미다.
경제 선진국들이 스포츠 부문에 기를 쓰고 투자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건 오히려 역전에 대한 대비이다.
주인공은 항상 누군가에게 도전을 받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오늘만큼은 주인공이 된 기쁨을 canadian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
'I'm very happy today 'cause of YU-N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