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아요.
날아갈 듯한 기분 때문에 설레발을 치다가 오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용한 음악과 탐구생활 문체로 차분함을 유지해 보려고 해요.
밀애(Darling Lili-lily-) 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나는 지금 그 영화에 나오는 조용하고 차분하고 구슬픈 음악 집시의 바이올린(Gypsy Violin)을 연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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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횡재를 한 기분이 들어요. 근데 횡재라기보단 항공사가 고객이 제기했던 비판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고마움의 선물을 준 것이니 나름 정당한 사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금 편해져요. 그래도 사례치곤 내가 한 일에 비해 좀 과분하다 싶은 건 사실이예요. 이게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기도 해요.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테니 들어 보세요.
어제 대한항공으로부터 우편물을 한 통 받았어요. 광고전단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어요. 그런 건 이멜로 오니까요.
매일 한 보따리씩 오는 우편물과 광고지를 분류해서 처리하는 나 나름의 방식이 있어요.
플라이어나 브로슈 같은 것들은 바로 쓰레기통에 처 넣어요. 선전물이거나 중요하지 않을 게 분명하면서 내 이름과 주소가 겉봉에 적혀있는 우편물은 뜯지 않은 채 슈레더에 집어넣어요. 나머지가 책상 메일함으로 옮겨지는데 그것들 중 열에 아홉은 돈 내라는 고지서예요.
대한항공에서 온 그 우편물은 어떤 종류인지 즉시 확신이 서지 않았아요. 모닝캄클럽 새 멥버쉽카드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업그레이드됐나 추측해 보기도 했어요.
암튼 나중에 뜯어보자 생각하고 일단 책상 위에 던져 놓았어요.
던져놓고 돌아서려다가 마음을 바꾸어먹었어요.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 이예요.
다시 그 우편물 봉투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어요. 봉투는 얄팍했어요. 카드나 광고전단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근데 봉투에서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어요.
발신인 이름과 그 발신인이 소속된 부서명칭이 겉봉투에 써 있었기 때문 이예요.
내 거주지가 서부 캐나다이기 때문에 대한항공에서 가끔 보내오는 우편물들은 대한항공 밴쿠버 지사 명의로 와요.
하지만 로고와 주소 외에 발신인 이름이나 부서명칭이 봉투에 쓰여있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우편물에는 봉투 좌측 상단 대한항공 로고 아래 영문으로 이렇게 써 있었어요.
Cho, H.M
Deputy Executive Director
Integrity Marketing Communications
Operation Center
그제서야 이 우편물이 밴쿠버 지사가 아닌 대한항공 서울 본사에서 발송된 것임을 알 수가 있었어요.
Integrity Marketing Communications (IMC) 란 회사의 광고와 Public Relation 을 전담하는 부서예요.
마케팅 전략에 따라 광고기획을 수립하고 국내외에 존재하는 잠재적 기관고객과 언론사를 대상으로 로비활동을 벌이는 게 그 부서의 주요업무예요.
여기서 말하는 로비활동이란 사과상자나 수산물 택배용 스티로폼 박스에 사과나 전복 대신 낡은 만 원짜리 지폐를 가득 담아 명절 선물로 돌리는 옛날식 로비가 아니라 합법적인 브리핑이나 프레젠테이션 활동을 의미해요.
한마디로 회사의 이미지관리와 마케팅 심리전 공작을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전략부서라고 할 수 있어요.
일반고객을 상대하는 부서가 아니므로 그 부서의 책임자 명의로 일반고객인 나에게 우편물을 보낸 것이 약간 의아했어요. 그것도 실무 책임자인 과장급이나 부장급도 아니고 임원급 관리자의 명의로 말이지요.
봉투를 뜯어보았어요. 봉투에는 A4 용지로 된 두 장의 서류가 들어있었어요.
한 장은 한글로 쓰여있는 편지였고, 또 한 장은 영문으로 된 itinerary (비행일정)이었어요.
읽어보니…… 얼레…… 에드먼턴-로스앤젤레스-인천-로스앤젤레스-에드먼턴 비행일정이 적혀 있었어요.
첨엔 좀 황당했어요.
비행기표 예약한 적 없는데 이런 게 날라왔으니까요.
게다가 나는 한국 갈 때 밴쿠버를 경유하지 LA를 경유하지 않아요.
더 이상한 점은 편명과 시간은 적혀 있는데 날짜가 없다는 거였어요.
더더욱 놀라운 것은...... 오 마이 갓......
좌석등급이 F 라는 거였어요.
이코노미 클래스 flexible은 Y, 프리스티지 클래스는 C, 일등석은 F로 각각 표기해요.
그러니까 그 항공사는 나한테 일등석 왕복표를 사례 선물로 보내 준 거예요.
비행일정 아래 이런 설명이 써 있었어요.
대충 번역하면…… 이 항공권은 2011 년 10 월 1 일부터 고객님이 원하시는 날짜에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편명만 미리 정해진 오픈 티켓인 셈 이예요.
왜 편명을 미리 정할 수 밖에 없는지는 계속 이어지는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해할 수가 있었어요.
10 월 1 일부터 인천-LAX 와 인천-JFK (뉴욕) 간에 대한항공이 새로 도입한 에어버스 380-800 기종을 운항하는데 새 비행기의 일등석 승객으로 sarnia 님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새 기종이 LA 에서 오후 12 시 30 분에 출발하는 018 편과 인천에서 15 시 정각에 출발하는 017 편 밖에 없기 때문에 편명과 경유지를 미리 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요.
대신 날짜는 이 기종이 운항을 시작하는 10 월 1 일 이후라면 언제든지 sarnia 님이 마음대로 선택해도 좋다는 이야기였어요. 이 티켓은 VIP-Priority 이기 때문에 출발 7 일 전까지만 예약하면 된다는 안내문도 친절하게 쓰여 있었어요.
sarnia 님은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요.
우와~ 태평양을 횡단하는 A380-800 일등석을, 그것도 공짜로 타고 가게 생기다니요.
즉시 Korean Air 사이트에 들어가 비행기 운항 일정과 가격을 확인해 보았어요.
LA 인천 왕복 가격만 미화로 1 만 4 천 불이네요.
캐나다화로는 1 만 3 천 500 불이고 한화로 환산하니까 1548 만 원 이예요.
이 정도면 사례 선물치곤 아주 후한 셈이에요.
비행일정이 담겨있는 그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이번에는 다른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대한항공이 나에게 공짜 일등석 비행기표를 보낸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 이예요.
영문으로 쓰여있는 비행일정 안내문과는 달리 그 편지는 한글로 쓰여 있었어요.
내용인즉슨, 지난 해 9 월 대한항공 Sky Shop 운영문제와 관련해 좋은 비판과 조언을 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새 기종 운항 기념 행사에 저를 초대한다는 것 이었어요.
첨엔 이게 먼 소린가 긴가민가하다가 한 가지 떠 오르는 게 있어 ‘아 그거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는 지난 9 월 중순 경 대한항공 Sky Shop 에서 전원 아답터 한 개와 로열 샬루트 한 병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려다 열을 확 받아서 비판 글을 한 편 써 갈겨 올린 적이 있어요.
그 글 전문은 이 포스팅 맨 아래에 참고용으로 달아 놓았어요.
칭찬을 한 고객에게 선물을 주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비판을 한 고객에게 사례를 하는 건 어려운 일 이잖아요.
때로 이건 항공사 입장에서 아주 곤란한 상황을 초래할 수는 위험한 의사결정일 수 있어요.
사례를 바라고 없는 소리를 구라로 마구 날조해 진상을 떨어대는 copycat 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예요.
항의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보상이나 배상도 조심스러운 항공사 입장에서 비판을 했다고 사례를 한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라고 봐야 해요.
비판을 한 나에게 1 만 4 천 불짜리 태평양 횡단노선 일등석 왕복표를 주기로 결정한 회사측 책임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나중에라도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책임추궁을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요.
물론 이런 결정은 마케팅 관련 전문가들이 토의과정을 거쳐 내렸을 것이고, copycat 들로 인한 부작용과 intangible asset 의 긍정적 증대효과 사이에 다하기 빼기를 고려하여 나온 결과일 테지만요,
그리고 나는 다른 수 많은 항의 고객들 중에서 랜덤으로 선택된 운 좋은 고객일 뿐이겠지만요.
암튼 그들의 경영예측이 좋은 방향으로 맞아 떨어져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앞으로도 나같이 사례를 받는 ‘건전한 비판고객(?)’ 들이 종종 나올 테니까요.
다음은 지난 9 월 중순 경 제가 써 갈겨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에요.
결국 이 짧은 글의 원고료로 1500 만원을 받은 셈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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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못한다고? 그럼 지금 돈 내!
작년에는 KR Pass 안내를 Korail 영문사이트에서만 하는 코레일의 한국어사용 해외교포무시행위가 속을 뒤집어놓더니 이번에는 대한항공 온라인 Sky Shop이 저를 어이없게 만드는군요.
선물용 주류와 당장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필요한 universal travel adapter를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기내에서 수령하기 위해 온라인 스카이샵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사실은 대한항공에서 온라인 주문을 하면 보너스 마일리지와 리무진 공짜티켓을 또-이미 두 장 받았음- 준다는 메일을 보냈기에……)
상품 주문하고 결재하는 단계에서 지금 당장 카드로 결재하는 방법밖에 없어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고객센터란에 들어가 보았지요.
거기 질문이 나열돼 있길래 제가 궁금했던 대목인 다음과 같은 질문을 클릭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결제는 기내에서 할 수 있나요?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황당한 답변이 튀어나왔습니다.
기내결제(후불제)는 영문사이트에서 이용가능 하십니다. Pay on the flight 이나 Payment upon delivery를 이용하시려는 고객님께서는 영문사이트를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cyberskyshop.com/index.aspx?pageType=3
할 수 없이 영어사이트로 이동해서 주문을 확인하고 밴쿠버 출발 인천 행 비행기 안에서 대금을 치르는 조건으로 주문확인을 마쳤습니다.
주문을 마치긴 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군요.
도대체 한국어 사이트에서는 안 된다던 후불결제가 영문사이트에서만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합리적인 답변이 떠 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일부 항공사 (대한항공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에서 다음과 같은 고객프로파일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어 사용고객= 믿을 수 없는 고객 (주문했다가 막상 물건 가져다 주면 쌩까는 비율이 가장 높은 고객군)
영어사용 고객= 믿을 수 있는 고객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므로 돈 나중에 받아도 됨)
왜 대한항공 온라인 스카이샾 한국어 사이트에서는 후불결제 (사실은 후불도 아님) 가 안 되고 영어 사이트에서만 되는가?
sarnia 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 모릅니다.
(댓글을 통해 보강한 내용 중)
영어사이트에서 선택권을 주었다면 한국어사이트에서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고객이 결제시기에 대한 선택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입니다. 한국인 정서니 나중에 취소하면 그만이니 하는 게 차별을 눈가림해줄 수는 없고요. 고객으로서는 일정에 변경이 생겼을 때 따로 시간을 내서 무언가 다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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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4. 01 13: 50 (TST)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