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석정 (퍼온글, 출처 www.kjol.com)
북미사회를 대표하는 문화중 하나인 미식축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라 생각되어 같이 나누고 싶어 퍼왔습니다.
다시 풋볼 씨즌이다. 물론 American Football, 즉 미식축구를 얘기한다. 잘 알려진 대로 football은 미국 밖에서는 모두 싸커(soccer), 즉 축구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만은 ‘미국의 축구’를 의미한다.
월드컾 축구, 올림픽 축구를 비롯해서 각 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경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스포츠팬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미국에서 싸커는 football이라는 제 이름도 찾지 못한 채 미식축구, 야구, 농구, 심지어 하키에도 못 미치는 신세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요즘 야구나 미식축구에 못지 않게 축구를 하면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많다. 야구의 리틀리그처럼 동네마다 꼬마들의 싸커 리그가 많이 있고 축구장도 야구장만큼이나 곳곳에 많이 있다. 부모들은 자녀의 축구시합이 있는 날이면 애들을 경기장에 바래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icebox, 물통, 수건, 의자 등을 가지고 가서 비디오도 찍고 응원도 하는데, 그런 엄마들을 soccer mom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soccer mom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될 정도이니 미국에서도 싸커는 보편화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싸커 마암’은 미국에서 싸커가 다른 운동경기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라면서 한 번쯤 경험하고 심신단련의 과정으로 익히고 배우는 이른바 ‘풀뿌리 운동’으로서의 보편화를 가리킬 뿐이지, 유럽이나 남미처럼 사람들이 만사 제쳐두고 목을 매어 가며 관전과 응원에 힘을 쏟아 붓는 그런 싸커의 열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월드컵축구로 온 세계가 들끓을 때도 매스컴의 스포츠 뉴스 시간에 축구 얘기는 하나도 없고 NBA 농구 결선 얘기만 나오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열등한 상황에 있는 미국 싸커계가 그 수준을 한 층 높이고 팬들의 인기를 끌기 위하여 최근 잉글랜드 출신의 세계적 스타 플레이어인 데이빗 베컴을 영입하기도 했는데 과연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이다.
미국에서 싸커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은 TV의 생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10여 분이 멀다하고 광고를 쏘아대는 미국의 상업 TV로서는 한 번 시작하면 45분간 쉬지 않고 경기하는 싸커를 방영하는 것이 골치 아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 만일 싸커가 대중들의 인기만 있다면 미국의 TV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광고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가령, 농구도 원래 거의 쉬지 않고 하는 경기지만 TV광고를 할 수 있도록 경기를 4 쿼터즈로 나누고 또 중간 중간에 작전 타임 이외에 TV time-out을 두어 광고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미국에서 축구가 관전 스포츠의 하나로서 인기를 끌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아마도 football, 즉 미식축구 때문인 것 같다. 생각건대 미국에서 football이 football이란 이름을 갖고 지금의 인기를 계속하는 한 싸커가 그 수준으로 올라서기는 불가능하리라 짐작된다. 과연 football이 뭐 길래 싸커가 이토록 맥을 못 춘단 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football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특히 football이 미국문화 속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각급 학교의 새 학년이 시작되는 가을 학기가 열리자마자, 즉 8월 하순경부터 시작되는 football 씨즌은 다음 해 1월 하순경까지 약 5 개월에 걸치는데 이 기간 동안 football은 미국에서 겨울 스포츠의 총아로 군림한다. 우선 football은 과격한 운동인데다 여러 가지 장비와 기구가 필요하고, 경기시간이 길고, 많은 선수들과 심판 등 경기요원이 소요되는 아주 ‘비싼’ 경기이다 (이 점이 미국 밖에서 football의 보편화를 막는 큰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football은 한 팀이 일주일에 한 번밖에 시합을 갖지 않고 한 씨즌에 치르는 경기도 12-16 게임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football 씨즌 중에는 먼저 금요일 밤에 미국 전역에서 고등학교 팀들의 football 시합이 열려 동네마다 소란을 피우고, 그 금요일을 지나 토요일이 되면 이번엔 대학 football 시합이 벌어지고, 또 일요일이 되면 프로 football 리그인 NFL의 경기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주말이 온통 football 경기로 뒤덮인다는 말이다.
특히 대학 football과 NFL 경기가 하반기로 접어드는 11월의 Thanksgiving과 12월의 Christmas로 이어지는 미국의 Holiday Season은 football의 열기가 크게 고조되는 시기이다. 좀 과장하면 연말연시에 미국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많이 먹고 football 게임만 보는 일이다. 새해 1월 벽두부터는 대학 football을 결산하는 각종 bowl게임이 펼쳐지는데 Rose Bowl, Sugar Bowl, Orange Bowl, Fiesta Bowl 등 전통 있는 큰 보울 게임은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1월 하순경에는 NFL의 결승전인 Super Bowl이 열린다. ‘쑤퍼 보울’이 열리는 일요일을 Super Sunday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핏자 배달 주문이 가장 많은 날이다.
생각해 보자. 어떤 football을 좋아하는 사람이 football로 이름난 대학에 들어갔는데 4년을 다니는 중에 자기 대학의 football 게임을 다 본다고 해도 약 50게임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 사람이 그 50게임을 다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 씨즌 11-12게임의 정규시합 중에서 반은 자기 학교에서 하지만 나머지 반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상대 학교에서 치르기 때문에 이를 보려면 구태여 쫓아다니면서 봐야 한다.
또 까딱하면 표를 못 구해서 못 보게 된다. 자기 팀의 씨즌 성적이 좋아서 bowl game에 나가게 되면 이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야 될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홈 게임만은 꼭 봐야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자연히 게임마다 만원사례가 되기 쉽다.
또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미국 중서부의 인구가 희박한 작은 농촌 마을에 사는 소박하고 검소한 사람들의 생활을 언뜻 보면 단조롭고 별로 낙이 없을 듯 보인다. 물론 낙이 있다면 football이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근처 대학에서 벌어지는 football 경기를 구경하는 것이 이들에게 큰 낙이자 일종의 축제이다. 평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잘 보지 못하다가 7만, 8만, 10만을 수용하는 커다란 밥주발(bowl)에 꽉 들어찬 관중들만 봐도 그들은 흥분할 수 있다. Marching band, cheer leaders, pom-pon squad(꽃술을 들고 흔드는 여학생들), flaggers와 baton twirlers(깃발이나 버타안을 휘감아 던져 올렸다 받았다 하는 응원단)의 현란한 동작과 소리에 그들은 쉽게 매혹될 수 있다. 게다가 자기 팀이 리드하고 승리할 때 터지는 함성소리...
이렇게 해서 football에 재미를 붙이는 사람들은 일년에 홈구장에서 대 여섯 번밖에 열리지 않는 시합이 늘 기다려지게 된다. 그래서 시합 당일 경기장에 가서 표를 사려다가는 못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아예 일 년 치 표를 미리 사놓게 된다. 미국에는 이렇게 football 경기의 일 년 치 표를 몽땅 사두는 season ticket holder들이 많이 있다. 이 열성 팬들이 반복해서 season ticket을 구입하다 보면 매년 season ticket을 우선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특권이 생기는데 이 우선특권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기도 한다.
많은 열성 팬들이 자기 학교(많은 경우 자기 모교)의 football 경기를 쫓아다니며 구경하는데,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들은 핔업트럭이나 스테이션왜건(요즘에는 SUV나 밴)에 음식을 싣고 일찌감치 경기장으로 향한다. 경기장에 도착하면 요기도 할 겸 먼 거리를 달려 온 피곤도 풀 겸 주변의 주차장 같은 곳에서 준비해 온 음식과 함께 맥주도 마시면서 경기 전 ‘앞풀이 파티’를 벌인다. 이를 tailgate party라고 하는데 트럭이나 왜건 뒤의 tailgate(짐 싣는 문)을 밖으로 잡아 당겨 평평하게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음식들을 올려놓고 벌이는 파티라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미국에서 football이 싸커보다 인기 있다는 말은 결국 미국인들은 싸커 경기의 속성보다 football의 속성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싸커 팬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싸커가 재미있는 경기라고 주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football 팬들은 football이 재미있는 경기라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상대방이 수긍하고 동의하건 말건). 예컨대, 단체경기이면서도 개인이 돋보이는 football, 규칙도 없는 것처럼 과격하게 보이지만 오히려 그 어떤 경기보다도 복잡하면서도 세밀한 규칙이 적용되는 football, 싸커처럼 긴박감이 급히 왔다 급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 동안 지속되는 football, 매 번 공격할 때마다 치밀한 작전이 요구되는 football, 등등.
무슨 일에서나 감성의 자극과 아울러 이성적, 합리적 사고의 기능을 곁들일 때 큰 흥미를 느끼는 미국인들로서는, 누구의 머리에 맞거나 발에 걸릴지도 모르는 채 공을 뻥 차고는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니기만(?) 하는 싸커에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반면에 경기의 순간 순간마다 전략을 펼칠 수 있는 football에서는 보는 사람이 스스로 코우치가 되어 실제 경기 상황에 자신의 전략을 맞춰 보면서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 생각건대 싸커에 대응하여 football이 갖는 이러한 속성은 그동안 누차 지적해 온 미국문화가 담고 있는 철학, 가치관, 생리와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그들의 진취적, 모험적 기상을 나타내는 지구상 최후의 경기라고 자랑하는 football은 가히 미국의 문화와 전통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니 우리 중에 football 경기장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격 기회를 잡은 팀은 4번을 시도하여 최소한 10야드를 진격해야 한다”는 football 규칙은 이 사회에서 기본 상식에 속하는 일이므로 이를 모르면 곤란하다. 혹시 그런 것은 우리가 주류사회로 진출하여 성공하고 기여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여기서 누가 Are you a football fan?이라고 하면 축구 팬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football(미식축구) 팬이냐고 묻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