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님, 안녕하세요. 저의 주장은 그냥 지나가도 될 이야기지만, 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해서 한 말씀 씁니다. 댓글을 너무 길게 달면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있어서 따로 올립니다. 딴분들은 모르겠지만 아고라같은데서 토론상황을 점검해 봐야겠지만 저는 아고라 토론에 참여한바가 없고 황우석 사건 때 한두번 들어가본 것 외에 아고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광주민주화항쟁과 관련된 사건을 여기서 토론에 붙이시려면 아고라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링크를 달아주시고 이런 저런 극비문서가 개방되고 있어서 광주학살의 본질에 새로운 해석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거의 항상 컴퓨터를 틀어 놓고 있기 때문에 전기값 아깝지는 않고요. 또 뭐 토론을 쌈으로 삼는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열망은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아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두환이넘 욕한다 하지 말고 좀더 자세히 친절하게 자료제시와 님의 주장 부탁합니다. 저는 아고라같은데서 토론할 능력이 안되거거든요.
저는 도올 김용옥 선생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한국사 연구에서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실학”이란 개념 등에 비평적 성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의 실학의 개념에 대한 비평은 다른 역사적 실재나 해석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도올에 따르면, “실학”이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나는 실학운동한다”고 한 의식적 운동이 아니라 그 시대적 경향성을 “실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학도 혁명이냐 단순 농민반란이냐라는 것도 실학이라는 개념적 도구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학을 단순 농민반란이 아니라 혁명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한 시대의 변혁을 추구한 사람들의 집단적 실천이 혁명에 걸맞는 개념적 범주에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정희 군사 정변을 516혁명이냐 군사쿠데타냐라는 것도 같은 맥락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적 도구가 적합성을 갖는 것은 그 개념이 지시하는 실재를 제대로 설명해 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516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박정희 전두환 때 중고등 역사교과서나 윤리 교과서에서 박정희의 군사 정변을 혁명으로 배웠지만 자유로운 학문이 허용된 사회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은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로 규정되었습니다. 어느 역사적 시대나 사건을 혁명이냐 쿠데타냐는 개념적 선택을 하는 것은 어느 것이 가장 잘 그 사건을 표상해내고 해석해 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1980년 5월 광주 사건을 전두환 군사정권은 폭도들의 반란으로 규정했습니다. 여기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였고 또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학문이 비교적 자유로와진 민주사회가 되었을 때 학자들은 1980년의 광주시민들의 죽음은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massacre)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광주시민들의 저항은 폭도들의 반란이었을까요? 아니면, 광주 항쟁 또는 민주화항쟁이었을까요? 후자인 민주화 항쟁으로 보는 것이 가장 살득력이 있는 개념적 정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여전히 극우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른바 광주사건을 폭도들의 반란으로 보기도 합니다. 잔소리님께서는 이와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하셨고 그 문제제기는 어떤 의미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광주 민주화 운동과 군인들의 민간인 학살, 그리고 이러한 학살의 책임에 전두환이 무관함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잔소리님께서 “군사정권하의 왜곡과 또 문민정부하의 또한번의 미화를 거친 지금 사실을 알고 싶군요.”라고 하셨을 때, 이것은 여기 게시판 이용자들이 답변할 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토론이 되려면, 잔소리님께서 주장하신 “문민정부하의 미화”가 현대사 학회나 일반인들의 역사 인식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잔소리님은 광주의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주 오래전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국제적 입장에서 상황을 설명하신분이 계신데... 잊어버렸네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국제걱 입장 또는 관계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시지 않았지만 일리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잔소리님의 입장을 본다면, 한국에서의 이른바 광주사건은 전두환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런 사건이 나올 수 있는 사회구조 또는 국제 관계적 과정을 설명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잔소리님은 이런 면에서 꼭 전두환이 아니었더라도 광주사건은 발생할 가능성이 그 내적 구조에 내장되어 있거나 또는 국제 관계에서 전두환은 그런 사건을 유발하는 핵심적 동인은 아니라는 시각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그래서 잔소리님은 “일본의 한 언론 내용을 보면 김일성이 박정희 사후에 전쟁을 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전두환 스스로가 그런 명령을 내릴 위치가 안되엇다는 거고, 미국과 사전 조율을 하고 내린 행동이고, 그당시 일본도 오히려 요청을 햇다는 내용이 있다죠.”라고 전두환 책임론을 희석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전두환은 국제관계에서 북한 김일성의 침략적 위협에서 한국이 위기 상황에 있는데, 그 위기 상황의 핵심적 도화선인 광주 시민들의 군부 저항에 있었다는 것으로 잔소리님이 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잔소리님이 “좀 다른 시각인 제가 여기서 받아드려지긴 힘들것 같습니다. 가르쳐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그 아픔을 전 다른쪽 원인으로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하신 그 다른쪽 원인은 바로 이런 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은 광주 학살에 대한 중심적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광주학살은 광주라는 특정 지역에서 급진적인 폭도들에 대한 전두환 군부의 폭동 진압이 아니라, 광주 시민들의 저항은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정권에 이르는 민주화 운동의 흐름에 전통에 있었고 그 민주화운동을 군홧발로 짓밟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광주 뿐만 아니라 남한 전체의 민주화 운동은 바로 전두환 군부에게 군인은 군인으로 돌아가고 민주정부수립을 할 수 있는 민주적 사회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정권 탈취에 혈안이 된 전두환의 야망과 정면으로 배치될 수 밖에 없었고, 광주시민은 그러한 야욕의 희생자였습니다.
잔소리님은 “아마 작년인가 제 작년에 광주민주화 운동관련 국비자료가 나왔다는가 아니면 곧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리네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지만 광주 학살의 기원에대한 저의 테제를 뒤집어 엎을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그런데 잔소리님은 전두환이 나쁜놈이라기보다는 그 학살의 기원을 다른데서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반복하자면, 광주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통시적으로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전두환 군부에 이르는 민주화 운동의 흐름 그리고 공시적으로는 전국적 민주화 운동의 부분으로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두환은 그냥 쏙 튀어나온 나쁜 놈이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는 군부통치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양대 흐름간의 긴장에서, 권력 야욕에 눈이 먼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잔인하고 참혹했습니다.
잔소리님께서 쓰셨습니다.
“518은 분명 한국역사 아픈 페이지입니다. 그러나 좀 다시 객관적으로 재판단하자는 의견의 요즘 나오고 있고, 아시다 시피 미국은 1급 비밀도 시간이 지나면 정보공개를 해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때 518 즘시 미국의 사전 의견 조율이 있다면 정말 우린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국제화 시대에 고립되면 안된다는 말이죠. 참 미화사건이란, 마치 군부와 민주화 진영과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카터의 재선을 위한 결정 영향이 지대했다고 보고 싶네요.”
위의 잔소리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설령 잔소리님의 주장처럼 전두환의 학살의 만행이 미국의 대선과 관련되고 또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하에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히틀러는 히틀러고 전두환은 전두환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모든이의 염원입니다. 저는 잔소리님께서 광주 사건이 단순히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여러 동인들의 망(web)의 결과였다는 것은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 학살의 책임자의 소재를 흐리게 할 위험성도 있다고 봅니다. 개도국의 독재와 군부의 개입, 미국의 제 3세계 관여, 미국내의 대선과 국제 관계, 한국의 근대화 등등의 연관성 주장으로 광주문제는 현재론 어떤 핵심적 주장의 근거(no apparent center)도 없다는 것은 전두환과 그 졸개들의 만행의 핵심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광주 학살 사건을 여러 다른 요인들의 연관성을 이리저리 들쑤시며 여러 가설들을 남발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좀 고얀스런 주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