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이 성탄축하 메시지는 20~30 대 배낭여행자들을 독자대상으로 작성한 글 입니다. 따라서 이 게시판 성격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sarnia 입니다^^ 곧 크리스마스네요. 예수 선생님 생신 축하 드리고요. 카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회원님들께 각별한 축하말씀을 드립니다. 수유동에 가면 화계사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이 서로 이웃하고 있습니다. 화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고 한신대 신학대학원은 김재준 안병무 문익환 등 한국 진보신학의 거장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theology school 입니다. 이 불교사찰과 신학대학원 사이에는 아름다운 전통이 하나 있습니다. 화계사는 예수 탄신일에, 한신대 신학대학원은 부처님 오신 날에 각각 탄신 축하 펼침막을 정문 앞에 걸어 놓습니다. 몇 년 전부터 늘 화제가 됐던 이 나이스한 이야기를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실 것 입니다. 저는 종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부처 선생님이 예수 선생님보다 약 620 년 정도 형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요. 이 두 분의 생애나 사상에 참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 입니다. 그나마 기독교 서적은 이것 저것 읽은 게 좀 있지만 불교에 관한 책은 거의 읽어본 일이 없는 제가 이런 말 하는 게 좀 주제넘지만 말이죠^^ 암튼 제가 느낀 것은 그렇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출생신화가 특이하고 초자연적인 것이야 사람들에 의해 나중에 만들어진 동화 같은 이야기니까 별로 신기할 것은 없습니다. 설화 또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과 구분한다고 해서 기독교나 불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동정녀 탄생이나 육체적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인의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코끼리 이야기나 마야부인 옆구리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불교신자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듯 이요. 예수 선생님과 부처 선생님 두 분은 모두 그 분들 시대를 짓누르고 있었던 지배이데올로기나 상식, 종교적 교리 같은 것들에 복종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상상력과 착한 품성을 가졌던 분들 같습니다. 두 분 다 비슷한 나이에 출가를 해서 사서 고생들을 하셨구요. 비슷한 나이에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 분들 동시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앞 선 생각들을 거침없이 이야기함으로써 그 시대의 보수적인 어른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예수 선생님은 몇 차례나 맞아 죽을 뻔 하다가 결국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저는 성경을 잘 모르지만 기독교인들은 아마 예수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 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불경을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싯다르타 선생님의 이런 선언은 기억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종교학자들은 이 두 분이 각각 한 이 말을 같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두 분이 말한 ‘나’라는 개념은 그 분들 자신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아(自我)로서의 인간 일반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인간의 운명은 하늘의 명령, 유대교의 율법, 운명 따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는 당시의 일반적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결정된다는 선언을 했다는 것 입니다. 그 시대에 이런 말들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각각 2000 년 전과 2600 년 전이니 어떤 시대였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신학자들이나 종교학자들이 이런 추측을 하기는 합니다. 그 시대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그 두 분이 도대체 무슨 ‘똥밟은 개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저는 잘 모르고, 그냥 종교와 그 당시의 역사를 많이 공부한 분들이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 입니다. 물론 어떤 기독교인들은 요한복음 (14 장 12 절)에 나와 있는 예수 선생님의 저 말씀을 엉뚱하게 해석을 한 나머지 “예수를 ‘거치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이라는 황당한 신념아래 남들 지옥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결심을 하시고 오늘도 남의 집 초인종을 열심히 누르다가 sarnia 같은 ‘마귀 집주인’을 만나면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십니다. (이 기회에 저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나신 교회 전도자 여러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어쨌든 저는 작년에 우연히 원저자로부터 얻은 도마복음강해를 모두 읽어보고 나서야 “성서 정경에 채택된 4 복음서가 예수 선생을 설명하는 자료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답니다. 아, 도마복음이란 도마-식칼 할 때 그 도마가 아니구요. 복음이라는 말도 볶음 (pan-fried) 하고는 발음도 의미도 다릅니다. 영어로 gospel 이라고도 하는데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의 기독교 용어입니다. 도마복음이란 예수 선생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하나인 그 도마가 쓴 기록을 말 합니다. 영어로는 Thomas 라고 부릅니다. 제자들 중 가장 똑똑했고 그런 만큼 여러 가지 의심과 딴지가 많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도마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으신 분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가 콘스탄티누스 시대인 기원후 313 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12 년 후인 325 년에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기독교를 아예 로마의 공식 국교로 정한 사실을 기억하실 것 입니다. 이 시기에 로마제국을 통일한 황제권력은 제국과 식민지를 포함한 거대한 지역을 통치할 지배이념을 확립하는데 그 지배이념의 핵심을 기독교의 유일신사상으로 정하게 됩니다. 황제권력의 단일성과 기독교의 유일신을 결합시킨 새 지배이념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요. 니케아 공의회는 새 지배이념을 종교적인 교리로 확립하기 위해 마련된 종교지도자 모임이었습니다. 공의회의 토론과 결정에 따라 그때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떠돌던 예수 선생의 자료들이 수집되고 그 자료들 중 예수의 신성-유일성이 강조된 스물 일곱 가지 문헌을 선별적으로 채택해서 성서를 편집하게 됩니다. 스물 일곱 가지 문헌이 성서로 선포된 이후 이 문헌에 기초해 확립된 종교적 교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머지 모든 문헌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소각 작전이 전개됐고, 딴 소리를 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됐습니다. 로마 권력에 의한 진짜 기독교 박해란 사실 밀라노 칙령 선포와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저질러 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입니다. 적어도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로마는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관대한 체제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순교하겠다고 달려드는 광신자들이 귀찮아 로마 관리가 도망 다닌 적도 있고, 죽여달라고 하는 순교희망자들을 향해 ‘나는 너를 죽일 이유가 없지만 자살하는 것은 자유’ 라고 얼렁뚱땅 피해버린 로마 황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되거나 날조된 것들이 많다고 하구요. ------
2004 년엔가 영어책으로 읽기를 시작하다가 짜증나서 집어치운 뒤, 몇 년 전에 번역본을 이용해 읽기를 마친 ‘The Jesus Mysteries’ 는 책 전체 분량의 3 분의 1에 달하는 엄청난 주석이 귀중한 자료 같습니다. 그 주석 자료는 필자가 인용한 책을 다 읽을 것도 없이 해당분야만 검색을 하던지 아니면 도서관에 갈 기회가 있을 때 찾아서 확인만 하면 되니까 참 편리하지요. 한국에서 종교에 관한 훌륭한 책을 고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기총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그 단체가 정해 놓은 금서목록 중에서 고르면 보석같은 자료들을 많이 건질 수 있습니다. The Jesus Mysteries'도 그 보석 중의 하나랍니다.
John Shelby Spong 의 Jesus for the Non Religious 는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는 책 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성공회 (The Englican Church) 의 주교입니다. 어느 chapter 의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예수 선생님은 배들레헴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는 지혜를 성직자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예수 선생님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그리 신통치 않게 생각했던 분 같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나 종교지도자 (당시는 제정일치시대였으므로 종교지도자는 곧 권력자) 들이 들으면 잡혀서 맞아 죽을 소리만 골라서 했으니까요. 도마북음에 관한 해설서는 이 책과 도올 김용옥 아저씨가 엮은 책이 있는데 후자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한국 나가면 구해 올 생각이구요. ----------- 아무튼 이 유대인 사나이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신약 성서의 테두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도마복음이란 그 당시 로마권력과 그 권력에 협조하는 문자주의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수색과 살육을 피해 토기 속에 밀봉돼 숨겨져 오다가 약 60 여 년 전에 이집트의 한 농촌에서 발견된 문서 중 하나입니다. 그 문서가 발견된 지역의 이름이 나그함마디인데 그래서 이 문서들을 나그함마디 문서라고 부릅니다. 아, 참 로마종교권력이 파견한 추적자들을 비해 도망다닌 문서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마리아복음서’도 포함돼 있습니다. 마리아복음서는 나그함마디 문서보다는 먼저 발견된 문서랍니다. 마리아복음서의 마리아란 예수 선생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고 예수 선생님의 유일하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Magdalena 출신의 예쁘고 귀엽고 지혜로웠던 완소녀, 그 마리아를 말합니다. 각설하고, 로마 종교권력에 의해 쫓겨 다녔던 그 문서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왜 이 문서들이 당시 권력의 추적을 피해 항아리 속에 들어가 숨어버릴 수 밖에 없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목사님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어 온 부활이라든가 종말, 심판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내 안에서 울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무엇인가 초월적인 진리 또는 ‘나의 의미’를 깨닫는 것…… 뭐,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뭔 소린지 잘 이해도 할 수 없었고 뜬구름 잡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얼토당토하지 않은 스토리에 대한 '역사적 사실성'과 '믿음'을 강조하는 수상쩍은 설교보다는 훨씬 종교다운 깊이가 있는 이야기들 같습니다. 부활이야기를 하더라도 공관복음에 나오는 의미와는 전혀 다릅니다. 공관복음이 초자연적인 육제적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도록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데 반해 도마복음에서는 ‘깨닫는 자로서의 새로운 삶’의 의미로 그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저는 공부시간에 졸지 않은 수제자는 배드로가 아니라 아무래도 도마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그함마디 문서에서의 예수 선생님은 부처 선생님과 아주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아주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와 문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 기독교와 불교도 그런 주고받음이 있지 않았을까요? 예수 선생님과 부처 선생님 사이에 어떤 교류와 영향이 있었다면 당연히 예수 선생님이 600 년 형님 되시는 부처 선생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부처 선생님이 예수 선생님의 사상적 형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저는 불교신자 절대 아니고요. 보수적인 교단의 꽤 알려진 목사님의 외손자이고 그런 기독교 가풍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말하자면 기독교 클럽 멤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선생님 생일 축하 메시지, 나름대로 진솔하면서도 착하게 썼으니까요. 혼내지 마시구요. 그냥 sarnia 식으로 예수 선생님 생일 축하한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러니까 딴지나 악플보다는 덕담을 해 주셔야 분위기에 맞는 거겠죠^^ 저는 평소에 술을 잘 안 마시는데 크리스마스 즈음해서는 모임에 나갈 때 자동차를 집에 놓고 나간답니다. 예수 선생님 생일 축하주 하러요. Happy birthday Jesus!! From sarnia :) 저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념이나 신앙이 아니라 상상력과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과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종류의 이념이나 종교 교리도 거부합니다. 저는 기성종교가 인류문화사에 남긴 가장 큰 폐해를 한 가지만 들라면 '심판과 지옥'이라는 개념을 도구로 인간의 영혼을 협박한 죄악을 들겠습니다. ------------------------------------------------------------- 추신: 아, 참. 한국에서는 교회 다니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이 이야기를 약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일기로 예수 선생님은 술을 즐겨 마시는 ‘애주가’ 였던 것 같거든요. 그거 아세요. 예수 선생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는데, 그 기록된 기적들 중 가장 최초로 행한 기적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술이 떨어지자 손님들을 위해 신속하게 술을 조달한 기적이었답니다. (요한복음 2장 1 절~ 12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