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이 깊어간다는 지극히 상투적인 말은
춥지만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다는 게으름이
자판기의 종이컵에 흘러 내리는 누리끼리한 커피 속의 설탕과 크림 처럼
겨울 밤의 추위 속에 끈적거리며 섞여 있다가 오물오물 튀어 나온 이물질과도 같다 .



때로 이미 깊어버린 겨울 밤은 스스로 고독해져서
하루종일 지저분해진 도로 위를 싸가지없이 돌아다니느라 지쳐버린 눈보라를
스산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개 끌듯이 데리고 와서는
자신의 고독을 달래주길 기다리고 있지만,
지쳐버린 눈보라는 보라를 떼어버리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그 당시 청춘들에게 잊지못할 라디오 방송은
사랑을 앓고 있는 청춘들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이젠 청춘을 흘려버린 아줌마,아저씨들의
'고독에 몸부림치는' 겨울 밤을 위한 추억의 낱말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눈이 떼굴데굴 굴러다니는 스산한 캘거리의 겨울이
밤을 잊은 그대에게 뭔 영양가가 있을려나
라고 생각하는 아저씨들도 있겠지만....

가슴 뼈를 녹이며 밤을 새우면서 들은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모르면 청춘이 아니듯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 캘거리의 추위를 모르고서는 캘거리안이 될 수 없고
뼈 속까지 들어와 고독을 몸부림치게 하지 않은 그 고독을 모르면 고독을 이해할 수 없으며
뼈 속까지 가난하지 않고서야 어찌 가난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추운 겨울 밤에 이미 딱딱해진 빵을 꾸역꾸역 앂었던 기억이 아직도 뼈 속에서 꿈틀거리는가?
겨울에 추위와 고독과 가난을 동시에 안아 본 적이 있던가?

그러나
고독에 몸부림치는 겨울은 고독 속에서 이미 봄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겨울이 아니다.
그 겨울의 고독 또한 이미 사랑을 그리워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고독하지 않다.
그래서 고독은 마음을 비우면서 가난하게 만들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며
천국은 더 이상 고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은 이미 고독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고독 속에 무한한 사랑이 나눠지고 있기 때문이다.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고독에 몸부림치며 흩날리는 눈보라를 보았는가?
그대는 이미 고독하며
그대는 이미 마음이 가난하고
그 가난한 마음 속엔 사랑이 움트고 있으며
천국은 이미 당신의 마음에 담겨 있다.

눈보라가 추워하고
고독이 고독해하는 캘거리의 외로운 밤 거리
그 거리에서
마음이 가난한 백성이 옷깃을 여미고 지나갈 때
한 뼘만
아주 조금만
다가설 수 있어도
하늘은 이렇게 말하리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