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인이 의사를 찾아와 피임약을 처방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노부인에게 물었다.
“실례이지만 부인께서는 지금 72살이십니다. 피임약을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그러십니까?”
부인이 대답했다. “수면에 도움이 되거든요”
곰곰이 생각하던 의사가 다시 물었다. “피임약이 도대체 어떻게 수면을 돕는다는 말입니까?”
노부인은 말했다. “매일 아침 우리 손녀의 오렌지주스에 피임약을 타고 나면 밤에 잠이 잘 오더군요”
피임약 조크이다. 철부지 손녀가 혹시라도 임신을 하면 어쩌나 불안하던 할머니가 묘안을 짜낸 것이다.
피임약의 용도는 임신을 막는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못지않게 큰 것이 수면효과이다. 여기서는 철모르는 손녀의 할머니가 수면효과를 보려 하지만 피임약 덕분에 밤잠을 잘 잘 수 있는, 있었던 여성은 천문학적 숫자에 이를 것이다.
오는 5월9일은 연방식품의약국이 경구 피임약을 승인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에노비드라는 피임약이 처음으로 시판되면서 미국에서는 피임의 시대가 열렸다. 성호르몬 조절로 임신을 막아주는 효능을 가진 피임약은 현재 미국에서 1,200만, 전 세계에서 1억명 이상의 여성들이 복용하고 있다. 그 많은 여성들이 아마도 피임약의 수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을 것이다.
고대로부터 원하지 않는 임신은 여성들에게 형벌이었다. 미혼여성이나 과부의 임신은 많은 문화권에서 돌로 맞아 죽을 죄악이었고, 기혼 여성들은 너무 잦은 임신과 출산으로 심신이 피폐했다. 피임은 인류문명만큼이나 오랜 인류의 숙제였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악어 똥을 개어 뭉쳐서 피임도구를 만들었고, 그리스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삼목 기름과 유향 기름이 피임에 좋다고 추천했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한 의사는 국왕 찰스 2세를 위해 양의 창자로 일종의 커버를 만들었는데 그 의사의 이름이 콘돔이었다. 오늘날 콘돔은 닥터 콘돔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모든 원시적 수고들을 일시에 해결해 준 것이 경구 피임약이었다. 경구 피임약을 처음 개발한 사람이 불임시술 전문가였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버드 출신 의사인 존 락은 호르몬 처방으로 불임 여성들의 임신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의 호르몬 처방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레고리 핀커스 박사가 락 박사의 실험에 동참, 불임 시술법을 역으로 사용하면서 피임효과를 얻게 되었다. 경구 피임약의 효과가 확인된 1957년에만 해도 미국의 많은 주들은 피임을 불허했다. 그래서 피임약은 ‘여성장애’ 치료약으로 알려지고 갑자기 미 전국에서는 월경불순 등 ‘여성장애’ 환자들이 급증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경구 피임약 승인 50주년을 맞아 피임약이 초래한 변화들에 대한 평가가 활발하다. 임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들이 얻은 자유, 그로 인해 가능해진 사회진출이 가장 큰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