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월야(蕭寥月夜) / 황진이(黃眞伊) 簫寥月夜思何事 소슬한 달밤에 그대 무슨 생각하시오는지 소요월야사하사 寢宵轉轉夢似樣 뒤채는 잠자리는 꿈인 듯 생시인 듯 침소전전몽사양 問君有時錄妾言 님이시여, 제가 드린 말씀도 기억하시는지 문군유시녹첩언 此世緣分果信良 이승에서 맺은 연분 믿어도 좋을까요 차세연분과신량 悠悠憶君疑未盡 멀리 계신 님 생각은 끝없어도 모자란 듯 유유억군의미진 日日念我幾許量 하루 하루 이 몸을 그리워하시나요 일일염아기허량 忙中要顧煩惑喜 바쁠 때 생각해도 그리움일까, 괴로움일까 망중요고번혹희 喧喧如雀情如常 (제가)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훤훤여작정여상
조선 중기(中期) 여류 시인
---------------------------
<서니의 한 생각>
가슴 깊은 곳에서 절실함으로 솟아난 지순(至純)한 그리움에 감상(鑑賞)이랍시며, 그 무슨 말을 구구히 덧붙일까? 朝鮮時代의 엄격한 신분제도 아래, 사람 취급도 못받던 비천한 기녀(妓女)로서 조선시조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주옥 같은 시편들을 남긴 그녀가 진정 존경스럽다 (신사임당申師任堂 같은 양반 계급이 아니라서 더욱, 더) - 희선, <사족이라 할까> 그간 황진이를 소재로 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두고 말하자면, 영화감독이나 PD가 지닌 그 제작의식製作意識의 無知함이 실로 놀랍다고 할까요 (그저 그렇고 그런, 에로물의 시각) 황진이의 출신이 비록 천민신분인 기녀라고는 하나, 당시의 남성(소위, 양반)위주 사회상을 볼 때 한 여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각한 바탕 위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갔단 일 자체가 예사 일은 아니란 느낌 하지만 심지어, 오늘 날에도 황진이를 그저 노류장화路柳墻花 정도로 생각하는 識者들도 상당수 있으니.. (참, 대단한 식자층이라 할 수 있겠어요) 그녀가 남긴 작품들 (몇편 되지는 않지만) 은 오늘에 내 놔도, 예술적 차원에서 결코 손색이 없죠 더욱이, 그녀가 문학을 통해 부각浮刻하려 했던 에토스 ethos적 인간상, 즉 <실존적 여인상>을 부각하려했던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할 겁니다 * 소개한 소요월하에 관하여.. 황진이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 소세양蘇世讓을 그리는 애타는 마음을 글로 적어서 한양漢陽에 있는 그에게 보냈던 漢詩 편지... 소세양은 성종, 중종, 명종 3조대를 거친 진주 사람으로 형조, 호조를 거쳐 이조판서 우찬성右贊成까지 역임했던 사람으로 송설체松雪體의 대가였고, 문장에서도 뛰어난 사람이었다죠 어쨌던, 그들은 송도에서 꿈 같은 한달을 함께 보내고 헤어졌는데... 소세양과 헤어진 후에도 황진이는 그리움에 찬 나날들을 보냈다고 해요 그들은 헤어진 뒤에도 인편을 통해서 오랫동안 서찰을 주고 받았다고 하는데, 그때의 서찰들 중에서 유일唯一하게 남겨진 하나가 바로 이 '소요월야'이죠 - 유실遺失된 황진이의 편지들이 넘, 아쉽다는.. (타임머신 타고가서 찾고 싶네요) 시에서 읽혀지듯이... 정말, 지순至純한 그리움의 절창絶唱인 것 같습니다 기생이란 비천한 신분으로 살았던 황진이였지만,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그처럼 티 없이 깨끗하고 맑은 영혼의 것이었군요 그녀의 '소요월야'에서 보듯이, 예나 지금이나... 詩라는 것은 빼어난 기교나 언어방정식 같은 복잡한 시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음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김경주 시인의 내실內實있는 방정식은 제외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절실함으로 농익은 언어일 때... 비로소, 살아있는 영혼의 시 한 편으로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서는 건 아닐지.
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