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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에 생긴 일 (두번째)
작성자 어진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374 작성일 2008-04-09 18:02 조회수 1394
올 겨울에 생긴 일 (두번째)

다행인 것은 해가 많이 길어져서 날이 밝았고, 길이 미끄럽지 않았다. 시골길은 한가했지만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좀 힘들긴 하지만, 찬이네 집에서 쉬다가 차들이 빠진 다음에 떠날거 그랬나?’
응근히 걱정이 됐다. 진통제의 약효가 다 떨어졌는지 손목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병원에서 진통제를 달래서 먹고 떠날 껄’
자동차 속도는 100km에서 점점 줄어들더니, 20km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On Star의 Hand Free Phone이 울렸다 (참고로, 새로 나오는 GM차에는 On Star라는 System이 장치되어 있고 여러가지 편리한 점이 많다. GM는 이 System를 일년 동안 무료로 쓰게 하는데, 그게 바로 “미끼”이다)
‘분명히 순진이일꺼야!’
On Star로 전화를 걸 사람은 순진이뿐이었다. 아픈 손을 억지로 들어서 단추를 눌렀다. 차들이 기어가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여보세요?”
“여보, 무슨 일이야?” 목소리에 놀라움이 섞여있었다.
‘요 여자가 뭘 듣긴 듣은 모양이군!’
“무슨 일이라니?” 시치미를 뗐다.
“빨리 말해! 무슨 일이야?”
“…… 별일 아니야”
“말해! 내가 당신을 몰라? 또 사고쳤지?”
“이 사람이~ 내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또야 또~ …… 찬이가 말안해?”
“찬이가 당신한테 물어보래~ 뭐야~”
“나~ …… 손목이 부러졌어!”
“뭐야~? 어떻게 하다가 손목이 부러져~~~”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야!”

“지금 소리 안 지르게 됐어?!”
“이것 보세요~ 지금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거든요~?”
“어쩌다가 손목이 부러져!”
“집에 가서 이야기해 줄께”
“빨리 말해!”
“여보~ 차들이 밀려서 도저히 Highway로는 못 갈 것같고, 지금 샛길로 빠져야 하거든. 나 지금 당신하고 이야기할 정신없어! 끊는다~”
“여보~ 조심해서 와~  나 당신 올 때까지 세탁소에서 기다릴꺼야. 세탁소로 와”
“알았어!” 전화를 끊었다. 찬이는 내가 말한대로 작은 일이 생기긴 했는데, 자세한 것은 나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 같았다.
‘에고~ 순진이 속도 검댕이가 됐겠구나!’

세탁소에 도착한 시간은 7시 10분이었다. 두 시간 걸려서 온 것이었다! 세탁소에 들어서니, 순진이가 달려왔다.
“어디~ 손 좀 보자구!”
아무 말없이 Cast를 한 묵직한 오른 손을 들어 보였다. 딱딱한 Cast와 부어오른 손을 만지던 순진이는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순진이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더니 눈에서 금방 눈물이 뚜~욱하고 떨어질 것같았다.
“에끄~ 내가 못 살아! 좀 조심하지~!”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뭐 다치고 싶어서 다쳤겠어?”
“……”
“여보~ 나 배고파! 빨리 집에 가자”
“배고프다는 걸 보니, 죽진 않겠쑤~!”
“내가 죽긴 왜 죽어~ ㅎㅎㅎ”
그래도 집에 무사히 도착했고, 걱정돼서 눈물을 글썽이는 순진이를 봐서 그런지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나이들면 마누라 밖에 없다고 하는구나!”

제일 쎈 진통제를 네 시간 마다 계속 먹어도 손목이 쑤시는 걸로 봐서는 다치긴 되게 다친 것 같았다. 게다가 Cast를 한 다음에 더 붓기 시작하는지, 아픔은 더 해가고 손가락은 퉁퉁 부어 있었다. 손목이 부으면서 Cast 때문에 더 늘어나지 못하니까, 수분이 손가락으로 몰리는 것 같았다. 의사가 손이 져려오고 색갈이 변하면 가까운 병원에 가서 Cast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붓기가 빨리 내려가야 할텐데……’
‘병원에 다시 가고 싶진 않은데……’
북적대는 병원 응급실에 가서 몇 시간씩 기다릴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낮에는 시간을 마추어서 진통제를 먹으니 그런대로 견딜만 한데, 밤에는 죽을 지경이었다. 자기 전에 진통제를 먹고 자면, 새벽 3시경에 약효가 떨어졌고 아픔에 못 이겨서 잠이 깼다.            부랴부랴 진통제를 찾아 먹고 나면, 그 다음 약 30분간은 날카로운 꼬챙이로 손목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옛날에 진통제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오른 손을 다치고 나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람이 젓가락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왼 손에 Fork를 들고 음식을 먹을려니,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음식을 흘리질 않나! 음식을 주둥이(?) 옆에 바르질 않나! 손녀 수미가 Solid food 먹는 것을 보는 것 같아서 아픔을 참으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사람신세 망가지는 것이 까딱수라는 게 실감이났다. 어느 누가 알았으랴! 내가 요 모양 요 꼴이될줄을……

음식을 먹는 것에 버금가게 힘드는 것은 옷을 입고 벗는 것이었다. 하다 못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지 Zipper를 내리고 올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첫 날과 두째 날은 바지 Zipper를 내리고 올리는 것까지 순진이에게 부탁하는 신세가 됐으니…… 사람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 꼭 면으로 만든 윗속옷을 입어야 하고 속옷의 아랫 부분을 꼭 Panty 속으로 넣어야 한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지만, 여기서 “난닝구와 빤쯔” 이야기를 좀 하자.

내가 어렸을 적에는 윗속옷을“난닝구”라고 했는데, “난닝구”의 어원은 일본사람들이 미국사람들을 보니 달리기를 할 때 입는 옷(Running Shirt)이 속옷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았다. 그 당시에도 말할 때 영어를 섞어 쓰면 지식인이라고 생각했던지, 속옷을 영어로“Running shirt”라고 했다. 원래 말이란 짧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Running Shirt”를 줄여서 “Running”이라고 했고, “Running”을 일본식으로 발음을 해서 “난닝구”가 됐다.

그럼 “빤쯔”의 어원은 무었일까? 이건 아주 간단하다. 영어의 “Pants”를 일본식으로 발음을 해서 “빤쯔”가 된 것이다. 세상에서 영어발음을 제일 못하는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걸 우리들은 영어랍시고 배워서 쓴 것이 아닐까? 좀 씁쓸하다! 자~ 그럼 이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손목을 다친 후로는 왼손 하나로 속옷을 Panty 속으로 집어넣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 사람들은 왼 손 하나로 한번 시도해 보시라!!! 나는 왜 하나님께서 손을 두개를 만드셨는지 이해하게 됐다.

Panty도 순진이가 올려 주어야 했고… 흐흐흐, 옷도 입혀주고 단추도 채워주어야 했다.
“꼭 유치원생을 옷입혀서 유치원에 보내는 것 같애 ㅎㅎㅎ”
“웃음이 나와? 남은 아파 죽겠는데……”
누가 그랬던가! 자기가 가진 것을 잃어버려 보아야 그 귀중함을 안다고…… 만고의 진리였다!

내가 손목을 다치고 나서 제일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내 작은 형님이었다. 형님은 지금부터 15년 전, 나이 50이 되던 해에 Stroke이 왔다. 그 후로 몸의 왼쪽을 못 쓰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운전은 할 수 있었고, 나는 형님을 볼 때마다 “참 안됐다!!!” 느끼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형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었다. 또한 형수님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15년 동안을 그렇게 살아온 형님! 그리고 형님의 가족들! 정말로 형님과 형수님이 다시 보였다!

만약 내가 형님의 경우를 당했었다면 어땠을까? 동병상련이라더니 내가 손목을 다치고 나서야 형님의 처지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내가 형님을 위해서 해준 것이 너무나 없었다는게 부끄러웠다. 그까짓, 나야 6주가 지나면 다시 정상적으로 손목을 쓰겠지만, 형님은 15년을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했다.

형님은 탁구와 Squash을 아주 좋아했고 나보다는 한참 고수였었다. 또 자동차를 고치는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한국에서 부터 자동차 정비사 “쯩”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니 형님은 짜증과 신경질이 늘어갔다. 그때 나는 생각하기를 ‘에이~ 좀 인내심을 가지고 참지……’했었다. 세~상에~! 이 얼마나 싸가지(?) 없는 생각이였느냐? 말이다!

내 손목아지(?)가 부러지고 나니까, 내 눈이 화~악 밝아지는 것 같았다.
형님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보였고,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몸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 들을 돌보아야 하는 가족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힘든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하면,
내 손목 하나 다친 것 가지고 엄살(?)을 부리는 것은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었다!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에구~ 손목이 좀 더 일찍 부러질 걸 그랬나?’
손목을 다치고 나서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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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  2008-04-11 10:2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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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이님께서는 우리의 평범한 사람의 마음을 잘도 대변 하시고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신것 같습니다
생활속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잘 표현하신 어진이님께서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어진이  |  2008-04-12 22:0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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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님, 감사합니다.
새봄과 함께 활짝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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