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의 발전 과정과 시 창작 요령"
(에드몬톤 문협초청 강연) 민초 시인
필자 주 : 지난 3월 8일 에드몬톤 문협 초청으로 문학 강좌를 개최한봐가 있습니다. 이 글을 여기에 올린 것은 평소에 저의 시를 좋아 하는 분들께서 "시 창작 교실"을 운영해 달라는 전화를 여러번 받고 생각을 거듭 했으나 현재로서 저의 문학에 관한 깊이와 넓이가 일천하여 감히 선듯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시에 관한 변죽만 울리는 강좌를 하게 되었기에 흥미 있는 분들 읽으시기를 바라며 강좌 내용을 옮겨 보았습니다. 민초
1. 서론
안녕하십니까?
이민을 온후 남 앞에서 강의를 해 본다는 것이 아득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에서 문학 평론가들이 100대 수필가로 선정힌 이 동렬 박사와 같이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들과 같이 문학, 특히 시를 논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이렇게 만나 뵙게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는 제가 존경하는 여러 문사님들 그리고 우리의 동포님들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정말 감사함을 드립니다.
주어진 짧은 시간이기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우선 문학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본다면 문학을 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생존의 진리를 찾아 낼려고 문학을 한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에 시 라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문학 쟝르의 한 파트인 시는 문학중 에서도 문학이라는 말들을 한답니다.왜 그렇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흔히들 소설은 픽숀으로 가상의 글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를 철학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일반적으로 시를 철학이라 생각하는 것은 시는 깊고 넓은 사고의 틀에서 응축되고 응고된 글이기에 철학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즉 철학이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며 생활 수단으로서의 철학이 유용한 학문이라는 생각입니다.시가 응측되고 이해할 수 없는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시를 철학이라 함은 큰 잘못으로 이해 하고 있다고 말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시는 무엇일까 즉 시는 우리의 일상의 삶 생존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언어 예술이라는 생각을 한답니다.물론 저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이는 다만 저의 사고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2.한국 현대시의 발전 과정
위에서 제 나름대로 시에 관한 정의를 생각해 보았는데 이에 한국 현대 시의 발전 과정을 고찰해 본다면 한국 현대시는 18세기 후반 일본사람 (外山正一) 이라는 사람이 영국 미국 등지를 유람하며 서구 시를 배워 모방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1882년경이였고 이때 일본 사람들은 이분이 쓴 시를 신체시라 했답니다. 한국의 현대 시는 그후 1910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유학생들이 일본 시를 모방해서 시 라는 것을 쓰기 시작 했는데 이런 시를 한국적 서구시라 했습니다.
이때 한국의 현대 신체시는 1919년 육당 최 남선이 소년지에 발표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신체 시의 첫번째 작품이라 한답니다. 여러분이 다 알고 계시는 봐와 같이 육당은 독립 선언문을 작성했고 그후 "붉은 저고리", "샛별", "청춘"등 많은 작품집을 출간했지요 그때에 종합 문예지에 글을 발표한 작가는 육당과 춘원이 한국 문단의 2인 천하 였슴으로 되어 있답니다.
그러나 근래에 제가 읽은 어떤 스님의 자서전에는 육당 보다 한해 앞서 김 일엽 스님이 "동생의 죽음"이란 작품을 발표한 것이 한국 신체시의 최초의 작품이라는 것을 읽고 놀란적이 있습니다. 김 일엽 수님은 "청춘을 불사르고"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등을 출간 했으며 1970년 1월 28일 76세로 불교에 귀의 한지 43년만에 타계했지요.
한국 현대시는 육당과 김 일엽스님이 신체시의 선구자 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후 한국 현대시의 발전은 김 소월 (본명 김 정식 1903년 에서 1935년 생존한)시인과 이 장희 시인 (1902년에서 1929년)을 들 수 있는데 이 시기를 한국 시의 여명기라 표현을 하고 있으며 이 두분이 서정시 발전에 크게 공헌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서정시라는 것은 상징적 감각적 심미적으로 독자의 심금을 노래한 것인데 이 두분의 작품 특히 김 소월의 시는 우리의 역사상에 영원히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니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 장희 시인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장희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 병학은 조선 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와 뜻이 달라 그가 27년의 젊은 나이로 음독 자살을 한 원인도 아버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아버지는 조선 총독부에 취직하여 관리가 되기를 원했는가 하면 일본인들을 위한 통역을 하라고 요구 하기도 했는데 민족 시인인 이 장희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많은 갈등을 했답니다.
그의 작품은 1924년 금성 5월호에 발표한 "실바람 지나간뒤" "새한마리" "불노리"등이 있으며 톨스토이의 원작 "장구한 귀양"을 번역하여 문단에 등단을 하게 됩니다. 그의 사후 1951년 청구 출판사의 백 기만이 펴낸 "상화와 고월"이란 문예지에 11편의 작품이 실린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의 문단의 벗들은 양 주동 이 상화 오 상순등이 였으며 그의 아호는 고월이라 했답니다.
이상으로 한국 현대 시의 발전 과정을 저 나름대로 고찰해 보았는데 이렇게 소월과 고월이 요절을 함으로 한국 문단은 현대시의 선구자를 잃은 비운을 맞게 되었지만 그 후 끊임없이 후학들이 글을 쓰고 현대 시를 쓰고 발전해 왔기에 오늘에 이르렀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한국문인협회에 회원이 만이천명이 되었고 이중 시인이 오천여명인데 그중에 이 한몸도 시인 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하고 이렇게 될 소리 안될 소리를 하며 여러분들 앞에서 주접을 떨고 있으니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여기서 제가 제일 좋아 하는 독일어권의 위대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해 보기로 합니다.
릴케는 체코 프라하에서 1815년 태어나서 1867년 까지 생존한 시인이며 그의 유작은 2000여편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작품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시집을 우리 동서 한테 선물을 받고 밤 샘을 하면서 읽고 또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시인이 붓을 드는 것은 사랑 때문이고 붓을 놓는 것도 사랑 때문이라 했지요. 저는 이분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 인류가 소유하지 않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전쟁도 시기도 모함도 없고 서로 모르면서도 사랑하는 사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 사회일까를 밤새워 음미 해본적이 있습니다. 그의 생애는 이렇게 사랑을 찾아 세계를 방랑 유랑을 했으며 아리로니컬 하게도 스위스 팔봉이라는 촌락에서 그를 찾아온 연인에게 장미꽃을 꺽어 주려다 그 장미까시에 찔린것이 화근이 되어 51세로 한창 살 나이에 죽었지요. 그는 말합니다 쓰고 읽고 쓰고 읽으면 언젠가 좋은 작품이 생산 될 수 있다고 그의 펜들께 말을 했다 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 문단은 시인은 많은데 읽는 사람들이 없어 큰 일 라는 생각을 한답니다. 왜 시인은 많은데 시를 읽는 사람은 많치 않을까 이는 한 마디로 맛나는 시가 없기 때문입니다 밥도 찬도 맛이 나야 자꾸 먹고 찾는 것인데 이렇게 시인은 많아도 맛나는 시가 없슴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이는 시를 쓰는 저 부터도 반성을 하든가 절필을 하던가 시인이라고 시를 발표치 말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함이 문제라는 생각입니다.시에 미치면 신앙에 푹 빠진것과 마찬가지로 시를 좋아 하는 것이 큰 문제이고 많은 시인들이 뼈를 깎는 아픔 속에 충분한 산고를 겪은 작품을 산출치 못함에 큰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한답니다. 이에 시에 미친 사람들은 시를 자꾸 쓰다가 보면 난해시가 출산하고 난해시가 아니면 또 문학비평가나 남들이 시를 읽을 맛이 없다하니 시는 자연히 난해시가 될 수 밖에 없어집니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은 그렇지 않지요.
시가 난해시이니 읽어도 이해가 안되니 읽을 맛이 없어 지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지경이 되니 시를 쓰고 책을 출판하는 시인들 거의 전부가 배가 고픕니다. 어째서 이럴까. 이는 시인이라는 말은 듣고 싶어 카페 문학등으로 등단은 하고 그 후 시인이라는 명함은 있어도 내 놓을 만한 작품 하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 같은 시인도 이 부류에 속하지 않나 하고 고심을 하고 있답니다.또 나아가 난해시를 써 놓고 좋은 시라 하니 남이 읽지 않으니 시집이 팔리지 않고 그러니 시인이 배가 고풀 수 밖에 없지요 한마디로 시인은 여름 장마비 같이 쏟아져 나오는데 좋은 명작이 양산되지 않으니 홍수가 되어 다 떠 내려가고 말리라는 생각입니다.참 안타까운 현실임을 가슴 아파 한답니다.
3. 시 쓰는 요령
이제 간단히 시를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몇가지 말씀드리고 저에게 주어진 시간에 맞추어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1)시는 손국수를 만들때.밀가루 반죽을 비비고 면발을 맛이 있게 하듯이 (시어가 섬세하고 고와야 하며)
2)시어는 정확히 가려서 사용함과 동시에 의심나는 어휘는 꼭 사전을 찾아 보아야 하며(표현력)
3)현대시는 metaphor 즉 은유적인 표현을 해야 시의 맛이 있다 합니다(난해시가 되지요)
4)한편의 시를 발표할 때 추고와 추고를 거듭해야 하며(산고를 겪어야 하지요)
5)생각의 파편을 모아서 모자익하게 응축된 시를 묘사해야 하며(절제된 작품)
6)사랑 그리움 행복 불행등의 추상을 직접적인 표현으로 쓰지 말아야 하며(은유적인 표현)
7)시어는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하며 발표한 작품은 독자의 몫이라고만 생각지 말고 다시 한번 음미하고 무엇이 좋았는가 나빳는가를 숙고하고 고쳐 나가야 합니다.(재 음미)
8)읽고 쓰고 읽고 쓰고를 반복하며 남의 작품을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음미에 음미를 거듭 해야합니다(모방)
그져 대충 생각나는 대로 써 보았으며 부족한 말씀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함을 드리며 저의 졸작 시 "靈의 浮標"와 "허수 아비"두편을 낭송하며 끝을 맺겠습니다 감사합니다.
"靈의 浮標
당신은 어디에서 왔는가 / 밤낮 가리지 않고 떠도는 디아스포라(Diaspora) /내 몸 속에서 잠들었가/
훨훨 날아가는 忘靈들일까 /저희들끼리 사랑하고 싸우고 그리워하는/靈魂과 영혼간의 끝없는 투쟁은 계속된다/
뒷 골목 빈터 화장터에서 /하늘공원에서 부표처럼 떠 있는 魂 /어느 누구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고/
유랑하는 영혼들의 즐기찬 싸움질 /그 부표 위에 떠 있는 혼도 /흙의 노래에 갈 길을 잃고 있다/
"허수아비"
더 이상 /어이 너를 그리워하리 /태양빛이 산마루를 넘으며/
그리움 다 토해 놓고 /서산을 바라보는 허전한 마음이니 /돌아 갈 길도 없구나/
눈송이 얼굴을 때리고 /바람소리 내 슬픔같이 불어주는데 /저녁노을 그리움에 떨고 있다/
아스라한 별빛 그림자 /내 고독 아직 벗어나지 못해도 /눈썹달은 웃음만 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