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빠지게 불린 콩알들
뚫린 시루에 주르르 붓고
검은 보자기 덮는다
콩알 자존심 상한다
자라목처럼 안주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슬픈 습관을 두드려 부수느라
퍼부어지는 물줄기 돌풍, 돌풍
세상 밖에서는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데
콩알 속
허물어져야 할 일
허물어지는 일만 남는다
저리 깐깐한 침묵을 버틴
콩 껍질을 후딱 날리는 모자처럼 들고
검은 보자기 씌운 막막함을 대못같이 밀어올리고
사랑은 눈부시게 노오란 해를 한 덩이씩 이고 나올 날
그대 속에도 잠재해 있을 저 힘
기다리느라 나는 질겨지고 있다
<시인의 말>
사랑에 닿고 싶어, 나에게 이르고 싶어 시의 기슭을 빙빙 도는 나에게 시는 시를 버리라고 말한다. 한결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돌려 받는 비밀이 그 말에 있을 줄 알아도 나는 딴청하며 나무 한 채 활활 태울 시의 불씨 있는가 하고 저녁을 뒤적인다. 어딘가에서 분명 시작했던 어스름이 빠르게 나를 덮어가고 있는데, 나는 시를 떠나지 못하고 시들을 등 떠밀어 보낸다.
정영선 시인
부산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으며,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
<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가 있다.
<감상, 그리고 한 생각>
시인이 자신의 심경을 말했으므로, 굳이 뭐라 더 사족을 달 건 없겠지만.
(그래두) 내 나름의 각도에서 한 생각 펼쳐보자면...
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에서 보여 주고 있는,
허물어졌다가 다시 솟아나는 저 생명력은 단순히 물에 불린 콩과 시루 그리고 깐깐한 침묵만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