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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미필 저격범의 귀신같은 사격솜씨
작성자 clipboard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4231 작성일 2011-06-30 17:34 조회수 3280
유튜브는 펌 ------------------------ sarnia 는 한 번 기억한 특별한 날짜를 결코 잊는 법이 없다. 가령 이런 것이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오는 오스카의 생년월일을 질문 받았다면 나는 1976 년 8 월 18 일이라고 즉시 답을 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스치듯 지나 간 콘도 출입구 비밀번호가 760818 이기 때문이었는데, 이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sarnia 가 오스카의 팬이어서가 아니고 바로 이 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제 5 초소 부근에서 북한군과 미군 병력간에 패싸움이 벌어져 미군 장교 두 명이 사망하고 북한군-미군 양측 병력 10 여 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Tree Cutting Incidents-나무 자르기 사건> 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1968 년 1 월 북한 영해를 침범한 미군 정보함 프레블로호가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된 사건에 이어, 두 번째 북미전쟁 발발의 위험천만한 도화선이 될 뻔 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sarnia 는 1974 년 8 월 15 일 역시 개인적인 특별한 날짜로서 기억하고 있는가? 물론 기억하고 있다. 이 날은 sarnia 의 외할머니가 외삼촌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날이었다. 따라서 부모님을 따라 김포공항으로 외할머니 전송을 나가야 했다. 그런데 sarnia 는 아침에 가족들 몰래 혼자 집을 빠져 나와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 날 대한민국 사상 처음 생긴 지하철을 타보기 위해서였다. 그날 개통된 지하철 구간은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제 1 호선 구간이었는데, 그때는 1 호선이고 뭐고 그 구간이 전부였다. Anyway…… 오스카의 생일처럼 sarnia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날 아침 10 시 20 분. <8.15 광복 제 29 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던 서울 중구 장충동 소재 국립극장 안에서 일곱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그 일곱 발 중 네 발은 문세광이 발사했다. 문세광은 일본여권을 소지한 만 23 세의 재일교포였는데, 나중에 수사검사 정치근 씨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자칼의 날>을 통독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자칼의 날을 통독했다는 문세광의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작전은 소설 속에서 샤를르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는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 자칼하고는 처음부터 영 그 모양새가 달랐다.   우선 그는 저격용 권총을 구입하는데 실패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격용 권총을 구입하는데 실패한 게 아니라 문세광은 애당초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던 게 분명했다. 저격용 권총이라면 최소한 브라우닝 반자동 피스톨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사용한 권총)이라든가 콜트 45 구경 정도는 되어야 명중률과 치사율을 어느 정도 보장 받을 수 있는데, 그는 그런 권총을 하다못해 암시장에서라도 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사카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발견한 어느 파출소에 들어가 웬 구닥다리 권총 한 자루를 훔쳤다. 일본의 어느 엉성한 파출소가 그 날 문세광에게 도둑맞은 권총은 스미스웨슨 38 구경이었는데,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유명한 반전영화 <디어 헌터>에 나오는 러시안 룰렛 게임에 등장하는 그 크고 묵직한 리볼버를 말한다. 문세광은 그 묵직한 권총을 허리에 차고 서부활극에 나오는 총잡이 흉내를 내며 숙소인 중구 소공동 소재 조선호텔을 나섰다. 그는 <서울 2바 1091> 포드 20 M 을 타고 국립극장 정문을 통과했다. 고급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정문을 통과하는 스물 세 살짜리 청년에게 외곽경호임무에 투입된 서울시경 소속 경찰관은 힘차게 거수경례를 올려 부쳤다. 입구에서도, 극장 안에서도 비표조차 달지 않은 이 청년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탕탕탕탕탕탕탕 청년이 기념식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30 여 분쯤 지나 일 곱 발의 총성이 수 분에 걸쳐 식장 안을 뒤 흔들었다. 이 날 기념식장 안에서 울린 총성은 모두 한 종류의 권총에서 발사된 것이었다. 저격범 문세광과 역시 권총을 발사한 경호원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권총인 스미스웨슨 3.8 구경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떠 올릴 때마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한 영화 <인사이드맨>이 생각난다. 뉴욕 맨하튼 월스트리트에 있는 한 은행이 무장강도조직에 순식간에 장악되는데 범인들이 인질들에게 자기들과 똑 같은 옷을 입혀 범인과 인질의 구분을 사라지게 함으로서 완전범죄를 가능하게 만드는 그 영화…… 그냥 생각난다는 것뿐이지 딴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이 날 녹화된 비디오를 보면 두 번 째 총성이 나고 나서 연단의 모든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비호처럼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폐-엄폐물이 거의 없을 것 같은 연단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어디론가 싹 숨을 수가 있었는지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박정희 대통령은 연단 아래로 몸을 낮추었고 다른 요인들은 의자 뒤에 숨거나 꿩처럼 의자 밑으로 머리를 처 박기도 했다. 단 두 사람 예외가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씨가 그 때까지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었고, 박종규 경호실장이 연단 앞으로 뛰어나와 관객석을 향해 마구 권총을 난사했다. <마구 권총을 난사했다>는 표현은 그가 발사한 것이 분명한 탄환 중 하나가 저격범인 문세광의 위치와 전혀 다른 각도에 있었던 성동여상 합창단원 장봉화 양 (당시 17 세)를 맞추어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장봉화 양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종규 경호실장은 졸지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에서 오발을 했다고 쳐도, 저격범 <자칼 문>의 권총저격솜씨는 <요인암살비사>에 <뒷담>으로 기록될 만큼 황당했다. 이 청년이 소지한 리볼버에는 다섯 발의 탄환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뛰어나가면서 권총을 꺼내다 방아쇠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자신의 허벅지에 첫 발을 발사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문세광이 발사한 탄환은 약실에 남아있던 한 발을 제외하고 모두 네 발이었는데 아까 말한 대로 첫 발은 자신의 다리를 맞추었고 두 번 째 탄환은 단상에 맞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두 발을 더 발사했다. 문제는 세 번 째 총성부터 일곱 번 째 총성까지는 누가 발사한 총에서 난 총성인지 순서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녹화된 화면을 보면 육영수 씨는 세 번 째 총탄에 머리를 맞은 것으로 확인된다. 문제는 사건 직후 청와대 경호실에서 모든 탄피와 탄환을 수거해 가버리는 바람에 육영수 씨가 누가 쏜 총에 맞은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저격사건이 엄연한 형사사건이니만큼 현장은 검사 지휘아래 수사관할구역의 경찰 감식반이 도착할 때까지 보존되어 있어야 하는데 사법-수사기관도 아닌 청와대 경호실이 가장 중요한 증거물인 탄피와 탄환을 수거해 가는 바람에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현장에서부터 벽에 부딪혔다. 명백한 증거인멸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당시 현장감식에 참여한 이건우 서울시경 감식계장 (작고) 는 사건 후 15 년이 지난1989 년 9 월 <월간 다리>와의 인터뷰에서 “육여사는 문세광의 총에 의해 죽은 게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햿었다. 육영수 씨가 문세광의 총에 죽었다는 증거도 없지만 그가 쏜 총에 죽지 않았다는 반증도 찾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이건우 경감은 33 년 베테랑 수사관만이 감지할 수 있는 확신에 가까운 의혹으로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베일에 싸인 문제들을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1 년 전에 발생한 DJ 납치사건 이후 수세에 몰려있던 한국이 문세광 사건 이후 대일관계에서 그 수세를 극복하고 일거에 공세로 전환한 정황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한일관계에 있어서의 딜레마 뿐 아니라 1974 년은 박정희 정권이 연초부터 긴급조치를 잇달아 선포해야 할 만큼 정권위기가 고조되었던 해이기도 했다. 정권위기는 야당이나 재야의 반유신투쟁 때문이 아니라 권력내부의 균열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 년 벌어진 윤필용 사건 이후 육사 11 기 이후 기수의 군부내 사조직인 하나회와 대립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력기반이 위험할 정도로 흔들렸던 시기도 이 때였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한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쓸데없는 주제확산의 위험이 있으니 이 글에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이 날 총잡이 문세광이 국립극장에 타고 들어간 고급승용차 포드 20M 에 달린 <서울 2바 1091>는 위장번호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장번호판을 단 차량을 운용하는 곳은 당연히 정부기관인데, 청와대, 중앙정보부(현재의 국가정보원), 내무부 치안국 (현재의 경찰청) 국세청, 검찰 같은 권력기관이나 사찰기관뿐이다. 이 재일교포 청년은 당시 한국 수사기관의 발표와는 달리 조총련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일본 수사기관에 의해 밝혀졌고 오히려 친한단체인 재일거류민단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도대체 이 청년의 정체는 무엇일까? 37 년이 지났는데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 날 비명에 유명을 달리한 육영수는 49 세였다. 큰 딸 근혜는 22 세였는데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다니다가 프랑스에서 유학 중에 어머니가 피격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고, 둘째 딸 근영 (서영으로 개명) 은 20 세로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다니고 있었다. 막내 지만은 16 세로 중앙고등학교 1 학년 학생이었다.     육영수 씨는 어디선가 날아 온 총탄을 머리에 맞고 그 자리에서 절명한 게 아니라 종로구 원남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으로 후송되어서 뇌 절제 수술을 받고 난 후 그 날 저녁 운명했다. 옛날에 박목월 시인이 쓴 <육영수 여사>에서 육영수 씨가 운명하던 시간, 그 날 내내 흐리고 비가 내리던 서울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갑자기 광채 같은 게 서울 상공을 뒤덮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sarnia 는 당시 서울 하늘에서 전혀 그런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무튼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생전의 인연들은 누구였을까? 말썽꾸러기 막내아들과 함께, 아마 1950 년 12 월 12 일 이래 24 년 간이나 의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한 그녀의 아버지 아니었을까? 이 사건의 내막이야 무엇이건…… 그 날 이후 박정희 씨는 무너졌다. 흐르고 있는 이 노래의 어느 가사 대목처럼…… 2011-06-30 (MST 17:00) sarnia (clip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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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1-06-30 20:3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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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나도 정확히 기억하는데 군에서 제대한지 29일 되던 날인데 여의도에서 걸어서 대방역까지 가다가, 그날이 전철 1호선 개통하는 날이었지요, 갑자가 하늘이 이상한 색으로, 노란색이랄까, 주황색이랄까, 좀 특이한 색으로 변하며 비가 쏟아져 비 흠뻑 맞고 대방역에 도착하던게 생각나는군요.

근데 그 문세광 본인은 사형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나는 시키는대로 했는데 나를 왜 죽이냐?\" 그게 문세광의 항변이었지요.

philby  |  2011-06-30 20:4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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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날 여의도에서는 빌리 그레함 목사 무슨 전도대회인가 그런게 열렸어요. 그래서 여의도가 복잡했었는데 다음날 신문에 \"하늘에서 광채가 나며 십자가가 걸리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지요. 근데 기적이 일어나려면 좀 화끈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ㅠㅠ.

clipboard  |  2011-06-30 21:1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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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었는데 잠깐 저녁 놀이 있긴 있었군요. 하긴 서울 면적이 약 700 평방킬로 정도 되니까...... 또 제가 지하철 타는데 정신이 팔려 못 보았는지도 모르구요.

수사 끝나고 재판 시작한지 두 달 도 안 돼 서둘러 죽인 이유가 있지요. 저는 육영수 씨를 실수로 죽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놈들이 테스크포스인지 모르지만 무척 당황했을 것 같아요.

harmony  |  2011-07-01 11:1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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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조작과 음모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이니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더군다나 박정희 시절에야 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요즘에도 사이코패스가 지멋대로 방송장악하고 온갖 거짓을 일삼고 있는데요.
참 한심한 대한민국입니다.
한나라당에서 단물 빨아먹던 손학규라는 정치 몰이배가 민주당의 당수가 되는 나라에서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그냥 화가나고 짜증만 날 뿐입니다.

토마  |  2011-07-01 21:0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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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9살이었던 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박정희를 끔찍히도 미워했던 우리아빠는 일체의 기념식에서 박정희 연설을 집에서 못듣게 했었죠. 그때는 국경일 기념사를 방송3사에서 모두 방송을 했기 때문에, 우리집 테레비는 언제나 꺼져 있었습니다.

우리동네 모든 아이들은 그 담날 박정희 연설문의 요약문을 쓰는 숙제를 하느라 텅텅비어 있었고, 언제나 우리형과 저만 이리저리 구르는 돌멩이를 차고 놀고 있었죠... (그 담날 너네는 왜 연설문 요약문을 안써왔냐는 선생님을 어떻게 달랠까 머리를 굴리면서 말이죠.)

적적한 그날, 몇몇집에서 골목친구들이 뛰쳐나왔고, \" 너 봤니 너 봤니\"를 외쳤던거 같습니다. 무얼 봤냐는지 알 수 없었던 우리는 무슨일이 터진거 같다는 느낌에 집으로 들어갔고 엄마아빠한테 테레비를 틀어보자고 했었죠.. 테레비를 트니 이미 방송 3사는 향불에 명복을 빈다는 자막만 내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루 죙일 그 자막만 그날 나왔던걸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고 대통령 부인이 죽은걸 측은해 하는 엄마를 보구, \"박정희가 죽었음 지금쯤 광화문 네거리가 만세바다를 이루었을텐데\"하면 안타까와 하는 아빠를 보구 9살 저는 이 세상은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게 아닌가 보다하고 느꼈었죠. ㅋㅋㅋ (지금도 마찬가지 필링입니다.)

필비님이 그날 대방역에 계셨다면 저희집이랑 아주 아주 가까히 계셨네요. 위의 이야기는 대방역에서 500미터 반경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찰리아비  |  2011-07-02 01:5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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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님이 대방역 근처에 사셨으면 저하고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옷깃을 스쳐을 지도 모르겠군요. 지금도 제 부모님은 거기에 사시는데 가본지가 오래돼서 그립네요. 오늘따라 배경음악도 멋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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