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진낙관을 만들어 준 어느 대한민국 조카가 혼자 동남아 오지로 몇 달 간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글 제목을 달았군요. 시사문제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사진을 공부했다는 올해 갓 서른이 된 이 친구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었을까 아주 궁금했습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월터 셀라스 감독의 영화 제목입니다. 순진하고 평범한 어느 의대생이 친구와 함께 남미대륙을 종단하는 기나 긴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과 세계관을 가진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줄거리의 영화지요.
이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푸세라는 이름의 평범한 의대생은 바로 쿠바 혁명의 아버지 체 게바라 입니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전기나 기록을 보면 이 사람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음이 이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째, 일신의 영달보다는 이웃, 그리고 보편적 정의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 사심이 별로 없는 만큼 일면 순진하기도 해서 작은 일에 쉽게 감동을 받고 눈물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넷째,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섯 째,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호치민 선생이 그랬고, 마오쩌뚱 주석이 그랬지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도 그 중 한 명일 거고요. 러시아 혁명의 조선 출신 여 주인공 킴 알렉산드라 스탕케비치도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장지락 (김산) 도, 국공합작을 성사시킨 서안사변의 주인공 장학량 도 마음이 이쁘고 따뜻한 사람들 아니었을까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거대한 규모의 혁명군을 지휘한 군사전략가들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문필가들이었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체 게바라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전기를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의 인품은 그가 쿠바를 떠나면서 동지이자 친구인 피델 카스트로에게 남긴 편지에서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전략)…… 피델, 나는 이제 친구인 자네와 동지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기도 한 쿠바의 인민 곁을 떠나려 하네. 나는 지금 이 시간부터 쿠바의 장관직과 군 사령관직 그리고 쿠바의 시민권을 모두 포기하겠네. …… (중략)……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쿠바 혁명가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을 것이며 자네와 동지들 그리고 쿠바의 인민들이 전장에서 보여 준 그 따뜻한 사랑을 간직하고 떠나겠네. (후략)…… 게바라는 친구인 카스트로에게 성공한 혁명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아줄 것을 당부하면서 자신에게는 적지에서 새로운 혁명을 수행할 역할을 스스로 부여합니다. 사명을 위해 직위와 안전을 버리고 매우 위험한 위치에 자신을 내던진 셈입니다. 누가 강요한 사람도 없는데요. 일부 비평가들은 게바라가 그 때 쿠바를 떠나지 않고 쿠바에 남아 인근 국가들에 대한 혁명지원을 계속했더라면 오늘 남미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도 하지만 그건 역사 속 인물을 올바로 평가하는 시각과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한국전쟁 중 미군 전쟁범죄 행위를 언급했더니 또 마음이 불편한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은 그 기본성격이 중국의 국공내전과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사건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내전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도와주러 참전했다는 말이 성립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다만 미국이 국제연합군 모자를 쓰고 어느 한 편을 도와주러 왔다면 중국 역시 또 다른 한 편을 도와주러 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당시 중국 인민의용군은 한국전쟁에서 약 18 만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전쟁당사국인 북한군 전사자 수가 약 10 만 여 명인데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전사자를 낸 셈이지요. 미군 전사자 수는 약 5 만 여 명이고 남한군 전사자 수는 북한군 전사자 수와 비슷합니다. 민간인 사망자 수는 남한이 약 38 만 명, 북한은 거의 통계가 불가능할 정도인데 최소 70 만 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근데 남한 민간인 사망자 수에는 전쟁 직후 남한측의 후퇴국면에서 벌어진 보도연맹 희생자 숫자를 더해야 합니다. update 된 기록을 볼까요. http://en.wikipedia.org/wiki/Bodo_League 이 기록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은 보도연맹으로 학살당한 민간인 수를 최소한 20 만 명에서 최고 120 만 명까지 추산한다고 하는군요. 어떤 근거로 그런 추산을 하는지는 위키 아래 나열돼 있는 각주 자료들을 직접 읽어보시면 될 거구요. 저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숫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라…… 좀 지엽적인 주제이긴 한데, 혹시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중국 인민의용군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북한 정규군의 경우 승전국면에서는 민간인 학살이 거의 없다가 패퇴국면에서 우익인사들을 중심으로 민간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했다는 흔적이 있습니다. 물론 숫적으로는 미군이나 남한측 정부조직, 폭력단체가 저지른 것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잘못된 일이었지요. 그러나 중국 인민의용군의 경우에는 승전국면이건 패퇴국면이건 민간인을 고의적으로 살해했다는 기록을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군요. 군대의 성패는 지휘관에게 달려 있다고 합니다. 1950 년 당시 중국군대를 지휘했던 지도부는 직업군인들이 아니라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게 불과 1 년 전인 1949 년 이었으니까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런 연고로 앞에 열거한 다섯 가지 기본 심성을 갖춘 사람들이 당시 중국 인민의용군 지휘부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민의 권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팔로군 정신이야말로 미제무기로 무장한 절대우세의 장개석 군대를 대만으로 밀어내고 대륙을 차지한 혁명성공의 기본 정신이었을 것 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무장한 군대였으니 미군식 민간인 살상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작전개념이었겠죠. 이런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건질 수 있는 귀중한 것들 중 하나는 전쟁터에서조차 지킬 줄 아는 ‘따뜻한 마음들’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어떤 희망과 용서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일일 것 입니다. 이쁘고 따뜻한 마음들은 비단 중국군의 혁명가 출신 지휘관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군과 ‘나’에는 따뜻한 미군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미군 제 10 고사포 단장 윌리엄 헤먼 대령 이야기지요. 소대장이 적탄에 쓰러지자 이성을 잃은 소대원들이 항복을 한 북한 병사들까지 사살했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 헤닉 대령이 사단장인 자기에게 격렬한 어조로 “투항한 적을 죽이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협조 못 하겠다” 고 항의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백선엽 씨는 부하들에게 앞으로는 투항하는 적은 사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당시 백선엽 씨는 육군 제 1 사단장이었습니다. 백선엽 씨가 회고록에서 한 말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틀림없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지휘관이라고 다 나쁜 놈들만 모여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는데 그 대한민국 조카는 한 달 전쯤 내게 보낸 메일에서 “요즘엔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아져 인문학과 관련된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는 이야기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코르다 사진전에 나온 게바라 사진을 떡 하니 보여주면서 이제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컨셉으로 동남아 오지로 장기 여행을 떠나겠다니…… 좀 어안이 벙벙한데요. 아마 개고생할 각오해야 할 텐데요. 위험한 상황도 겪게 될지 모르고…… 암튼 대한민국의 조카들 참 이쁘고 대견합니다. ------------------------------- 대한민국 조카님, 여행에서 돌아 올 때 별달린 베레모 안 쓰고 와도 됩니다. 무사히만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