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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4-13 08:1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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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님, 시 잘 읽었습니다. 저는 민초님의 이 시를 읽으면서 체 게바라가 민초님의 세계관에 의해 길들여진 (tamed)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중요한 타자 (significant other)로서 체 게바리가 어떤 눈물을 지금 흘릴 수 있을까요? 민초님의 시에는 \"눈물\"의 시어가 잉여로 넘치고 있고, 이전 민초님의 시 강의와는 달리, 이 시는 은유적이라기 보다는 직접적이고 즉물적인 시어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3연이 과연 게바라의 눈물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아프리카 민주화 (탈식민지기치를 든 가다피와 달리)
일본의 역사관 (후기식민주의)
빈부격차 (사회 구조의 모순)
위의 그토록 상이한 시적 소재가 하나의 시에 일관되게 융합되기 보다는 서로 밀어내고 있는 양상입니다. 게다가 민초님의 다음의 글
\"잘난 사람들은 남을 험담하는것 못 들었어도
못난 사람들은 남을 험담하면서 살아가는 세파
인간성에 관한 혁명은 없는 것일까\"
게바라라는 시적 동기이자 소재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험담의 문제는 단순한 인간성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잘남과 못남, 그리고 잘남과 못남은 약자가 강자를 질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기존 사회의 구조를 공고히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기에 인간성의 혁명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혁명이 아니라 기존체제를 공고히 하는 위선 또는 허위의식입니다. 시인의 눈물과 게바라의 눈물은 상극을 이루면서 물과 기름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가 지나친 것일까요? 독자로서 이 시는 민초님의 여러 잘 된 시중에서 정제가 덜 된 시가 아닌지 감히 말씀드립니다. 여기 시의 소재가 요구하는 것은 시적 상상력도 중요하겠지만, 이 시적 상상력이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사회적 상상력이 필연적으로 요청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레\"는 \"모래\"로 정정하셔야 할 것같습니다. 저는 경상도 출신이라 ㅡ, ㅓ, ㅔ, ㅐ 등이 항상 헷갈립니다. 아내한테 국어공부 헛했다고 늘 핀잔받죠.^^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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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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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 2011-04-13 18:5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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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님 발표된 작품은 독자의 몫이니 무슨 말을 하리요. 작품은 읽는 사람에 따라 독후감이 다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의 생각과 시상은 2연이 있기에 3연을 충분히 설명코자 함입니다. 한마디로
나 자신은 허구와 위선 속에 살아 가면서도 나의 결점은 모르면서 나의 바램이
있다면 정의와 진실과 양심이 살아서 숨쉬는 사회가 보고 싶은 갈망입니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작품을 쓴 것은 이 작품에 한하여 어느 누구나 쉽게 읽고
한번쯤 자신을 뒤 돌아보는 순간을 남겨주고 싶어 은유적인 표현을 하지 않을려 노력을 한 작품입니다.
시는 작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발표된 글은 작품의
가치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좀 진솔한 사회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답니다.
무고하게 죽어가는 리비아의 민초들 일본 섬 사람들의 파렴치한 역사관등 지금 체 게바라가 살아 있다면 무엇이라 말할까를 생각해 본 것입니다. 작품은
어느 한 부분만으로 전체를 저울질 함은 곤난하다는 생각입니다.어쨌던 아름다운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아프리카님이 이런 댓글도 달아주니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날씨가 추워진답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요.
래이크 싸이드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 돌아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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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4-13 19:1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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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님, 답변 감사합니다. 시를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런 평가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겸언쩍습니다.
저는 시는 단순히 독자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생산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인, 그 시가 생산된 자리, 그리고 그 시가 갖는 의미론이 시평의 일차적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독자의 몫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설령 독자 비평이나 수용미학적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시적 지평과 독자의 지평이 어떤 공감대 그리고 교감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체 게바라를 아는 사람들이 그런 시적 교감을 이룰 수 있을까요? 조금 엇나간 말씀이지만 독자가 시를 임미하는 것은 천태만상이 아닌가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연애시로 읽는다고 뭐라고 말할 사람이 없겠으나 만해 선생께서 눈물깨나 흘릴 것같습니다.
제가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제 1연에 체 게바라에 대한 진술은 아무리 시적 압축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체 게바라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름을 넣으면 되는 그런 시어의 배열입니다. 그러니 제 1연의 체 게바라에 대한 진술이 2-3년으로 이어질 필연성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체 게바라는 혁명가지 인간성으로 쉽게 환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생각합니다. 제 3년의 제가 인용한 구분은 더욱 더 체 게바라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민초님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박 겉핧듯이 신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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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 2011-04-14 05:1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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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님 뜻 깊은 음미에 감사드립니다.
체 게바라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하면 아마 칼럼의 글을 써야할 것입니다. 시를 음미 하고 싶다면 검색창에서 체 게바라를 치면 상세히 그에 대한 업적과
살아왔던 생애가 기록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민초의 착상은 이 작품을
시적 미학에서 쓰지 않았습니다, 시를 읽는 독자들이 시를 좀더 깊이 있게
그 시의 의미를 터득코자 한다면 체 게바라에 대하여 좀더 알고자 하는 방편을
모색케 하고 싶는 마음이 였습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쟝글에서 죽은 후 그의 배낭 속에 남아 있는 시들을
모아 한권의 시집으로 출간된적이 있고 그 시 내용중에 위와 같은 유언이
있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20세기에 위대한 인간성의 소유자로 숭앙받는 것은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 세계의 지성인이라는 분들을 상대로한 여론조사에서 그렇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단견이지만 이 작품이 님에게 아니 어느 한 사람의 독자라도 관심있게 음이 했다는 것에 민초는 그 의미를 찾습니다. 한권의 시집을 출간하고 장마비같이 쏟아지는 시들 중에서 어느 독자가 다시 읽고 읽게한 작품이면 민초는 이 작품이
그런대로 좋은 작품이였다는 생각을 하며 감사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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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4-14 08:0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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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님, 저의 감상문을 너그러이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시를 잘 모르지만, 민초님께서 단순한 감성적인 것을 넘어서 보다 포괄적인 시를 쓰기 위해 실험적인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래의 \"흙의 노래\"는 정말 잘된 시라고 생각합니다.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보이는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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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 2011-04-14 17:3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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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님 신앙에 심취하지 못 하니 살아가기 위한 몸 부림으로 어디엔가 건전한 마음으로 정진코자 노력을 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모든것이 억망이고 그져 자탄의 한숨만 나옵니다. 살아가는 것이 절박하고 그져 답답한 행복한 고민 속을 방황하고 있을 따름입니다.따뜻한 마음 놓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눈이 많이 왔습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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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
| 2011-04-14 23:2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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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창에 미국식 민주주의의 종식을 예고받는 듯한 시사뉴스에서
오래전 감동깊게 느꼈던 민초님의 작품
“ 미국식 민주주의 “ 를 잠시 떠 올리며
(체 게바라의 눈물) 을 읽는 순간
시인의 세계관에 남몰래 흐르는 눈물의 본질이
이즈음의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게바라의 혁명의 눈물로 씻어내기를 바라고 있음일까?
하는 생각으로 일말의 기대와 호기심을 가져보며
작품을 감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인님의 눈물과 혁명가의 눈물이
너무도 상반된 근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잘 아시겠지만 그가 죽은지 40년의 세월이 지날수록
전 세계 젊은이들이 우상으로 품고 있는
체 게바라의 짧은 생애의 불꽃같은 혁명의 눈물은
조국 칠레와 주변국가들이 강대국들의
식민주의에 항거하며 고통받는 민초들의 신음을
더 이상 직시할 수 없어 의과대학을 졸업하자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험한 투쟁의 삶을 마감한
약소국가들을 위한 투혼자의 생의 눈물이었습니다.
“칠레의 등짝에 엉켜붙어 있는 양키는
냉혹한 이윤을 빨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무기력한 분노로 내 몰고 있었다.”
“체 게바라 어록 중에서”
조국과 볼리비아, 쿠바의
열악한 환경과 침탈된 식민지의 분노를
눈물로 보내기에는 그의 피와 열정이
행동하는 혁명가의 걸음으로 옮겨 놓을 수밖에 없었던
절대 절명의 조국애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민초님의 눈물은
“못난 사람들이 잘난 사람을 험담하며 살아가는 세파”를
아파하며 인간성의 혁명을
체 게바라의 눈물로 환치하셨음은
눈물의 동기가 같은 선상의 의미부여가 아닌 듯 하여
졸필을 올려봅니다.
진정 잘난사람은 낮은 자들을 소중히 아끼며
사랑과 헌신으로 몸을 던져
존경과 덕을 쌓기에 험담을 받지도 뱉지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반면
못난 자들의 험담을 질시로 받기에는
받는자의 자리 어딘가 헛점이 드러나 있어서가 아닐까요?
여기엔 인간성의 혁명이 아닌 인성의 수양이
각자 필요한 것 아닐까요?
더러 민초님 작품 곳곳에 외로움의 간극을
살피게 됩니다.
망향, 이방인, 방랑, 노스탈챠…
민초님의 눈물이 아름다운 인간애의 승화로
이어지는 날,
이민지 변방을 홀로 방랑하지 않는 동행자가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품감상에 졸평을 혜량하여 주시고
건안과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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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 2011-04-15 19:1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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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님 닉이 아주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첫쩨,제가 읽은 책에는 체 게바라가 칠리 출신이 아니고 아르젠틴의 귀족 명문
가정의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여 제가 잘못 알고 있지나 않나 싶어서 분명히 알고 싶어서 말씀드려 봅니다.
둘째, 저도 까마득히 잊고 있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작품을 아직도 기억 하신다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의 졸견은 미국이던 한국이던 북한이던 아니면 어떤 개인도 살아가기 위한 방편 각자의 행복의 측면과 편안한 생존을 영위하고 잘 살아가고 싶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본능을 어느 누가 객관적인 판단으로 잘 했다 못 했다 나쁘다 좋다함은 모순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삶의 가치관에 의하여 각자가 추구하는 길 삶의 방편등에 생존의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답니다.
인류의 역사는 약육강식으로 이어져 왔고 소 시민같은 우리같은 민초들의
삶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기에 참된 사랑을 찾을려고 신앙을 찾으며
정의롭고 빛나는 사랑을 찾고자 노력을 하며 살아가지 않나 하는 생가을 해
보지요. 그런데 제가 여기에서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을 시어로 표현해 본것은
사회의 흐름 예컨데 대통령을 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막말을 하면서 쾌감을 느끼려는 사람들 이런 것은 삼가하면 더 밝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요 아무 이해 관계없이 누군가 나 보다 더 잘 났다 싶으면 모함을 하거나 매도를 하는 우리 민족의 국민성을 시어로 다듬어 보았을 따름입니다.
셋째, 시인의 눈물 저 같은 주접을 떠는 시인도 이상이 있었다면 체 게바라와
같는 삶을 살다가 떠나지 못함이 서로워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렇듯 나름대로의 이상 속에서 정열을 불태우고자 했으나 저 자
자신의 생애가 훌륭한 사람들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하기에 시인의 눈물을 흘
리며 그런대로 자위하며 자기 성찰을 해 보는 마음을 토로해 보았을 따름입니다
아무턴 귀한 발걸음으로 졸작에 뜻 깊은 말씀과 견해를 피력해 주셔서 몇번을
읽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또 눈이 온답니다. 건강들 조심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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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영토
| 2011-04-16 14:5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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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민초님께서
첫번째 지적해 주신 게바라의 출신이
칠리가 아니고 아르헨티나가 맞습니다.
제가 글 올리면서 잠시 mistake을 하였군요.
신중하지 못했던 점 너그럽게 양해를 바랍니다.
민초님 작품 “미국식 민주주의”를 통해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작은 나라에게 행하는
수많은 인명살상과 파괴를 가슴 아파하며
멈출줄 몰라하는 눈물의 의미는
진정한 인류애의 연민과 사랑의 결집된 눈물로
가슴에 와 닿았었습니다.
세계화 민주주의를 내세워 자본가들의 경제침탈로
온세계의 질서와 규범을 무너트리는 오늘날의 현상이
평범한 소시민으로 별 욕심 않부리며 삶의 안정을 누리기에는
너무나 고통이 따르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수의 몇 사람의 부와 권력을 위해서
많은 대중과 약자들은 죽어줘야 만 하는
승자독식의 논리는 평화를 깨는 험악한 경쟁사회와
극심한 빈부격차의 위화감만 점점 쌓여 갈 뿐입니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생존의 방편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가간의 경계도 허물고
자본가의 이익을 위하여서는 동물세계에서나
이루어 지던 약육강식의 잔임함이
아무 부끄럼없이 전개되는 세상이 무서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의 양심과
정의를 갈구하는 민초님같은 분들이 있기에
시를 사랑하고 시인의 눈물을 깊이 음미하는 것이지요.
진솔한 마음을 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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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 2011-04-17 06:1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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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따뜻한 격려의 말씀에 글을 쓸 용기가 생기고 어느 한분의 독자라도
저와 같이 이름없이 조용히 살아 갈려는 마음을 양찰해 주시는 분이 있슴에
삶의 활력을 찾으며 하루를 넘기는것 같습니다.
미국식 민주주의 에 대한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작품은 영토님의 독후감과
일치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어쩌리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슬픔인 것을요. 국가간에나 개인간이나 그 살아가는 생의 철학과 개성의 차이
를 어떻게 치유하리요. 모든것 잊으며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이 슬프지
않을 수 있으리요.
님의 닉 민들레 영토가 너무나 깊은 사유를 던져주고 있어 이 주제의 졸작 시
를 한편 상재코자 2틀을 숙고하며 작품을 쓰고자 산고를 겪고 있으나 작품이
마음에 차지 않아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보람차고 건강한 나날을 맞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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