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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795 작성일 2008-11-06 20:17 조회수 1436
경제학자들이 침묵하니 돌들이 소리치는 형국입니다. 왜 경제학자들이 말을 아낄까요. 혹시 우리 생애에 듣도 보도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에 그들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개뿔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그들이 예측 가능한 데이터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가공할 시나리오들뿐이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무서워해야 할 것은 공포 그 자체다라는 루즈벨트의 말이 그들의 들썩이는 입을 다물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 오만 방자한 미국의 GM이 드디어 오바마 당선자에게 무릎을 끓고 ‘한 푼 만 도와달라’고 손을 벌렸습니다. “We don’t have much time”(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말 입니다. 크라이슬러는 지배주주회사인 다임러가 손을 털 준비를 하고 있고, 포드의 파산은 시간 문제입니다. 미국 최대의 investment banks인 골드만삭스와 JP Morgan마저 위험하다는 소문은 이미 몇 주전부터 파다했습니다. 세계최대의 보험회사인 AIG는 무려 850 억 달러를 긴급 수혈 받고도 또 다시 중환자실에서 ‘Code Blue’(심장마비가 발생했을 때 간호사가 누르는 비상벨) 소리가 요란합니다.

  

세계 전 지역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불과 수 주 사이에 수 십조 달러가 허공에 날아갔고, 날아가는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도 이를 보정할 유효수요를 창출할 나라도 없고 방법도 없다는 게 전 세계를 공포와 패닉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정부의 보증아래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증발해서 메울 수 있는 액수는 연간 수 천억 달러 정도이지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의견입니다.

  

모기지 파생상품들이 부동산 시장에 끊임없는 버블을 창출해내고 있을 때, 불과 수 년 안에 이런 사태가 오고야 말리라는 일부 학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배를 잘못 몰아 밑창에 구멍을 낸 넘은 미국인데 꼴 난 기축통화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마 가장 나중에야 빠져 죽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해서 수출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한국 같은 나라입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내년 중반부터 전 세계적인 대량 실업사태(아직 아무도 그 규모를 예측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가 시작되고 국가간 교역량이 급감하리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바마는 취임하자마자 자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강도 보호무역주의로 방향을 잡을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석유, 곡물, 원목, 광물 등 원자재 수출국들 역시 식량과 원자재를 무기화할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OECD 국가들이 비슷한 정책을 펼 것 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OECD국가들은 다만 생필품에 한해서는 자국의 저렴한 생활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예외를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이 생필품 수출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변화의 파고속에서 심각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은 엄청난 설비투자가 들어간 자동차, IT, 조선, 기타 중공업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산업들은 대공황기에는 가장 심각한 직격탄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암담한 이야기지만 사실입니다.

  

  

IMF야 본질이 외환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니 외환만 확보하면 경기회복이 가능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OECD 국가들의 경기가 좋았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고환율에 물타기해서 수출이 순조로웠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외환을 확보하고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멀쩡한 기업이 해외투기자본에 팔려나가기도 했지만 불필요해진 설비를 매각해서 달러를 확보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누구도 한국의 불필요해 진 생산설비를 사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너도 나도 돈을 털린 마당에 지갑을 열 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교역길이 막힌 고단위 생산자본을 누가 인수할 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규제 완화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깨진 독에 물 퍼내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안쓰럽습니다. (오늘은 강부자 정책 비판하려고 꺼내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한가하게 강부자 정책 비판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강만수 팀은 세계 교역시스템의 붕괴야 어찌되던 그건 내년 문제고, 당장 시중은행들의 파산을 결사적으로 막기 위해 부동산 자산가치가 한 순간에 붕괴되는 것을 막아 보려고 규제완화를 밀어 부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재경부 관리들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비율이 40-60 % 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직 안전하다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하지만, 이걸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이 반쯤 나간 얼굴로 허둥지둥하면서 아무 일 없을 거라니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소득대비 부동산 버블비율이 미국의 4-5 배가 넘는 상황에서 담보비율이라는 게 아무 의미도 없을 뿐 만 아니라 무엇보다 대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해외 단기채를 끌어다 썼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환율이 지랄방정인 것은 세계 곳곳에서 너도 나도 달러를 챙기려고 혈안이 돼서 날뛰는 마당에 한국 시중은행들이 짊어지고 있는 단기채에 대한 불안감도 큰 작용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한국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없는 소리를 지어내겠습니까?      

  

‘깨진 독에 물 퍼 내기’건 ‘하루 뒤에 망할 세상에서 사과나무를 심는 일’이건, 강만수 팀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건 순전히 시간을 벌기 위한 사기극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경제에 문외한인 저 같은 사람도 내년에 세계무역의 급감으로 한국의 모든 자산가치가 어느 순간 붕괴하리라는 것을 불을 보듯 예상하고 있는데 ‘내가 경제는 좀 안다’는 대통령 밑에서 일하는 졸개들이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한국의 경우 부동산 가치의 붕괴는 은행파산으로 이어질 것이므로 현재로서는 그들이 강부자 정책을 쓰건 여운계정책을 쓰건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집값이 반 토막 난 곳이 허다 합니다. OECD 국가 지역 중 아직까지는 그래도 가장 나은 편인 캐나다 알버타 주의 캘거리 시 의 주택가격도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0 % 이상이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의지의 대한민국은 아직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한국의 부동산 자산가치는 거품이던 어쨌던 대한민국 중산층의 자존심 같은 것입니다. 그 자존심이 지금 눈물과 한을 품고 악으로 버티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려는 집값을 움켜쥐고 있는 처참한 형국입니다. 한국에 딱 일 주일 있으면서 그걸 느꼈습니다. 이런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소용없는 일일 것 입니다. 아마 악으로 깡으로 그리고 지난 40 년 세월이 응축된 눈물과 한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몇 달 안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먼저 익사하느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캐나다건 EU 건 일본이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전대미문의 시련에서 비껴갈 수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We should stay on the ship as long as possible”

  

(-구조될 때까지-가능한 한 오래 이 배에 남아 있어야 해요: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Jack이 Rose에게 한 말)

  

깜깜한 밤바다의 차가운 물 속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세계금융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배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얼마의 세월이 걸릴지 모르지만 모두 어금니를 악물고 살아남아서 옛말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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