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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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토론에 끼어드는 건 참 내키지 않는 일이다. 싸르니아는 현재 대한민국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대선토론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더 중요한 이유는 感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간적 단절이란 시간적 단절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필링교란과 판단장애를 유발한다. 정보가 넘쳐나도 感이 없으면 그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런 내 처지로는 정보를 스스로 해석하기 전에 현장에 사는 사람들이 레알한 감각을 토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의견들을 먼저 경청하는 과정을 반드시 수료해야 한다. 분수를 지킨다는 의미는 외국인이니까 내정간섭하지 말고 가마떼기처럼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해석과 판단의 절차가 조금 더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복잡한 절차를 수행하는 겸허한 자세를 의미한다.
싸르니아는 안철수 씨를 잘 모른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그는 정치조직의 수장의 역할보다 자기가 지지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에 파워를 실어주는 역할을 선택했다. 정치조직의 수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인맥과 조직이 열세인 그로서는 당연하고도 올바른 선택이었다. 정신적 지도자로야 마하트마 간디가 제격이지만 정치조직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에는 자화할랄 네루가 훨씬 더 유능할 수 있다.
안철수는 이런 ‘정치공학’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과학자답게 데이터 결과대로 사심없이 실천했다. 이런 역할이란 대개 일생에 한 번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결단의 과정이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정치가의 마인드를 뛰어넘어 혁명가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해 줄 만하다.
나는 오늘 이런 저런 한국 신문들을 읽으면서 솔직히 한국의 진보논객들 상당수가 ‘지금 어떻게 해야 이번 대선에서 시민파워가 자본/엘리트권력을 견제할 구도를 재생산해 낼 수 있는가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한국 정치사상 전대미문의 질문을 던진 ‘안철수 행보’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과 그 행보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철수가 착한 척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어떤 돌팔이 논객의 소박하고 용감한 주장이나 어느 칼럼니스트 가 ‘공학’ 문제 가 아닌 ‘철학’ 문제에 주로 집중하고 싶다고 한 말이나 대선을 ‘인물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칼럼을 상업적으로 특화시키기위해 ‘안철수 행보’에 정치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가 정략적 인물과는 구별되는 윤리적 인물이었다는 강조를 한 것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한 번으로 족하다.
자본/엘리트 집단은 이런 그의 역할선택이 상대진영에 시너지 파워를 안기지 못하게 하려고 기를 쓰고 폄하하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이래 그 ‘당연하고도 올바른 선택’을 목격한 역사가 없는지라 조금 놀라워 하는 것 뿐이다.
단일화 매듭을 일거에 해소해 버린 역할 외에 지금 당장 안철수 씨가 해 주어야 할 역할이 있다.
자신의 지지자 중 부동층을 대상으로 ‘자신의 결단이 함축하고 있는 사회과학적 의미’를 설득하는 작업에 ‘직접’ 그리고 ‘신속하게’ 나서는 일이다.
대선은 인물대결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계급 뿐 아니라 가치를 둘러싼 서로다른 의견집단들 사이에 국가공동체 운영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제도적 경쟁이다. 대통령은 일단 계급 및 의견집단을 대표해서 집권경쟁을 대리하고 있는 선수일 뿐이다. 공동체가 발전할수록 대통령이란 leader 개념 보다는 representative 개념으로 변화한다.
안철수 씨는 이 제도적 경쟁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계급 및 의견집단의 주도권 탈환을 도와주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지, 민주당과 문재인 씨를 위해 그런 결단을 한 게 아니다.
자신의 지지자들 중 부동층을 설득하는 작업은 며칠 쉬었다가가 아니라, 오늘 월요일(한국시간)부터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안철수의 아름다운 ‘철학’은 ‘공학’에 기초한 과학적인 실천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온전하게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작업을 민주당이나 문재인씨의 반응에 관계없이 후보 사퇴와 동시에 진행해 주기를 기대했었다. 불과 23 일 남은 기간 동안 위대한 실천이 반토막 실천이 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도록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마지막 봉사를 해 주기 바란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당을 포함한 어떤 진보진영의 단위보다도 안철수 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런 글을 남겨본다.
2012 년 11 월 25 일 16:50 (M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