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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한테 보내는 공개사과
작성자 clipboard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2518 작성일 2010-04-02 22:23 조회수 2272
언제부턴가 일요일 아침에는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사 들고 스타벅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그 책도 내가 가져 온 게 아니고 스타벅스가 들어가 있는 Chapter's 서점에서 가져온 것이다.


커피는 스타벅스보다 맥도널드의 Roast Coffee가 입맛에 맞아서고 소파는 스타벅스 것이 훨씬 푹신한 게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 약간 미안하니까 자리 값으로 cheese cake 하나 사 주는데 우리 동네 스타벅스의 장점은 대형 서점인 Chapter’s를 끼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건 스타벅스의 비즈니스 전략이기도 하지만 손님들이 자리에 퍼 질러 앉아 얼마나 오랫동안 먼 지랄을 하든 staff 들이 일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데 지난 일요일에는 안 갔다. 좀 기분이 꿀꿀해서……


아침에 뭔가를 찾다가 지하실 한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내 여행용 숄더 백 안에서 웬 작은 화장품 곽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게 어디서 난 거지?” 하고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다듬어 보고 나서야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 가을에 한국에 갈 때 당시 고3 (지금은 대학 1 학년)짜리 조카에게 주려고 비행기에서 산 것인데 여태까지 잊어먹고 있다가 오늘에야 발견한 것이다.  



SK-II 라는 상표의 아이크림이다.



작년에 태국에 다녀 온 뒤 한국에 들러서는 또 4 일 간 국내여행을 했다. 그렇게 미친듯이 싸 돌아다니면서 그냥 잊어 버린 것이다.



10 월 21 일 수요일 날 캐나다로 돌아가는 데 출국날짜가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월요일 오밤중에야 조카 생각이 났다.



조카 여섯 명 중 다섯명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살고 있고 그 아이만 유일하게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비록 매년 갈 때 마다 보긴 하지만 이번에도 한 번 만나고, 용돈도 좀 주고 오는 게 당연했다.  



집으로 걸까 하다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 부랴부랴 리스트를 뒤져 그 아이 셀로 전화를 때렸다.



“어, 막내 삼촌 언제 오셨어요?”



명랑한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한다. 그 시간에 아직 학교에 있단다. 수능이 며칠 안 남아서.



“내일 학교 제끼고 삼촌하고 같이 쇼핑갈까” 하고 물어보니까  “응, 그건 곤란한데……” 하면서 토요일 날 어떠시냐고 물어본다. 흠…… 토요일에는 삼촌이 한국에 없는데……



모. 내년에 또 오니까 그 때 보던지, 아니면 내년 여름에 삼촌한테 한 번 놀러 와도 좋고……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인데 조카와 전화를 하면서도 걔 주려고 아이크림을 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내 서울 숙소가 동교동이고 걔 학교는 경희대 근처라 좀 멀긴 하지만,



내가 그 때 조카 주려고 비행기에서 그 아이크림을 샀다는 사실을 기억했다면 아마 그 선물을 전달한다는 핑계를 대고서라도 그 아이를 찾아갔을 것이다.



동교동에서 휘경동이 멀다고 조카도 보고 오지 않은 주제에 도대체 캐나다에서 태국까지는 뭘 보겠다고 또 간다는 건지…… 그냥 스스로에게 좀 한심해져서 그냥 집에 죽치고 있었던 것인데,



그냥 집에 있기도 심심해서, 또 새삼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조카에게 태국 이야기를 멜로 보내려고 작년에 쓴 여행기를 몇 개 추려봤다.



가만히 읽어보니 뭔 여행기에다 정치적인 소리들을 그렇게 잔뜩 늘어놓은 것인지 내가 봐도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 사족들 솎아내고 추려내고 다시 엮으려다 보니까 쌩으로 여행기를 새로 쓰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어쨌든 그 날은 그렇게 일요일 하루를 바쁘게 보냈구만……      



뭐, 어쨌든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5 개월 전에 구입해서 그 날에야 발견한 그 아이크림은 어떻게 처리할 까 고민했는데,



올해 한국 갈 때 조카에게는 당연히 새 선물을 사다 주는 게 도리고,



와이프한테 주자니 ‘이 인간이 곧 죽으려고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나’ 하며 머리를 짚어 볼 것 같고,



7 년 전 담배를 끊었을 때 남아있던 담배보루를 모두 노숙자에게 주어버렸던 일이 생각나서, 다운타운으로 나가 어느 여성 노숙자에게 주고 올까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좀 그렇고,



결국 그냥 내가 사용하기로 했다.



사용법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검색해 보지도 않았는데, 우선 면도용 크림으로도 사용해 보고, 용기가 아주 작으니까 비행기타고 어디 갈 때 핸드크림 대용으로 Flight Security Bag에 넣고 다녀도 안성맞춤이고, 아이크림이라니까 가끔 눈 밑에도 대충 찍어 발라 보고, 뭐 그러면 될 것 같은데……  



혹시 어떤 사연으로 아이크림을 사용해 보신 남자분들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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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로  |  2010-04-05 23:4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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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나.. 그 좋은 아이크림을 면도용이라니.. ㅠㅠ
부디 부인께 헌납하셔서 사랑받는 남편이 되시길..
저도 남편에게 같은 브랜드 엣센스를 받으면서 쓸데없이 이딴건 사왔다구 하면서도 바를 땐 절로 므흣했답니다. 혹시 그 엣센스도 무신 사연이 있었던 건 아니었나?? -.,- 싶네요.. ㅋㅋ

clipboard  |  2010-04-06 06:0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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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뚜껑따서 제가 열심히 사용하고 있답니다.^^

알고보니 열 아홉살짜리 여자아이에게는 아이크림같은 건 필요없다는군요.

그래서 그 아이크림이 제 곁에 머물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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