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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ook 에서 2번 상영관에서 봤습니다. 7번은 스크린이 작아서요. 10:35분 마지막 show 였습니다.
워낙 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영화는 닥치는 대로 보는데다가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메멘토 등) IMDB 나 Rotten Tomato 에서 9/10점을 넘는 호평을 해 대길래 바로 표 끊고 들어갔습니다.
일단 다른 사람들 평가에 동의하고요, 꿈속 세계를 돌아다니는 내용이기 때문에 뇌신경과학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줄 만 합니다. Nolan 감독 영화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그 logical flow 인데, 짜집기를 해도 억지스러운 것이 없고 항상 믿을 만 합니다. 공상과학 영화라 해도 아주 그럴싸하다는 것이죠.
실제로 제가 배운 바로도, 인간의 뇌는 꿈을 꾸는 중에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는데 그 때문에 꿈을 꾸는 중에는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물론 아주 가끔 예외적으로 자는 중에 꿈인 것을 의식할 때가 있는데, 전문용어로는 lucid dream 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가끔 그런 경험을 하는데, 꿈에서 거의 깨어날 즈음에 (REM 상태) 꿈인 줄 알고 일부러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붙잡아 뽀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kick"을 경험한 이후에는 바로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만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뽀뽀를 하거나 뜨거운 물체를 만질 때 느끼는 감각은 뇌에서 똑같이 느끼기 때문에 꿈을 깬 직후에도 그 감각이 몇 초 정도는 남아있더군요. 물론 그것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사라지지만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Matrix 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죠.
꿈을 꾸는 중에는 이성적인 억제능력(inhibition)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로운 생각들이 뜹니다. 실제 사회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죠. 저는 꿈속에서 화가나서 사람을 흉기로 찌르기도 하고 짐승인지 사람인지를 잔인하게 괴롭힌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싫은 것들을 숨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 잘못을 돌리는 것을 projection 이라고 하는데, 꿈 속에서는 억제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projection 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죠. Inception 에서도 주인공의 죄책감이 여러가지 projection 을 통해 드러납니다.
영화 속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역시 2시간 30분이 넘는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특히 디카프리오(Cobb)의 연기는 나이가 들 수록 그 깊이를 더 해가는 것이 보이더군요. 어렸을 땐 생긴 게 괜히 마음에 안 들어서 싫어했는데, 지난 10여년 간의 모습을 보면 성숙한 연기자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 것 같습니다. 특히 Blood Diamond, Aviator, The Departed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디키프리오에 대한 선입견을 상당부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영화 Juno 에서도 출연했던 Halifax 출신의 캐네디언 여배우 Ellen Page (Ariadne 역)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Support actress 로서 튀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맡은 연기에 충실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가장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졌던 것은 Joseph Gordon-Levitt (Arthur 역)의 액션 배우로의 섹시한 변신이었습니다. 3rd Rock 이라는 TV show에서 먼저 알게 된 배우인데, 가족/코미디 장러에서 500 days of Summer 의 가슴 찡한 로맨틱 코미디, 그리고 Inception 의 파워풀한 액션 연기까지 다양한 연기폭을 보여주어 마치 지금은 고인이 된 Heath Ledger의 뒤를 잇는 훌륭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글이 길어졌지만, 타이트한 스토리 라인과 참신한 아이디어, 다양한 해석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강력히 추천하고픈 영화입니다.
단, 영화 보는 중에 음료수는 마시지 마세요. 중간에 화장실이라도 갔다오면 흐름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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