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년만에 올리는
자탄풍 노래 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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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애틀을 출발한 아시아나 271 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
저 비행기는 잠시후 272 로 편명이 바뀌어 다시 시애틀로 돌아간다.
아래: 프놈바겡에서 보낸 어느 날 저녁
마사코 상과 리향애 동무
씨엠립 6 번 도로를 달려가다 칼텍스 주유소를 끼고 우회전해서 조금 내려가다보면 연못에 둘러싸인 목조건물이 한 채 보인다. 우든앙코르 호텔이다.
이 호텔은 게스트 리셉션 방식이 특이했는데, 손님이 들어오면 일단 소파에 앉게한 후 차가운 물수건과 레모네이드 한 잔을 건넨다. 그런 다음 근무자가 지도와 각종 요금표 복사한 종이를 나누어주며 이런 저런 설명을 시작한다.
내가 들어갔을 때, 먼저 온 손님들이 몇 명 로비 소파에 앉아 있었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백인 여자 두 명, 생김새에선 한국인 필이 나지만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는 20대 동양인 커플 한 쌍, 그리고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동양여자 한 명이 그들이었다.
내가 소파에 앉자마자 그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생긴 동양 여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대뜸 “니혼카라키마시다카?” 하고 말을 걸어왔다.
중국인이나 일본인 중에는 아무에게나 자기나라말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경우를 겪을때마다 조금 불쾌감을 느끼곤한다. 헌데 이 여자의 말투에선 그런 불쾌감을 주는 오만함보다는 조심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져서인지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영어로 “한국에서 왔다” 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분이 나빴다면 아마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나 한국에서 왔어!”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 여자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일본사람인 줄 알았단다. 싸르니아는 이 호텔 로비에서 이렇게 마사코를 처음 만났다. 여행 중 발생하는 일이 대부분 우연이듯이 마사코와의 만남 또한 우연한 일이었다.
마사코, 여기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카페 레드피아노야.
안젤리나 졸리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가 있었는데,,
이 카페에 와서 매일 밥 먹다가 갑자기 유명해졌대.
후쿠지마 마사코 (福島雅子)는 올해 서른 여섯 살이다. 1976 년 고베에서 태어나 바로 옆에 있는 교토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조용하면서도 매사에 적극적인 여자다. 소아과 의사인데, 씨엠립에 있는 한 어린이병원에 무언가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일을 끝내고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무슨 볼 일인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5 일간 이 도시에 더 머물면서 3 일권을 끊어 유적지 순례를 할 거라고 한다.
“그럼 툭툭 쉐어해서 같이 다닐까?” 하고 내가 제안하자 두말없이 “그래, 그러자” 하고 동의해 주었다.
툭툭 대절비용은 보통 하루 일과 시간 기준으로 12 불이지만 호텔에서 소개한 툭툭을 이용하면 2 불이 더 비싸다.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생기거나 할 여지가 적기 때문에 그냥 호텔에서 컨택해 주는 툭툭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 툭툭 기사 ‘부루스 리’ 정말 고생했다. 왜 그에게 ‘부루스 리’ 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호텔 직원들은 그를 부루스 리 라고 불렀다.
첫 날 늦은 오후 프놈바겡으로 부터 시작해서 휴식시간도 변변히 가지지 못한 채 강철체력 한일 커플의 조금 무리한 스케쥴을 큰 불만없이 따라와 주었다.
마지막 날에는 점심 휴식 딱 30 분 후에 Bantreay Srei 까지 강행군을 시도했다. 가는 도중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졌다. 그런 폭우에 툭툭의 커버란 있으나마나한 것이어서 세 사람 모두 바다에 투신자살하려다 구조된 사람들같은 몰골이 되고 말았다. 지갑을 호텔 세이프에 두고 나왔기 때문에 주머니에 넣어 둔 지폐가 모두 걸레처럼 젖어버렸다. 여권 안 가지고 나오길 정말 잘했다.
폭우가 그친 후 툭툭 뒤 덮개 구멍을 열고 돌아갈 길이 무사한지 점검했다.
저녁에는 유적에 갈 수 없으니까 대신 시내를 함께 쏘다녔다. 첫날 압사라 댄스 버페에서는 둘 다 디저트 제외하고 네 접시 가량을 비운 것 같다. 둘 다 한 접시에 산더미처럼 음식을 담아오는 스타일이 아니라 네 접시 비우기가 가능했던 거다.
둘쨋날은 레드피아노에 가서 생선요리와 앙코르맥주를 마셨다. 그곳은 호텔에서 가깝기 때문에 산책삼아 걸어서 다녀왔다.
셋째날은 ‘평양랭명’에 가서 둘이 60 불 어치를 때려 먹었다. 그 식당 음식 가격이 비싸기도 했지만, 이렇게 많이 먹은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화벌이 일꾼 리향애 동무의 공이 지대했다.
좀 생뚱맞은 반찬이지만 땅콩조림이 의외로 맛있다.
처음에는 평양랭면만 한 그릇씩 먹고 나올 생각이었다. (앞에 놓인 빈 그릇 보면 알겠지만 마사코는 냉면을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리향애 동무가 어디 가지도 않고 옆에 붙어서서 판촉활동을 시작했다.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줄 때 내가 리향애 동무에게 “나는 남조선에서 왔고 이 여성동무는 일본사람입니다"
라고 소개를 했다. 쥐색 홀리스터 셔츠에다 잠자리 선글래스를 머리에 꽂은 이상한 차림새를 한 사내의 입에서 “남조선” “여성동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게 우스웠던지 입을 가리고 미소를 짓다가 말고는 갑자기,,
“그럼 두 분은 애인사이십니까” 라고 뚱딴지같은 질문을 해왔다.
이 질문은 정말 뚱딴지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웃을 뻔 했는데,, 남녀가 함께 다니면 당연히 애인사이일거라고 생각하는 그 순수함(?)에 잠깐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같이 여행한다”고 설명해 주었는데,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곤혹스러운 순간의 마사코
암튼 그녀의 집요한 판촉활동에 넘어가 결국 냉면 두 그릇 외에 불고기 2 인분과 들쭉술인지 뭔지하는 술까지 한 병 시켰다.불고기와 술맛은 모르겠는데, 냉면은 일품이었다. 냉면광 선친 덕에 아주 꼬마때부터 오장동 함흥냉면은 물론이고 한일관 우래옥 등 평양식 냉면집도 두루 다닌터라 싸르니아의 냉면 입맛은 아주 까다로운 편인데,,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
문제는 들쭉술. 반쯤 마시고 남은 반 병을 러기지안에 넣었는데, 병마개를 꼭 닫았는데도 불구하고 술이 밖으로 새는 바람에 셔츠 몇 장에 끈적끈적한 얼룩이 졌다. 피피캡 병마개 안에 참기름병처럼 플라스틱 누름마개가 또 있는데도 불구하고 술이 새다니. 아~ 짜증나..
마사코가 위엥짠으로 떠나기 전 날, 싸르니아는 태국으로 따났다.
서울에 오니까
비가 온 뒤 조금 추워졌다.
사람들이 가끔씩 힐끔힐끔 쳐다봐서 왜 그런가했더니
반팔입고 다니는 사람 나 하나밖에 없더라고......
심지어 겨울오바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 보기만해도 땀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