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인가를 떠나 분단과 대립이라는 불행이 반복되고 있음이 통탄스럽네요. 고향을 잃고 피난생활 하시는 연평도 주민분들이 걱정되기도 하구요. 그분들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돌아가신 네분께도 조의를 표합니다. 밑에 논쟁하느라고 글쓰신 분들 논쟁도 좋지만 조의는 먼저 표하는게 순서가 아닐지...
북조선의 포격이 있고나서 그 위력이 새삼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과학이 발전되면서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또한 비례적으로 강력함이 커져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전쟁의 발발은 생각조차 하기싫은 끔직함 그 자체네요.
현대전에서 쓰이는 폭탄과 포탄의 종류는 여러가지이고 수를 세기가 불가능할 정도이죠. 위력과 성능도 마찬가지이구요.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포탄입니다. 전쟁영화를 보면 병사들이 총을 들고 돌진하고 그들 중간에 포탄이 터져서 여럿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이 종종 보이는데요. 이런식으로 목표물에 맞아서 폭발을 이루는 포탄을 작열탄이라고 합니다. 작열탄은 서양전쟁사에서 18세기 말엽 서서히 등장하고 19세기 중반에야 비로서 전쟁터의 주인공으로 부각됩니다. 따라서 자칫 고증이 잘못된 영화를 보면 이 작열탄이 마치 대포의 탄생과 함께 자연스레 생겨난 것으로 착각을 할수 있다는 거죠.
19세기까지 작열탄이 사용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기술력으로는 포탄내에 자체 폭발을 유발하는 신관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화약을 포탄에 집어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여 날려보내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막상 화약을 포탄에 집어넣고 불을 붙여 대포를 쏴보니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폭발하던지 아니면 때때로는 대포내에서 폭발을 해서 아군병력에 손실을 주는 불상사가 일어났던거죠.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작열탄이 탄생하기 전에는 포탄이란 단순한 금속덩어리로서 대포에서 발사되어서 적의 방어물이나 은폐물을 허무는 용도로 쓰였고 야전에서 대규모 살상은 불가능한 제한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이유로 당시의 대포란 단지 공성전에서 성을 허물고 해전에서 적선을 파괴하는 기능이 99%였습니다.
참고로 이런 금속덩어리 포탄이 주무기로 사용된 대표적인 전투가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해군과의 영불해협 전투인데요. 열흘간 서로에게 대포를 쏘아서 단 세척만이(스페인배들) 침몰되는 다소 싱거운 결과를 가져왔죠. 이런 결과는 무엇보다도 포탄이 작열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폭발력은 없고 충격력만을 지니고 있어서이죠.
서양의 전쟁사에서 보여진 포탄의 역사는 대충 이렇지만 동양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들어들 보셨겠지만 우리의 비격진천뢰가 바로 자체폭발이 가능한 포탄이였죠. 조일전쟁당시 16세기말에 이미 실용화되었다니 서양보다 2, 3세기 앞서서 작열탄을 전투에서 사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격진천뢰는 중국의 진천뢰라는 현대의 휴대용 수류탄과 기능이 비슷한 포탄을 모델로 삼아서 만든 작품인데 대포에 넣어 발사시켜 사정거리를 늘리고 포탄의 크기를 중국의 원조 진천뢰보다 확대시켜 살상력을 높인 우수한 무기였습니다. 융원필기에는 비격진천뢰의 제작법과 그 용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어있는데요. 중완구에 넣어 쏘면 300보를 날라가며 얼마뒤에 저절로 터진다라고 설명하네요. 300보라면 당시로서는 정말 긴 거리죠(조총의 사정거리가 50보였음). 가장 특이한 점은 중국의 진천뢰에는 없는 신관기능이 비격진천뢰에는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목곡이라 불리는 죽통인데 이 죽통을 포탄안에 집어넣고 죽통주변을 철편과 화약을 채운뒤 죽통안에 도화선을 감아서 도화선에 불을 붙여 날려보내면 폭발시간의 조절이 가능했던 것이죠. 목표물에 날아가는 시간동안 폭발이 지연되다보니 서양인들이 실패한 대포사격이 가능해 진것이죠. 단순히 도화선을 포탄에 연결한 서양인들이 시간조절에 실패한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잠시 포탄역사를 생각해 봤네요.
참, 그리구 이 비격진천뢰는 절대로 보온병처럼 안보여요. 그냥 둥그렇게 생겼으니 혼동 절대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