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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준비에 착수하기 전에......
작성자 clipboard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3752 작성일 2011-02-19 22:06 조회수 2184

 유튜브는 펌 ------------------------- 캐나다 알버타 주 캘거리에서 1 번 국도를 타고 자동차로 한 시간쯤 달리면 밴프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밴프국립공원 입구에서 다시 20 분쯤 가다 보면 국도 오른쪽을 따라 흐르는 보우강 계곡 앞에 우뚝 솟은 바위산 하나가 나타난다, 해발고도 2970 m의 이 바위산 이름은 캐슬마운틴 (Mt. Castle) 이다. 거대한 성곽을 닮은 바위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 2 차 세계대전 이후 이 산 이름을 한때 마운틴 아이젠하워로 부르다 만 적이 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의 군인 출신 대통령인데 왜 캐나다 사람들이 캐나다 산 이름에 미국 사람 이름을 가져다 붙였을까? 더구나 그 산 이름을 아이젠하워 산이라고 명명했다가 다시 철회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The mountain was named in 1858 by James Hector for its castle-like or fortress appearance. Following the post-war visit of U.S. president Dwight D. Eisenhower, the name was changed to Mount Eisenhower by the then Canadian Prime Minister W. L. Mackenzie-King. Eventually, public pressure forced the name to be changed back in 1979 to its original but an isolated pinnacle at the southeastern end is now called Eisenhower Tower. (위키에서 복사) 그 사연은 제 2 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역사와 관계가 있다. 2 차 대전 당시 캐나다는 연합군 멤버로 참전했다.  아이젠하워 타워란1944 년 6 월 6 일 감행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드와잇 데이빗 아이젠하워의 무공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붙여진 애칭이다. 산 이름을 바꾼 사람은 전후 캐나다 수상 메킨지 킹이었다. 캐나다군는 이 상륙작전에 미국, 영국과 함께 3 대 주축군의 하나로 참가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에서 보면 그 날 도버해협 일대에는 풍랑이 거셌던 것으로 묘사된다. sarnia 는 이 영화를 본 후 그 날 그 지역의 날씨가 궁금해서 조회해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원래 D-Day로 정해져 있었던 6 월 5 일의 날씨는 도저히 작전이 불가능할 만큼 최악이었고 실제 작전이 감행된 6 월 6 일 역시 기상이 좋지 않았다는 정보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해안선에 방어망을 구축한 독일군의 맹렬한 반격에도 불구하고 아이젠하워는 멀미로 기진맥진한 상륙부대 병사들을 이끌고 다섯 개 해안에서 동시다발 상륙작전을 전개했다. 몇 주일간에 걸쳐 전개된 상륙작전에서 전투기 1 만 3 천 대, 수송기 2000 여 대, 7 개 기습상륙사단을 선두로 4 천 여 대의 상륙주정을 포함해 약 6 천 척의 함선에 승선한 100 만 명 규모의 연합군 대부대가 60 만 톤의 보급물자와 17 만 대의 전차와 수륙장갑차를 비롯한 각종 차량을 이끌고 유럽 본토에 성공적으로 상륙했다. 아이젠하워의 상륙작전 성공이 유럽을 나치의 장악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 역할을 했다는 건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 차 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같이 참전했던 미국과 캐나다는 한동안 마치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는데, 국립공원에 있는 명산 이름에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장군 이름이 별 거부감 없이 붙여진 것도 당시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나라 사이에 결정적인 금이 가게 한 사건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이미 1960 년대 중반 레스터 피어슨 수상이 이끄는 캐나다 정부는 미국 민주당 존슨 행정부의 파병요청을 일언지하에 거부한 바 있다. 당시 캐나다 정부는 1964 년 8 월 발생한 통킹만 매독스호 어뢰피격 사건이 미국 군부에 의해 조작된 음모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위태위태하던 두 나라 사이가 파국적으로 갈라진 건 1968 년이었다. 언젠가도 이야기했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우수한 젠더라는 이야기했을 때) 현대사에서 1968 년은 아주 의미 있는 해인데, 우선 이 해 1 월 31 일에 베트남 전쟁을 전황을 결정적으로 뒤집는 계기가 된 Tet General Offensive (테트공세) 가 있었다. 이 날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남베트남 지역의 100 여 개에 달하는 지역에서 미국군과 남베트남군,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고용된 주월한국군 등 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작전을 감행했다. 사이공 시내의 대통령궁을 비롯한 남베트남의 전략거점들은 물론이고 미국 대사관 경내에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무장전투대원들이 대사관을 경비하는 미국군 해병대 병력과 무려 여섯 시간에 걸친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미국국민들은 확전 정책을 펴 온 민주당 대신 해외주둔미군감축을 공약으로 내 건 공화당의 리차드 닉슨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된 닉슨은 오만하기 짝이 없게도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망명하려는 미국 젊은이들을 국경에서 추방해 줄 것을 캐나다 정부에 고압적으로 요구했다. 당시 캐나다 수상이었던 피엘 트뤼도는 미국의 이 오만한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함을 물론이고 닉슨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서한을 보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잘 모르고 계신 모양인데 캐나다와 미국은 다른 나라임을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캐나다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남의 나라 이민국 정책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귀국 젊은이들의 목소리 (반전시위)에나 귀를 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귀하의 나라는 베트남에서 패전의 늪에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sarnia 가 약간 각색했지만 별 다를 바 없다) 캐나다 정부는 징집 기피자들과 반전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려는 미국 연방경찰 (FBI)의 추적을 피해 국경으로 몰려든 미국 젊은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Working Permit 과 영주권을 발급해 주었다. 아마 닉슨은 오발 오피스에서 이 황당한 보고를 들으며 조롱 비슷한 충고가 담겨있는 트뤼도의 편지를 손에 움켜쥔 채 너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앵글로색슨 계통에 대한 moron 성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부 미국인들이 화날 때 내뱉는 ‘퍼킹 French Canadian’ 이란 말은 레스터 피어슨이나 피엘 트뤼도 같이 미국의 패권주의적인 외교정책에 철저하게 비협조적이었던 캐나다 수상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욕일 것이다.     어쨌든 트뤼도의 예견대로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전했다.     그 날 소년 sarnia는 서울 동교동 집에서 흑백텔레비젼을 통해 이 역사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1975 년 4 월 30 일이었다. 사이공이 함락되기 며칠 전 남베트남 대통령 구엔 반 티우는 금괴 2 톤을 비행기에 때려 싣고 일찌감치 대만으로 도주했다. 사이공 시내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전투를 벌였던 남베트남측 병력은 놀랍게도 앳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 그들의 교장도 육군참모총장도 모두 가족들을 데리고 달러와 금괴를 챙겨 미국으로 도망간지 오래였다. 주월 한국대사는 자기 휘하에 있는 공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을 내팽개친 채 자기 혼자 미군 헬리콥터를 얻어 타고 잽싸게 사이공을 탈출했다. 그 날 새벽 3 시 45 분 주월 미국대사 그레이엄 마틴은 대사관저에 남아 있었다. 그는 대사관 정문에 게양돼 있던 성조기를 상자 속에 집어 넣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한동안 성조기가 담긴 상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꾸물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탈출하라"”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다급한 육성명령을 받고 대사관 옥상에 대기하고 있는 헬리콥터에 올랐다. 마지막까지 남아 문서소각과 함께 탈출작전을 엄호하던 해병대 병력을 실은 헬리콥터가 대사관 옥상을 이륙했다.  이 ‘마지막 헬리콥터’ 는 공중으로 떠 올라 대사관 건물 상공 위에 한동안 머물다가 남중국해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1975 년 4 월 30 일 오전 9 시 30 분이었다. 19 세기 제국주의의 침략과 강탈로부터 시작된 100 여 년에 걸친 기나 긴 아시아민족해방전쟁의 총성은 일단 이 날 이 시간에 멈춘 셈이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전차부대를 앞세운 북베트남 정규군 선봉부대가 사이공 시내에 진주하기 시작했다. 연도에 몰려나온 사이공 시민들은 차도 한 가운데를 따라 차분하고도 질서정연하게 진주하는 이 해방군 선봉부대를 환성과 박수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36 년 이 지난 지금도 그 미국 대사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사이공 아가씨들이 환영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 해방군 소년병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태국열전 3 부작을 마치고 올해는 베트남에 갈 예정이다. 혁명수도 하노이를 가려고 했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전쟁과 관련된 기억의 흔적은 ‘호치민’ 에 더 많이 남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호치민 외에 지금 떠 오르는 곳은 훼 (Hue) 라는 도시다. 왕궁과 왕릉이 많은 유적지인데 이 도시가 ‘베트남 전쟁사’에서 유명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테트공세 때문이다. 전쟁 당시 군사분계선이었던 북위 17 도선에서 약 50 km 정도 떨어진 이 도시는 또 다른 테트공세 격전지인 <께산>과 함께 미국 합참본부와 국방부로 하여금 전술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게 했을 만큼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 곳이다.  븍베트남 정규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합동작전에 포위된 미국군 5 개 대대가 전멸위험에 몰리며 약 40 일 간에 걸쳐 진행된 <훼>전투에서 미군 221 명이 전사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부대인 파월 청룡 해병여단에 이어 맹호사단 (현재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 베트남을 향해 부산항을 출항하던 그 해 sarnia 는 세 살 박이 아이였으니 <베트남 인민 여러분들>께 도의적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호치민 국제공항 (아직도 탄손 넛 공항인가?) 에 착륙할 때의 기분은 방콕 수안나품에 내릴 때의 기분과는 사뭇 다를 것 같은데…… (끝!) 2011. 02.19 21:00 (MST) sarnia (clip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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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11-02-20 09:2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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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혼자보기 아까운글이 또 올라왔군요 ㅋ (근데 강현님 글들은 씨엔드림독자뿐 아니라 여러곳에서 읽혀지고 있어서 우리는 보는건 아니더군요.)

템플 마운틴 얘기며 미/캐나다 관계, 그리고 필비님 글에 달린 덧글까지 잘 몰랐던 삼삼한 얘기들 재밌게 봤습니다. 베트남 여행 따라가고 싶어지네요. ㅋ

clipboard  |  2011-02-20 09:4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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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곳과 열린마당, 한국의 진보교단 총회홈피, 아는 사람들이 많은 어느 배낭여행자사이트...... 이렇게 네 곳 입니다.

아 하나 또 있네요. 페이스북. 태국과는 달리 베트남은 비자를 받아야 하는 나라라 귀찮아서 망설였는데...... 진짜 가 보고 싶은 나라입니다. 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완승을 거둔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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