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폴레옹에게 살인죄를 물었던가?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1821, 11. 11~ 1881, 2, 9) 의《죄와 벌》의 줄거리는 이렇다. 배경은 제정 러시아 말기. 농노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무작정 올라와 굶다시피 생활하는 빈곤층이 등장하는 1860년대 무렵이다.
병적일 정도로 이성적이며 사색적인 법과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사람은 비범한 인간과 보통사람으로 되어 있으며, 비범한 인간은 ‘정의’라는 이름아래 제도화된 법과 체제를 무시하고 행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보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이익을 부당하게 착취하는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우연하게 현장에서 마주친 그의 여동생 리자베따을 살해한다. 범죄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는 심적 고통의 나락에서만이 감해질 수 있는 것인가. 이 소설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 데, 이 살인사건의 과정은 1부로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 5부는 라스꼴리니코프가 심리적 벌을 받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예심판사 포르삐리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인과 비범인이 있다는 논문을 읽고 그가 살인범이라고 생각하고 압박한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심리적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이때 창녀인 소냐를 만나 그에게 범죄를 고백하고 자수를 권유받아 결국 형을 받는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시베리에서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옥바라지를 하며 함께 했고, 그곳에서 소냐의 사랑과 희생으로 구원받는다.
시대는 사상을 낳는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을 쓰던 1865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아내와 믿고 의지하던 형이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간질 발작도 더 심해졌다. 거액의 부채로 악전고투하던 그는 발행하던 잡지도 폐간하고, 도망치듯 독일로 가, 도박을 하며 심신을 달랬으며 그나마 있던 돈도 다 날렸다. 그는 당시 궁핍하여 전당포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신세가 되었다. 《죄와 벌》의 전당포 노파 살해 장면도 그때 착상했다고 한다.
당시는 러시아에 사회의 불의를 시정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허무주의적인 초인사상이 유행했던 시기였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런 사상 소유자이다. 이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삶에게 해를 끼치는 노파가 있어. 그 노파는 자기가 왜 사는지 몰라.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돼. 그런데 도움을 받지 못하면 좌절하고 말 젊은이가 있어. 그 사람은 그 돈이 자기 손에 있다면 그 돈으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을 올바르게 가도록 인도하고, 가난한 삶들을 도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계획을 세웠단 말이야. 그 청년이 노파를 죽였다고 해봐. 작은 범죄 하나로 수천가지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그 청년의 잘못인가?”
라스콜리니코프는 생각한다. “누가 나폴레옹에게 살인죄를 물었던가? 나폴레옹은 사상 최대의 살인자인데도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존경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보통사람처럼 범행직후부터 양심의 가책으로 갈등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고민과 가책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이다. 아마 이것은 논리적 의지와 인간내부에 나오는 선이라는 정신적 의지 사이의 충돌에서 생기는 투쟁이다. 이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가고 결국 자신은 무가치한 범인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비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노파를 죽인 것은 자신의 논리적 의지가 아니라 악마의 짓이었다고 말한다. 악을 대표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리적 의지가 선의 상징인 소냐의 기독교적 가치 앞에서 굴복한 것이다.
또 다른 악은 두냐가 가정교사로 일했던 집의 가장인 스비드리가일로프이다. 이 사람은 오로지 개인의 욕망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호색한이다. 라스콜리니코프와 목적은 다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만이 내면에 깔려있다. 자기부인을 살해하고, 하인을 학대하여 죽게 하고, 14살 어린 소녀를 능욕하여 자살하게 한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에게 돈을 기부하거나 소냐의 집을 돕기도 한다. 순전히 환심용이다.
그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달리 내면의 고통과 갈등은 없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소냐에게 고백한 것을 듣고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를 협박했지만 그의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자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절망한 나머지 권총으로 자살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논리와 이지(理智)의 세계라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악마적 행동과 정열의 세계이다. 라스콜리니코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 둘 다 자신이 신봉하는 원리 때문에 파멸했다. 전자는 정신적인 자살행위이고 후자는 육체적인 자살이다. 이에 대비 되어 신의 상징이며 기독교 가치를 지닌 소냐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개인의 자유는 어떠한 외부의 힘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다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고집했다.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수단이 나쁘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1849년, 도스토예프스키는 급진적 사회주의 경향을 띤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명으로 28세에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 집행은 극적으로 취소되었으나,이후 4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다시 4년 동안을 시베리아에서 노역을 했다. 감옥 생활 중에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책은 ‘성경’이었다. 이 시절을 보낸 후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야말로 신과 구원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한 온순한 순종을 하였으며 그의 논리적인 초인 철학도 신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