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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그럼 진짜를 찾아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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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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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3592 |
작성일 2011-01-16 16:08 |
조회수 2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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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사이드님이 김일성 (북한주석)에 관해 제게 한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김일성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김일성을 가짜라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전자는 가치판단이니만큼 그 판단에 대한 논리적 정합성이 전제돼 있다면 시비 걸 게 없는 일이지만 후자는 다릅니다. 후자는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로 자기기만을 하고 있거나 당췌 모르거나…… (ㅎㅎ 당췌 라는 단어 많이 쓰나요? 옛날 학교다닐 때 들은 중국에서 가장 무식한 3 형제 이름이야기가 생각나서요. 영 몰라, 통 몰라, 당췌 몰라)
이승만 정권이 한 일 중 가장 바보 같은 짓 중 하나는 자기들의 주적인 김일성을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 입니다. 몇 개의 항일전투를 승리로 이끈 청년 부대장 김일성을 백두산을 호령하던 김일성 장군으로 격상시킨 것은 역설적으로 가짜 김일성을 폄훼하기 위해 ‘진짜 김일성’을 열심히 우상화해 온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라는 말이지요.
후에 김일성으로 개명한 김성주는 동북항일연군 제 1 로군 6 사의 사장 (부대장)으로 유격투쟁을 전개했었던 인물입니다. 김일성은 6 사의 전신인 3 사 간부 시절부터 노령전투, 서강전투, 동강전투 (모두 1936 년) 등 항일무장투쟁 전선에서 일본 정규군과 전투를 벌여왔습니다. 1937 년 압록강을 넘어 조선의 평북 갑산 보천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른바 보천보 사건이 그를 다소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이승만 빼고 거의 몽땅 친일파로 구성된 당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북한 주석 김일성의 이 정도 유명세도 견디기 어려웠는지 난데없이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면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하다가 연해주로 가서 소련군 장교가 된 그 진짜 김일성은 행방불명이라도 됐다는 이야기인가요?
이 엉뚱깽뚱한 가짜 김일성론은 갈수록 점입가경이 됩니다. 진짜 김일성은 백두산을 호령하던 호호백발 할아버지라느니 진짜 김일성은 김좌진을 죽인 김일성 (金一星 : 고려공산당 소속 김봉환의 가명)) 이라느니 아, 근데 김좌진을 죽인 김일성이 사실은 북한 주석 김일성이라느니 하며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 횡설수설을 지껄이기에 이르렀고, 이 바람에 一 자와 日 자를 구별할 수 없었던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이 그 김일성이 저 김일성인가 긴가민가하다가 우익 주먹 조직을 총동원해서 남한의 좌익 활동가 1 천 여명을 백색테러로 살해하는 비극을 불러오기에 이릅니다.
북한 주석 김일성이 동북항일연군 1 로군 6 사장으로 보천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 김일성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양심선언 (?)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1963 년부터 1969 년까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이었습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그는 중정에 있으면서 전에 몰랐던 두 가지 진실을 목격했는데 하나는 박정희의 화려한 좌익 활약상이고 또 하나는 북한 주석 김일성의 진짜 자료를 중정부장의 위치에서 확인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회고록 제 2 권 (?) 에서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반공교육을 하는데 떳떳하지 않을까 하는 요지의 의견을 남깁니다. (제 기억으로 김형욱이 회고록에서 김일성의 구체적인 직책까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 도큐먼트를 검색해 보니 지난 여름 파이오니어 님께 드렸던 이 문제에 대한 글이 있군요. 북사해서 올립니다. 지금 베스트바이 문 닫기 전에 지난 주에 산 렙톱을 맥북으로 바꾸기 위해 나가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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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파이오니어 님께 드렸던 글 (이번에는 레이크사이드 님께 드립니다)
한반도의 비극을 잉태시킨 이 두 명의 정치지도자가 과연 처음부터 그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을까요? 이승만 이야기는 많이 아실 테니까 저는 김일성 이야기를 좀 하지요.
독립운동을 취미생활 겸 향후 정치권력을 위한 경력관리 정도로 삼아 미국과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 상해 등지를 시계불알처럼 왔다 갔다 한 것이 독립운동 경력의 전부인 이승만이 국내 기반이 취약하고 남한 주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손 치더라도 김일성의 경우는 약간 특이합니다.
그는 성장배경도 무난하고 항일투쟁 경력도 화려합니다. (저 누누이 말했지만 친북좌파 절대 아니고 김정일 정권 무지 안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선입관 갖지 말고 읽어 보세요)
알려진 대로 그는 북한사회에서 말하는 기본계급 출신은 아닙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비교적 ‘쟁쟁한’ 집안입니다. 외조부 강돈욱은 창덕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이고, 부친 김형직은 조선국민회를 결성하고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은 둘 다 숭실학교를 졸업한 인텔리였는데 외가 쪽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1926 년 김형직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역시 독립운동가였던 손정도 목사의 극진한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만주의 명문 육문중학교에 입학합니다. 김성주(김일성의 어릴 적 이름)의 사람됨을 일찍부터 알아보고 그의 후견인 역할을 맡은 손정도 목사는 아시다시피 그의 큰 아들(손원일 대한민국 초대 해군참모총장)은 남한의 국립묘지에, 작은 아들(재미교포 손원태 박사)은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각각 묻혀 있는, 한반도 분단 비극을 상징하고 있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아버지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비교적 반듯한 집안과 교육풍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후견인과 학교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어린 김성주는 1920 년대 판 ‘촛불소년’으로 자라날 수 있었고, 15 세 나이에 길림시에서 강연회를 한 도산 안창호에게 계몽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질문을 할 정도로 뚜렷한 역사의식 또한 갖출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잠깐 여기서 1927 년 있었던 소년 김성주와 안창호의 재미있는 노선갈등 (?) 일화를 소개할까요?
당대의 지식인 안창호에게 당돌한 질문을 퍼 부었던 그 홍안의 소년 김성주는 당시 길림시 소재 육문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1927 년의 일이니 만 15 세 때 일이지요. 다음이 그 질문 내용입니다.
첫째, 연사는 조선의 산업과 교육을 진흥시켜 조선민족의 실력배양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일본놈 들로부터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둘째, 연사는 우리 민족이 정신수양이 부족한 민족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어떤 점이 그러한가?
셋째, 연사는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과연 올바른 길인가, 그리고 우리가 그 나라들의 도움으로 독립을 이룰 수 있겠는가?
기록에 의하면 당시 소년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쪽지 질문을 받은 안창호는 답변을 못했다고 합니다. 답변을 못한 이유는 답을 몰라서였다기 보다 답을 하기가 난감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항일운동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입장 자체가 달랐으니까요.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안창호 강연장 사건만 해도 남한에서는 북한 측의 날조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런 종류의 역사적 사건이란 날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증인만 해도 4 백 여명이 넘으니까요. 그러나 북한측 자료 불멸의 총서는 적어도 저 같은 자유민주주의자가 보기에 심각한 왜곡의 흔적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당시 안창호가 김성주의 질문을 받고 당황한 나머지 질문을 제대로 못해 강연장 분위기가 흐지부지됐다’ 는 식의 이야기를 첨가함으로써 이 강연회 사건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몇 년 전 도올 선생이 어느 교육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인용하면서 비슷한 해석을 하더군요. 그 분이 현대사학자는 아니지만 저는 그 분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 읽어 본 자료가 손원태 박사가 쓴 ‘Kim Il Sung and Struggle-An Unconventional History’ 입니다. 이 분이 김일성의 어릴 적 친구이긴 하지만 재미교포라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습니다. 그 책의 Chapter 7 A Campaign to Get Ahn Chang Ho Release From Detention 71 쪽부터 당시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역시 이 자료에서는 안창호가 당황했다느니 하는 소리는 없고, 다만 친구 (김성주)의 질문쪽지를 받아 읽은 안창호가 잠시 멈칫했는데 그 짧은 정지된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고 술회하고 잇습니다. 북한자료하고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진술이지만 소년의 당돌한 질문에 노선이 다른 안창호가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는 좀 난감했을 거라는 정도의 생각은 듭니다.
암튼, 보다시피 그는 성장배경은 물론이고 항일투쟁 경력 역시 비교적 화려했지만, 그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기에는 좀 어려운 요인과 여건이 있었습니다. 첫째,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는 엄청난 수의 쟁쟁한 항일투쟁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몰려들어 그가 지명도면에서 상대적인 열세를 면할 수가 없었지요. 둘째, 중일전쟁 발발 이후 관동군의 강화된 토벌작전으로 그가 이끄는 항일연군이 소련지역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는데, 1941 년경부터 1945 년 8 월 9 일 소련의 대일참전이 선포되기까지는 그의 알려진 활동이 별로 없는 공백기였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 4 년 간의 기간 중, 해방 후 실제로 조선에 진주한 소련군 지도부와 끈끈한 인맥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게 그 개인에게는 전화위복의 기회였는지 모르나, 정치적 열세와 소련인맥, 이 두 가지 사실의 묘한 결합은 1945 년부터 ‘종파사건’으로 연안파가 숙청된 1956 년까지 김일성의 무리한 권력장악과정을 배태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싫은 건 싫은 거고 사실은 사실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진짜를 가짜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또 김일성 북한주석의 항일유격투쟁 당시의 공이 아무리 크더라도 한국전쟁과정에서 저지른 일정한 과오나 전쟁 후 무리한 노선투쟁과 같은 문제들이 용서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가 밉다고 가짜 운운하며 거짓말까지 하는 너절한 자세는 버리자……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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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사이드 님이 제게 한 질문
김일성에 대해서는 북한에서 이주를 하신 내 부모님께서도
북한에 사는 사람들 조차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이라고들 하더라고 한답니다.
님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하시나요?
근거를 가지고 말씀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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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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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구글에서 김일성에 대한 내용을 읽어 보았습니다.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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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드리지만 김일성의 항일투쟁경력이 그의 과오를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은 일제의 패망을 계기로 그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내전의 참화를 필연적으로 겪게되는 동북아 내전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야 되지만 그 과정에서 김일성이 한 오판 역시 재평가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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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1-17 01:5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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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side님은 처음에 올리셨다가 지우고 다시 올리신 글이 훨씬 부드럽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역쉬 많이 배웠습니다. 김일성과 안창호 이야기는 저도 도올 선생 강연에서 들은 기억이 \'학실히\' 납니다. Bruce Comings의 [North Korea] (2004)에 제 3장 “The Legend of Kim Il Sung”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클립보드님께서 문제 제기하신 것과 거의 비슷하군요. 방금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가르치는 커밍스와 같은 연배의 학자로부터 들었는데, 그 학자의 대학원생이 김일성은 유명한 독립군 게릴라의 이름을 훔씬 사기꾼이라고 주장했는데 본인은 그 학생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커밍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키밍스는 아마도 그 학생이 남한에서 온 한국인일거라고 말하면서 그 이야기는 “big lie”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남한 사람들에게는 “an unquestionable truth”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클립보드님께서 적으신 내용과 대동상이하구요. 김일성의 이력에 대해서는 25쪽 분량의 짧은 분량이지만, 그 동안 이해안된 부분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 부분을 요약해서 올리고 싶군요. 특히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같은 소련 공산당에 의해 처형당한 것이나, 38선의 아이디어는 소련으로부터가 아니라 해방되기 3년 전 미국에서 나온 것이며, 소련의 경우 별로 계획없이 북한 지역에 진군하였다는 것, 김일성 역시 소련의 절대적 지지하에 들어 온 것이 아니라 별로 계획없이 개별적으로 평양에 도착했고, 처음엔 소련보다는 조만식 밑에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이런 과정에 이르게 한 역사적 원인, 즉 역사적 인과성을 따진다면 반공주의적 한국인 친일분자들 의 행각으로 한국인 공산당이나 독립투사들이 일본 앞잡이로 몰렸다는 것 등등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그 동안 한국 현대사를 공부안했다는 증거죠.
사족으로 주제와 관계없는 것이지만, 안창호 이야기가 나와서 부연을 답니다. 미국의 중고딩을 위한 책 Susan Sinnott의 [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라는 책이 있는데, 이것은 이민 1세대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아시아계와 태평양군도 출신인물들을 다룬 약전입니다. 캘거리의 Crowfoot Public Library에서 discarded 된 것을 건진 것이죠. 안창호 (1878-1938)와 아시겠지만 그의 아들 Philip Ahn (1905-1978)의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안창호는 social activist로 안필립은 film and television actor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필립은 독립운동가를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를 거의 알 기회를 없었다고 합니다. 안창호가 아들이 배우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300편 이상의 영화에 출현했고 대부분 아시아인 역을 했습니다. 주로 허접한 역이나 악역이었겠죠. 영화 \"대지\" (The Good Earth)에도 출현을 했구요. TV 씨리즈의 Kung Fu에서 Master Kan의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는 나중에 부친의 나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철없는 아이 때 마음 고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Sammy Lee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1920년에 태어 나서 심각한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미국을 대표한 다이빙 선수로서 올림픽에 두 번 나가 두개의 금메달을 땄다고 합니다. 게다가 의사가 되었고, 올림픽 코치로서 다른 선수가 메달을 따는데 기여했다고 하는군요. 저는 이 사실을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야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해 보니 이미 한국에서 널리 알려졌더군요. 이 책은 인물들을 너무 간략히 소개되어 있는 것이 약점이지만 이후에 아시아계 이민자 후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하는 좋은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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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이야기지만 구글의 객관적(물론 그것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자료지만)으로 기술된 글을 읽고 그가 얼마나 비열하고 치밀하며 냉혈한 야욕을 가진자인지 더 잘알게 되었습니다.
님들은 그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으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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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1-17 14:4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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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side님 참 유별난 분이군요. 클립보드님이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했다고 찬양한 바가 없고 그 동안 남한에서 날조한 김일성 이야기를 믿고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고, 저는 한국 현대사, 특히 한국 전쟁의 기원에 대한 연구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업데이트된 저작인 [North Korea]에 나오는 책의 일부를 인용했을 뿐인데 이런 황당한 댓글을 다십니까? 물론 인문학의 최고를 달리는 시카고 대학교 교수라는 타이틀이 그의 학문성의 권위 (authority)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학계에서 한국 현대사로 보자면 leading scholar로 인정받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의 권위는 학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의 논문이나 책의 일차 독자는 같은 학자들입니다. 책을 많이 써서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학자라도 학계에선 허접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글의 객관적 자료라! 어떤 자료인가요? 적어도 그런 말씀하시려면 링크를 달아 두셔야죠. 그 동안 글 올린 님의 지적 능력으로나 판단능력으로 보아 객관적 자료라는 말이 신빙성이 없거든요? 왜 그것이 객관적 자료인지 링크를 달아 주시고, 또 님이 생각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뭔지 말씀해 주세요. 또 딴말씀 하는 것 없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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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치독
| 2011-01-18 00:5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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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은 그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으시겠지만...\"
이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띄워보기 식 코멘트로 마무리를 장식하시는 게 이 분의 대화 스타일인 듯. 안타까운 생각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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