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동렬 (미주 주간현대 발행인, 샌프란시스코)
dyk47@yahoo.com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드문 드문 비를 뿌리고 쌀쌀 맞은 날씨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난 3월 27일 밤 샌프란시스코 헙스트 극장에는 ‘용재 오닐 독주회’를 보기 위해 한인들이 보기 드물게 많이 모였다.
KAMSA(한미음악후원인협회)라는 음악후원인 봉사단체 탄생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히 마련한 음악축제였다.
인간적인 모습
기대와 기다림 속에 무대에 모습을 들어낸 용재 오닐.
검은 셔츠에 착 달라붙은 검은 슈츠를 입은 리챠드 용재 오닐(사진 / 이하 용재 오닐)의 모습은 중국의 무술 할리우드 스타 고(故) ‘이소룡’을 연상할 만큼 강한 인상을 주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소룡이 금방 상대방을 빨아드릴 듯한 독한 인상이었다면 용재 오닐은 너무도 한국적이고, 인간적인 예술인의 모습이었다.
이날 극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생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공연 1주일 전 KBS WORLD 인간극장에서 ‘용재 오닐의 이야기’를 5부작으로 나누어 방영했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도 2주전 커버스토리(2010년 3월 18일자 / 제4-11호)로 취재했다.
그의 출생과 관계없이 당당하게 자란 그를 보면서 한인들은 그가 ‘코리언’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그의 자상하고 감성적인 모습에서 그가 우리 모두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다시 본 것이다.
비올라의 재 평가
적지 않은 클래식 팬들에게 용재 오닐의 독주회는 익숙지 않은 비올라(Viola)의 선율에 접한 공연이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존재감이 잘 들어나지 않은 악기로 불린다.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예민한 바이올린의 음과 울림이 있고 깊은 음이 중후한 첼로에 비해 비올라는 무미건조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래서 이 대표적인 두 악기에 협력하는 보조 악기로 비올라는 알려져 있었지만 용재 오닐은 이제까지의 그런 평가에 머물지 않고 연주자로 비울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비올라의 경우 비올라만을 위한 곡은 거의 작곡된 것이 없다.
비올라의 가치를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용재 오닐은 그런 악기의 단점을 넘어 풍부한 감성의 연주로 가슴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멋진 연주를 한인들에게 선사했다.
비올라는 흔히 슬픈 흐느낌을 잘 묘사하는 음색이 특징인데 이번 공연에서 용재 오닐은 특유한 비올라의 감성이 들어 나고 애절한 슬픔을 잔잔하게 관중에 전달해 비올라를 재평가하게 했다. 특히 마지막 앙코르 곡 동요’섬집아기’는 바올라의 애잔한 음색을 여과 없이 전달됐다.
감사하는 용재 오닐
공연 후 극장 2층에 리셉션과 사인회가 열렸다.
충분히 준비된 음식은 관중들의 겉과 속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었으며 동시에 진행된 사인회는 용재 오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1시간 반 동안 긴장 속에 진행된 연주를 마치고 다시 사인장에 올라온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휴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재 오닐은 피로한 기색을 감추고 자신의 CD를 구매한 한인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고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맑은 얼굴로 개인 기념 사진 촬영에 임했다. 기념 사인회 내내 감사하고, 따듯한 모습으로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열심히 적었다.
간혹 생소한 이름을 요구 받으면 빈 종이에 연습하고 다시 CD에 옮겨 적는 성실함으로 이날 사인회에 참석한 한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흔히 연주자나 연예인들에게 볼 수 있는 그런 ‘스타’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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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높은 한인관중
이날 공연장 매표소에는 표가 완전히 매진 되었다. 주최측도 기대하지 못했던 흥행 대성공이다. 한인 상대 공연의 대부분 적자 공연이다.
그 이유는 돈을 내고 표를 사기 보다 표를 얻는 것이 자신의 위치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는 낼 망정 표는 잘 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간혹 공연의 내용과 관계없이 관중들의 매너가 거칠었던 것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표가 완전히 매진된 공연처럼 관중은 용재 오닐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응답했다.
연주자에게 사실 박수만큼 신나는 일은 없다. 그것도 관중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박수는 연주자를 춤추게 만드는 것이다.
이날 보여준 한인 관중들의 매너는 한인사회의 공연문화가 업그레이드 됐음을 보여준 매우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다.
특히 전체공연이 끝날 다음 전 관중이 일어나서 용재 오닐에게 앙코르를 요청하는 모습은 거의 경의적인 수준이었다.
새로운 신화를
이번 공연을 주최한 단체는 KAMSA라는 단체이다
널리 알려진 단체는 아니지만 지난 20년 동안 지역 청소년들에게 공연기회를 제공하고 재능 있는 청소년 연주자를 초청 공연하는 봉사자 역할을 해왔다.
초기에는 음악을 하는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지금은 후원인들도 다양해지고 범위도 점차 넓어졌다.
특히 지난번 금난새 지휘자 초청공연과 한인청소년 오케스트라의 한국 방문 공연 등으로 그 질과 규모가 상당히 업그레이드 된 상태다.
이번 어려운 용재 오닐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동안 KAMSA가 성실한 비 영리단체로 운영되고 한인연주자 개발과 후원의 공이 크게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미래 KAMSA가 미주전역이나 한국에서 더 좋은 공연과 훌륭한 청소년 연주자를 개발하기 위해선 범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들의 동포적 후원이 필요한 단계에 도달했다.
몇몇 음악 전문가나 동호인 수준이 아닌 음악 전문단체로 재 보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다른 한인들과 단체들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효원 회장은 공연을 마친 후 “이번 공연을 후원해 주신 언론사들과 관심을 보여 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더 좋은 공연을 동포들에게 보이기 위해선 동포들의 높은 관심과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큰 기대를 갖고 다음 공연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용재 오닐이 남긴 신화를 또다시 만들기 위해선 미래 지역 동포들의 후원에 달려 있다.
예술의 도시에 사는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에게 새로운 한인 청소년 개발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할 책임도 있다.
<dyk47@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