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달에 한국에 다녀왔으니 1년 5개월 만에 한국에 다녀온 셈이 되는군요. 그리고 한국에서 돌아온지 이제 열흘이 되어 갑니다. 돌아온 다음날 부터 출근을 해서 무척 바쁘게 지냈습니다. 한 동안 시차와 누적된 피로 때문에 힘들었지만 추수감사절인 오늘까지 연 3일 쉬고 나니 이젠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지난 9월1일날 가장 싼 항공권으로 캘거리-씨애틀-인천공항 루트를 이용했습니다.항공권은 1,200불.. 캘거리에서는 장난감 비행기 같은 쌍발로 떠났고 씨애틀에서 한국행은 아시아나를 이용했습니다.한국항공사를 이용하면 여러가지로 좋은 점이 많은데 늘 가격이 비싸서 망설였습니다만 이번엔 그 정도면 저렴한 편입니다.
공항에 내려 가족을 만났는데 전날 밤까지 일하고 새벽에 출발해 씨애틀공항 대기시간 6시간 까지 합하면 20시간 이상 걸려 한국에 도착했으니 아마도 무척이나 초췌해 보였겠지요. 그러나 약 25일간 한국에 있으면서 먹고 노는 사이에 체중이 3.5킬로 늘었습니다. 이걸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여기 사람들이 마른 것 보다 젊어 보이고 보기가 좋다고들 하는군요.
역시 한국은 모두에게 그렇듯 저에게도 어머니의 품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지겹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한국은 저에게는 돌아가야할 고향으로 생각이 됩니다.
도착해서 먼저 환중에 계신 80이 훨씬 넘으신 노모를 만나 뵈니 마음이 안타깝지만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받아 들여야 하겠지요.
저는 이번에 한국의 자연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웅장하고 무엇이든 큰 규모의 미대륙 보다는 아기자기하고 멋진 강산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낼 모레면 환갑이고 제 아이들이 제 나이에 결혼을 했다면 이면 손자,손녀를 여럿 둔 할아버지였을 저에게 옛 회사의 임원이셨던 은퇴한 상사가 하시는 말씀이 " 너 참 똘똘(?)한 현장소장이었지..." 그러면서 거금의 용돈을 주시더군요. 깜짝 놀라 사양했지만 그 분에겐 영원히 부하직원인 제가 끝까지 거절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평생 살면서 딱 두사람의 믿는 사람을 만났다며 그 중 하나가 저라고 하시더군요, 영광이죠. 그 분이 저를 보고 "내가 지금 자네 나이라면 무엇이든지 새로 하겠다" 하시더군요. 정말 그럴까요? 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대접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건 우리들의 법이거든요. 허락 없이 제가 내면 무례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날 제 부하직원이였던, 현재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약 7살 차이가 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야 말로 저에겐 평생 오른팔이자 동생과 같은 사람이죠. 지금도 전화 한통이면 한국의 저의 집에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는 친구죠. 그 친구는 정말 바쁜 중에 저를 위해 긴 시간을 내고 자기도 그새 성공 했으니 무조건 자기가 대접을 하겠다는 겁니다. 기횔 달라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주로 고교 동창생들이지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친구들도 만났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캐나다 사회는 너무 다른 세상인거 같습니다.
어느새 성장한 아들이 아비를 걱정하는 걸 보고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늙으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늙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25일간의 휴가.....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더군요. 좋아하는 회도 많이 먹었습니다. 저에게는 참치 보다 민어회가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다 만날 수는 없었지요...사실 조용히 있다 오려고 했었거든요. 깜빡 잊고 연락을 못했던 친구들에겐 얼마나 서운해 하던지 제가 무척이나 당황 했습니다. 그래서 출국 전날 밤에도 만나 술한잔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돈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형제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이렇게 정 많은 곳, 의리가 다른 것에 우선되는 곳....그런 곳이 바로 내 고향 한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캐나다로 왔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캐나다는 아직 제가 나이를 잊고 일할 수 있는 곳이지요. 살아 있다는, 아직은 젊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돌아 가야할 곳은 내 고향 한국입니다.
한국에 갔다가 그곳에 있는 기간 중에 지방신문과 연합뉴스를 통해 인터넷에 뜬 아들 놈의 기사를 봤습니다. 소위 '공부의 신 3인방'이 부대 근처의 충북 영동 지방고교에 공부하는 법 전수해주러 갔었다는 것이더군요. 제 아이 말고 나머지 두명은 공부의 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더군요. 하나는 사법고시 수석합격자로 제대 후 판사 임용 예정이고 다른 한명은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자라고 합니다. 모두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인데 그런 친구들과 같이 일하는 것도 커다란 행운이겠지요. 이런 것도 이번에 저에겐 자식을 둔 아비의 자랑이자 기쁨이였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은퇴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한국의 건설경기가 너무 나빠 돌아가도 별로 할 일이 마땅치 않거든요. 매일 친구들과 산에 다니거나 시골에 내려가 농사 짓는 것은 저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70살 까지는 일하고 싶은데...그리고 나서 은퇴해 한국에 돌아가 살 수 있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대통령선거 때문에 매일 뉴스가 그걸로 도배가 되어 있더군요. 제가 응원하는 사람이 안되어도 누가 되든 나라를 잘 이끌었으면 합니다. 3후보 중에 적어도 빨갱이는 없는 것 같으니까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수감사절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