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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형님 아우들, 아줌마 아저씨 누나들은
우리 조국을 지킨 영웅들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5.18을 맞아 그들을 추모하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뿌리채 부인한 것입니다.
단지 보수와 진보를 떠나 5.18 정신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규정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사항이기에
이를 부인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대단히 심각한 결격사유입니다.
그는 스스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길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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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광주에서 고통을 당하신 분들, 지금까지 그 고통속에 계시는분들 그리고 젊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위한 군복무중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의해 잘못된 일을 하고 아직도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하루빨리 그 고통속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길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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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보다 더 나쁜 놈----> 쥐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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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역사의 진실을 알고 싶군요. 군사정권하의 왜곡과 또 문민정부하의 또한번의 미화를 거친 지금 사실을 알고 싶군요. 너무 세세한것 보다. 큰 것을 보게 설명하여 주시면... 그냥... 욕만하고 그러면... 좀 답답하네요. 피혜지인 전라도도 또 집권당 지역인 경상도도 아닌 좀 중립적 시각이 필요한데... 가끔은 댓글을 보면 전기값이 아까운분도 있지안나 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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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쌀람으로서의 내생각: 박정희가 사살당한 뒤 전두환이라는 놈이 권력에 눈이 멀어, 착한 민주정부수립을 요구한 시민들을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일컬음.
잔소리님도 전기값 하시려거든 미화사건도 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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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고인이 되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늘 말씀 하신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이미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거쳐 밝혀낸 진실에 대해 지역의 구도로 바라보려고 하는것은 그 시도 자체가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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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대가 컷습니다. 댓글 다신분들이 다들 쟁쟁하신분들이라 제가 헛 소리했습니다. 진실은 있는데 그걸... 지역구도로 정치쟁이들이 이용해서 소시민인 저로서는 '혹' 냉정하게 이야기 하실까 기대를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국제적 입장에서 상황을 설명하신분이 계신데... 잊어버렸네요... 혹 아시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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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님,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판단하기 보다는 그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조금만 되살려보면 본인 스스로 판단이 가능한 일로 생각 됩니다. 만약 1987년6월 항쟁에 대해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인들에 의한 폭력 진압을 시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가정도 해 볼 수 있습니다.
1979년10월18일 부산 마산지역에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한 후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군인을 이용한 진압
1979년10월26일 박정희 사망
1979년12월 7일 긴급조치 9호 해제: 최규하 대통령의 민주 헌법개정 약속 및 정치억압의 완화
1979년12월12일 전두환 세력에 의한 군사반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 구금
1980년 5월17일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탈취 비상계엄령전국확대 정치활동금지, 국회 폐쇄 및 대학교 휴교령 및 군인 주둔
1980년 5월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계엄확대 및 휴교령 반대시위에 대한 공수부대의 폭력진압 및 군인폭력에 대한 시민항쟁시작
1980년 5월20일 대법원의 김재규 사형확정
1980년 5월24일 김재규 사형집행
1987년 6월항쟁에 의한 헌법개정 대통령 직선제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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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맞습니다. 알버타님, 당시 미국은 카터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던 시기이지요. 소련과 화해무드를 만들고, 또 민주당? 카너 재선 바로 직전의 큰 이슈엿죠.
일본의 한 언론 내용을 보면 김일성이 박정희 사후에 전쟁을 못한것을 무척 아쉬워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전두환 스스로가 그런 명령을 내릴 위치가 안되엇다는 거고, 미국과 사전 조율을 하고 내린 행동이고, 그당시 일본도 오히려 요청을 햇다는 내용이 있다죠. 혹 국제 정세로 보고 싶으시진 않습니까, 혹 오해를 부를 까봐, 전 아는건 별로 없고, 들은 이야기를 오히려 묻고 싶네요. 아마 작년인가 제 작년에 광주민주화 운동관련 국비자료가 나왔다는가 아니면 곧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리네요. 그걸 보면 좀더 진정한 사실을 알수가있지 안을까요.
물론 카터진영에서는 한국전의 재발 했으면 오히려 재선에 유리했다는 근거없는 말도 나오고요. 조만간 보다 진실을 알수 있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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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잔소리님만큼 무식해서 알 수 있는건 없지만, 국제정세건 모건 그때 많은 광주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운게 사실이고, 이들중 많은 분들이 죽임을 당한게 사실이고, 이런분들땜에 저같은 사람들이 평생 잊히질 못할 감동을 받은게 사실입니다. 무슨진실이 그렇게 더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피해지역도 가해지역도 아닙니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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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토마님처럼 국제정세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설령 다른 나라들의 이익에 반해 휘둘린거라 하더라도 결국은 국내 특정세력의 정치적 야욕에 의해 만들어진 일이지요. 박정희가 장기독재를 위해 만들어놓은 유신헌법을 철폐시키려는 일반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과 그 악법의 그늘에서 정권을 차지하려는 신군부 세력의 충돌중 가장 많은 희생과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것이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생각이며. 그 당시 일련의 사건을 보면 최규하 대통령이 긴급조치9호를 해제하면서 야당 정치인들의 정치활동과 함께 개헌논의가 시작될때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한 후 다음해 개헌논의를 위한 5월20일 임시국회를 앞두고 5월17일자정에 비상 계엄령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해서 국회를 해산 시키면서 정권을 찬탈하고 그에 항거하는 전남 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를 공수부대를 동원해 무차별한 폭력으로 진압함으로 광주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든것이 5.18민주화 운동의 시작이고 발단이라 생각 합니다. 박정희가 죽기전 이미 부마항쟁이 있었듯이 당시 민주화의 열망은 광주 한곳에서만 있었던것이 아니였고 다만 광주 시민들이 다른지역 사람보다 용기를 가지고 공수부대 군인들에 맞선 사건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 라 생각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이 자신들을 지켜줘야 할 군인들의 총에 희생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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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충분한것 같습니다. 글들 잘들 쓰시네요. 맞춤법이며 뛰어쓰기 부럽네요.
좋은 내용 알려주어서 감사하고요.
좀 다른 시각인 제가 여기서 받아드려지긴 힘들것 같습니다.
가르쳐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그 아픔을 전 다른쪽 원인으로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는 전직 기자분이 아고라방에 가면 많은 자료를 얻을수
있다고 합니다. 혹시 궁금하시면 자료룰 읽어 보시는것도 좋으실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로서는 의문이지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여튼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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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님, 그나저나 전기가 남아돌때 내사랑님께서 요청하신 미화사건에 대해 좀 들려 주십시요. 소설 같은거 말고요,,, 그리고 아고라방이 뭔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원하는 얘기를 찾으면 될것을 왜 여기서 기웃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님의 행동에서 상당히 비겁함을 느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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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좀 이성적인 대화를 하였으면 합니다. 물론 맘에 안드는 사람일 경우 찬성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인 단어를 쓰시면...
지금 광주민주화 항쟁을 다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당시, 만일 시청 (서울역)에서 유시민과 심재철 (?) 중 유시민의 주장대로 강행을 했을경우 군부를 몰아내던가, 아니면 다시한번 한국전쟁이 있을뻔했다는 의견에 전 동의를 하고,
국제적으로는 소련과 화해무드로 재선을 하고자한 카터가 과연
수수방관했을까 하는 의견,
카터는 어째든지 한국전쟁을 기필고 반대를 했을겁입니다.
얼마전 파티스탄과 미얀마의 시위가 있고 사망자가 발생을 하였습니다.
사상자수는 틀리지만, 국제 사회 여론은 천지 차이입니다. 파키스탄은 사건이
그냥 넘어가고, 미얀마에서 10명 죽은것도 대서특필하고 있지요.
알버탄님도 아시리 믿지만 참고로 파키스탄은 전두환과 비슷한 무샤리프가 쿠대타로 독재하는 군부독재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미얀마는 중국측의 인도양 확보하는 전략적 요충지죠.
민주/인권은 종종 강대국의 이익을 합리화하는 미사여구 입니다.
전두환이 더 나쁠까요, 부시가 더 나쁠까요. 이번은 인용하지는 않고, 저의 판단은 착한척 하는 카터가 재선을 위해서 서울에서의 진압보다 인구면에서 광주를 택했고, 권력 잡기 바쁜 전두환은 완장찬넘 뿐이라는 겁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을 보면 파키스탄도 어쩌면 또 하나의 광주민주화 운동일 수 도 있습니다. 물론 규모는 상대가 안되지만...
국제적인 구조를 보면 그렇다는 생각입니다....
온픈된곳에 글을 쓰는 것과, 일기장에 글을 쓰는것은 다르겠죠. 정보의 교환을 목적으로 이곳에 잠시 여쭈어 본겁니다. 물론 제 관점에 이상하고 놀라고 불쾌했다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오픈사이트에 앞도 끝도 없이 욕하는것 보단... 좀 났지않을 까요?
518은 분명 한국역사 아픈 페이지입니다. 그러나 좀 다시 객관적으로 재판단하자는 의견의 요즘 나오고 있고, 아시다 시피 미국은 1급 비밀도 시간이 지나면 정보공개를 해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때 518 즘시 미국의 사전 의견 조율이 있다면 정말 우린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국제화 시대에 고립되면 안된다는 말이죠. 참 미화사건이란, 마치 군부와 민주화 진영과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카터의 재선을 위한 결정 영향이 지대했다고 보고 싶네요. 그런데 그걸 최소한 연로 정치인들은 안다고 생각이 드는데... 정치입지로 이용한다는 거죠.
만일 카터가 재선 후였다면.... 절대로 잔인한 군부가 광주에
갈수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재의견의 입니다. 아직도 누가 과연 미국을
무시할 정치가가 또 나올까요? 따르면 가끔은 역적이 되고, 안 따르면 뒤통수 맏고..... 어렵네요...
틀린다고 생각하시면 좋은 의견을 주십시요. 그러나...욕설은 정말 아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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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낀 감정에 충실한 단어를 사용한것은 사실 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 행동에서 불쾌함을 느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순간이나마 제가 님께 느겼던 좋지않은 감정에 대한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생각엔 당시 계엄령 전국확대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군대를 동원한 무차별 진압을 계획한 신군부 세력과 그를 허락, 동조, 묵인 혹은 방조한 미국의 역활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보며 또한 5월18일에 시작된 광주 시위대에 대한 공수부대원들의 무차별한 폭력행사와 5월21일 에시작된 시위대에 대한 발포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상계엄 확대와 동시에 서울의 대학 및 주요 기관에는 1,3,5,9,11,13 공수여단을 광주에는 7공수여단 33대대와 35대대등 2개 대대를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에 배치 한것을 보면 그들에게 서울과 광주가 주요 타깃 혹은 중요한 지점 이었다는 생각에는 동의 합니다만 카터가 광주를 선택해서 무력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증거나 논리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 입니다. 그리고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한 폭력을 사용하여 진압하는 일은 미리 계획 할 수 있었겠지만 시민들이 계엄하에 군인들을 상대로 민주화 시위를 하도록 만드는 일은 미국이 계획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을거라는 생각이고 만약 광주시민들이 다른 도시의 시민들 처럼 군인을 상대로 계엄철폐 및 민주화 요구시위를 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광주민주화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입니다. 혹시 미국이 그 일을 계획하면서 목적했던 일, 실제 계획한 일 그리고 그 일 이후에 그들이 얻은것등에 대한 논리나 증거를 가지고 계시면 알려 주십시요. 카터가 그일로인해 재선에 유리했던 구체적인 이유 같은것도 좋습니다.
어떻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들은 그 일를 그들 스스로가 계획 했던 아니면 미국의 사주를 받아 완장을 차고 저지른 일이던 상관없이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고 그들에 대해 말로 할 수 있는 욕에 한계가 있는것이 안타깝고 화가 날 뿐입니다.
사족 입니다만,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 결국 미국 사람들이지요 정말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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