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 생긴 일 (마지막)
“여보~ 젓가락 하나만 갔다 줘~”
“젓가락은 뭐하게~?”
“갔다달라면 갔다주지, 웬 말이 그렇게 많어~”
“왜 느닷없이 젓가락이야?”
“가려워서 미치겠다구~!”
손목에 붓기가 조금 가라앉으니까, 가렵기 시작했다. Cast를 한 부분이 일단 “가렵다” 하는 생각이 들면 긁어야 하는데, 도저히 긁을 수가 없었다.
“어유~ 가려운데를 시원하게 박박 긁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렵다”는 생각과 “가려워도 긁을 수 없다”는 생각이 겹쳐지면 가려움의 도수는 세배 네배로 증가했다.
젓가락을 Cast 밑으로 집어 넣고 긁어 볼려고 했지만, 제대로 긁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약만 올린 결과가 되어서 더 간지러웠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철사로 만든 옷걸이을 하나 짤라서 길게 펴고 앞을 악간 꾸부렸다. 그리고 그부러진 끝은 너무 날카롭지 않게 줄로 갈아서 뭉툭하게 만들었다. 철사 갈쿠리(?)를 집어넣고 가려운 곳을 찾아서 긁었다.
‘쪼끔 왼쪽! 아니 오른 쪽! 고기 고기! 그래 박박! 다시 한번 더 박박…’
‘어 시원하다!!!’
가려운 곳을 긁고 나니까 온 몸이 시원한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나 세게 긁었는지, 가렵던 곳이 이젠 쓰리고 아팠다.
‘제기랄~ 못 긁어도 걱정!, 긁어도 걱정!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야!’
손을 다치고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렀다. 더우기 오른 손을 다쳐서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반면에 순진이의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만큼 늘어났다.
저녁을 먹고 나면 설거지하는 일.
Shower할 때 비누칠해야 하는 일 (벌거벗고 마누라한테 비누칠을 해달라고 하니… 꼴이 말이 아니다!!!)
월요일 저녁마다 쓰레기와 Recycle Box를 내놓는 일.
세탁소에서 단추다는 일.
옷을 Sorting하고 Packing하는 일.
세탁소에서Invoice를 작성하는 일 (내가 할 수 없으니, 손님들에게 작성을 부탁해야 했다)
집과 세탁소 청소하는 일. 등등
엎친데 덮친 격으로 눈은 왜 그렇게도 쏟아지는지! 올겨울에 온 눈은 지난 삼년간 온 눈과 맞먹는다고 했다. 모두 합치면 2m가 넘는다고 했다. 내가 손목을 다치고 나서 일주일에 한번씩 두번 큰 눈이 쏟아졌는데, 한번은 20cm, 또 한번은 30cm가 왔다. 평소에는 가쁜하게 운동삼아서 눈을 치웠는데, 갖은 인상을 다 쓰면서 한 손으로 눈치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순진이도 애써서 눈을 치우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눈을 옆으로 밀어 놓긴 했지만 Driveway 양옆으로 1m 이상 쌓아 놓은 눈더미 위로 눈을 퍼올리는 일은 순진이에게는 역부족이었다.
나도 한손으로 거들어서 눈을 옆으로 밀어 놓긴 했어도, 나 역시 한 손으로는 눈을 퍼올릴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앞뒤로 여섯대 세울 수 있는 Driveway가 점점 좁아지더니 겨우 두개 밖에 세울 수가 없게 되었다. 평소에 눈을 잘 안 치우는 이웃들을 보면 “이구~ 눈 좀 치우고 살지! 게으르기는 ㅉㅉㅉ” 했는데, 내가 그 꼴이 되었다. 다행히 주말에 찬이와 현이가 와서 눈을 쌓아주어서 체면이 섰다. 눈을 다 쌓고 나니 눈높이가 내 키와 맞먹었다.
“에고~ 이 눈이 언제 다 녹으려나……”
길위의 눈을 치우는 순위에서 우리가 사는 길은 막다른 골목(Court)이기 때문에 제일 늦게 치웠다. 눈이 쌓인 길을 한손으로 운전해서 들어가고 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운전 도중 긴급사태에 대처하는 반응도 느려서 밖앝 출입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자제를 했다. 두 손을 가지고 있고, 함께 다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큰 축복인 줄을 예전엔 미쳐 몰랐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드는 것은 제설차가 눈을 치우고 지나가면서 Driveway 입구에 산(?)처럼 쌓아 놓은 눈더미였다. 낮에 살짝 녹았던 눈을 밤에 제설차가 쌓아 놓으면 밤새에 얼어서 눈이 아니고 돌덩어리처럼 딱딱해졌다. Driveway 입구를 치워야 차가 나갈 수 있으니까, 순진이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얼음 덩어리를 깨서 치워야 했다.
‘에고~ 내 신세가 완전히 숫벌(?) 신세가 됐구나!!!’
겨우 차가 빠져나갈 수 있게 치워 놓고, 머리에 김을 무럭무럭 내면서 들어 오는 순진이에게 미안하고 멋적어서 고작한다는 소리가
“이제야 남편 귀한줄 알겠지?!”였다.
에고~ 내 신세야! 그냥 입다물고 가만이나 있지!!!
손목이 나아가니까,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Squash를 치러가는 동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에이~ 왼손을 다쳤으면 좋았을 껄!’
문득‘어디~ 한 번 왼손으로 Squash를 쳐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Fitness Centre에 전화를 했다. 다행히 Court 한개가 비어있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
안쓰던 손으로 무었을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왜 하나님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를 만드셨을까? 양손잡이를 만드시지…… 왼손으로 Squash를 치는 것은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 보다 훨씬 힘들었다. 처음에는 공을 계속해서 세번을 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계속 시도를 했더니, 시간이 끝날 때에는 열개를 계속해서 칠 수 있었다. ‘하면 되는구나! 단시일 내에 50개를 치자!’
회사에 돌아와서 의자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순진이었다.
“Hello?”
“어디 갔었어?”
“왜?”
“또 ‘미녀들의 수다’를 보느라고 내 전화 안 받았지!”
얼마 전에 친구가 internet으로 한국방송을 보는 것을 가르쳐 주어서 요즘 가끔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면서 ‘미녀들의 수다’를 보는 게 낙이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Computer로 회사일 외에 Internet Surfing을 하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 점심시간에 음란물이 아닌 신문이나 다른 정보를 Internet으로 보는 것은 눈감아 준다) 몇일 전에 ‘미녀들의 수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순진이인 것 같아서 받지 않았더니, 그후로는 점심시간에 전화를 안 받으면
“‘미녀들의 수다’가 나보다 더 좋아?” 하면서 강짜(?)를 부렸다.
“난 매일 ‘미수다’만 보는줄 알어?”
“그럼 뭘 했는데?”
“……”
“거 봐~ 찔리니까, 말 못 하잖아!”
“…… Squash쳤어”
“당신 지금 정신이 있어?” Tone이 올라갔다.
“칠만 하니까, 친거야!”
“그 손으로 Squash를 쳐~~~”
“…… 어~ 미안 해. 오른손이 아니고 왼손으로 쳤어”
“……”
“점심시간에 ‘미수다’ 보는 것 보다는 났잖아~”
“하여튼 못 말려!”
“왼손이라구 했잖아! 왼손!”
“에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
“당신 만년 청년 아니다~ 이젠 당신 자신을 알아야 할 때야!”
“……”
“그리구 Squash가 영감한테는 무리라는 걸 몰라?”
“잠간! 당신은 왜 심심하면 영감, 영감해! 기분 나쁘게!”
“내~참! 그럼 당신이 영감이 아니면 뭐야?”
“…… 알았어 조심할께!”
“제~발 속 좀 썩히지 마!”
순진이 말이 맞았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아내 말을 잘 듣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라고 했다. 순진이 말을 듣자. 마음만은 예전과 똑같은 것 같은데, 몸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손목만 해도 그렇다. 젊은 사람들은 4주면 났는다는데, 난 6주가 지났는데도 신통치가 않았다.
‘그래~ 이젠 내게 주어진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괜히 앞뒤 안 가리고 꺼떡거리다가 큰 코다치지 말자!’
이번에 손목을 다친 사건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많은 것을 얻었고, 손목을 다치기 전보다 많이 자란 것 같다.
그러나 또 어떤 것을 얻고 더 자라기 위해서, 다시 손이나 발이 부러지고 싶지는 않다!
한 가지 더! 이번에 아내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순진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