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이 포스팅은 배낭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작성한 여행기입니다. 사견을 가급적 배제하고 감정이 절제된 담담한 문체로 작성했습니다. 여행기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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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내렸습니다.
가수 정태춘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떠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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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는 햇살에
떠 오르는 헬리콥터 노을 날개도 찢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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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송정역입니다.
광주는 2 년 전에 와 본 적이 있는데 이 곳은 처음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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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문화전당이 된 과거의 전남도청 건물입니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 설 때마다 항상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 이 있습니다. 시민군이나 계엄군의 입장을 막론하고 생사가 갈리는 그 절박한 순간에 가장 먼저 다가왔던 느낌이나 생각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점 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현장은 그 유명한 5.21 집단발포사건이 일어난 곳 입니다.
집단발포가 있고 나서 일단 시 외곽으로 퇴각했던 계엄군은 그로부터 6 일 후 이 도시를 포위하고 전방위 공격작전을 감행합니다., 이 작은 건물을 다시 탈환하기 위해 특전사 소속 3 개 공수여단과 보병 제 20사단 소속 약 1 만 여 명의 전투병력이 20 mm 발칸포로 중무장한 공격용 헬기와 전차, 장갑차 등 의 엄호를 받으며 진주해 들어왔던 그 날의 그 길, 그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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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제가 방문한 날이 7080 충장문화축제 기간 중이었습니다. '충장'이란 광주의 번화가 충장로에서 따 온 말 같습니다. 서울에 명동-충무로가 있고 부산에 남포동이 있듯이 광주에는 충장로가 있었습니다.
5 월의 노래에 나오는 금남로가 더 유명하긴 하지만 금남로는 문화전당으로 향하는 대로입니다. 마치 서울의 세종로와 같은 간선도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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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용사? ㅎㅎ 1970 년대 만화가게가 여기 있네요. 그 때 초등학생 옷차림이 저랬나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아닌 것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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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이준기 방 비슷하지요. 광주의 교련복은 약간 칼러풀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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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담배 컬렉션 많이 부실해요 (사진도 약간 부실하고) 거북선도 안 보이고 솔도 안 보이고 (저 PINE TREE는 맨솔 같은데), 은하수는 또 어디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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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난데없이 김연숙의 '사랑밖엔 난 몰라' 가 들려와 걸음을 멈추고 들어가보니 교복과 교련복 차림의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였군요. 문 앞에서는 '레지' 아가씨가 "이 다방 영업하고 있습니다" 하면서 손님들을 부르고 있구요.
아까부터 교련복 교련복 하는데 교련복이 뭐냐구요? 왼쪽에서 악보를 보며 기타를 연주하는 안경낀 학생이 입고 있는 얼룩덜룩한 옷이 교련복입니다. 1970 년 대 초부터 1980 년대 말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저런 옷을 입고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지요.
근데 저 여학생은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네요. 7080 이 아니라 3040 모드 같은데요.
부르는 노래들 (아주 잘 불렀음)이 7080 맞기는 하지만 다방보다는 캬바레에서 많이 부르던 노래들 인 듯^^
스치는 자동차 속에 그대 모습 보았죠~
부인인듯한 사람인가~ 무척 행복한 표정이었죠~
그대 이름 그대 음성 찢어버린 사진처럼 잊어야 돼
하지만 나는 잊을 수 없네 너무나도 그리운 걸 어떡해~~
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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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삽질못해 죽은 귀신이 붙은 모양인데, 영산강이라고 무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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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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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내용이 거짓말로 채워진 이런 교과서로 공부해야 했던 엄마아빠와는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이런 마음과 행동으로......
>>>그리고, 이런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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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년 가을 처음으로 찾아갔던 5.18 국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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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와 아빠'
어느 프리랜서 외신기자에 의해 촬영된 이 한장의 사진
독일 슈피켈 지에 실렸던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의 이목을 대한민국 광주에 집중시켰습니다.
꼬마의 아빠 (당시 34 세)는 1980 년 5 월 21 일 오후 1 시
계엄군의 자동소총 집단 발포로 금남로에서 즉사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약 20 여 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있었기에
그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답니다.
그 누구도......
아, 그리고 이 꼬마가
지금은 35 세의 아저씨입니다.
광주광역시 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답니다.
>>>2005 년 봄, 5.18 국립묘지
당시 서울시장과 구청장들 (사진은 펌)
물론
이 세상에는
해골이 좀 잘못 끼워진 듯한
넋빠진 인간들도 많지만
누구나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그리고
생각의 폭이 닿는만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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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결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 입니다.
2010. 10.7 sa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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