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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의미는 성스러운 순결함의 탄생을 축하함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8628 작성일 2015-12-02 09:07 조회수 1838

2000년 전의 첫 번째 성탄절 이야기의 의미는 성스러운 순결함의 탄생이다. 나는 기독교 신화를 21세기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로 재해석한다. 성서의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예수가 죽은 후 약 70년이 지난 후에 마태복음서 저자가 처음으로 기록했다.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은 아기 예수 탄생의 이야기를 하늘에서 하느님이 땅으로 내려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성서에 기록된 첫 번째 성탄절 이야기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서의 재해석은 북미의 주류 기독교계에서 보편적인 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성서를 신중하게 읽으면 성탄절 이야기는 한 가지가 아니라 적어도 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신약 성서의 마태, 누가, 요한 복음서들에 기록된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첫 번째 성탄절의 이야기들의 핵심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인하여 거짓과 폭력과 착취와 탄압으로 절망 가운데 암흑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세상에 성스러운 순결함’(Sacred Innocence)이 탄생한 것 다시 말해 하느님이 함께 있다는 확신을 축하하는 것이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부터 기독교는 서방 세계의 문화를 장악하고 첫 번째 성탄절 이야기들의 원초적인 메시지를 숨기고 하나의 교리적인 이야기로 왜곡했다. 첫 번째 성탄절 이야기들은 동화처럼 읽거나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있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이야기들을 처음 기록한 사람들은 뜻깊은 메시지를 전하려고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성탄절에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벌리고 그렇게도 기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스러운 순결함의 탄생은 길잃고 절망 속에서 헤메는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 에스겔은 이렇게 말했다. “주 야훼가 말한다...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 보고 내가 돌보리라...헤매는 것은 찾아 내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 오리라. 상처입은 것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힘 나도록 잘 먹여 주고 기름지고 튼튼한 것은 지켜 주겠다...“(에스겔 34:11-16) 고대의 예언자가 길잃고 헤메는 98%의 민중을 향하여 희망을 주고 있는 힘있는 목소리를 듣는다. 에스겔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 586년에 바벨론제국으로 유배당한 유대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유배당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선포했다. 에스겔이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귀를 기울인 하느님의 음성은 하느님은 사람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고 살아있는 생명 속에 영원히 함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은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모든 인간들을 조건없이 사랑하고 위로를 베풀며, 비단 인간들이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항상 영원히 그들과 함께 있다는 희망의 확신이다. 포로의 신분으로 어떤 종류에든 희망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극복하기 어려운 혹독한 포로 생활 속에서 에스겔이 자신을 포함한 다른 포로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희망에 대해서 목숨을 내걸고 용감하게 선언한 말은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도 큰 힘과 도전이 된다.

 

에스겔 시대로부터 약 600년이 흘러간 후,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에 민족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에 관해서 기록했다. 마태는 로마제국의 탄압과 착취 속에서 마태 자신과 공동체가 겪은 체험을 묘사하면서 에스겔의 중심사상을 이어갔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하느님의 정의대로 먹어라. (마태 25:31-46) 다시 말해, 만일에 사람들이 하느님의 정의대로먹고 살아가고 있다면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게 될 것이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마실 것을 줄 것이고, 나그네들을 대접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찾아보고, 헐벗은 사람들을 입히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생명의 중심인 하느님의 정의가 회복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소유하고 있는 재산과 명성과 권력을 보호해 주는 법에 의존하는 정의가 아니라, 7년 마다 모든 빚을 탕감해주며 50년 마다 땅의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공정한 분배의 정의’(Equity)를 말한다. 이것은 사회정의의 제도적인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이다. 인류가 하느님의 정의대로 먹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성공은 개인의 황금만능주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하느님의 법이다.

 

마태의 예수는 이 하느님의 법을 민족들의 최후의 심판의 기준으로 선포했다. 민족들의 최후의 심판이란 교리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분리하여 천당지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정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에 경고하고 있다. 오늘 현대 사회도 웰빙의 의미를 다분히 왜곡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은 많은 돈과 좋은 건강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개인의 재산으로 더 좋은 의료 교육 사회보장 서비스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피땀흘려 번 돈은 하느님의 축복이니 내 멋대로 써도 된다는 잘못된 신앙관과 가치관이 교회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소위 기독교 국가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상위 2%의 고소득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정책으로 98%의 저소득층에게 공정한 분배를 실시하려고 하지만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이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캐나다의 새로운 정부는 하느님의 정의, 하느님의 법을 실천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예수의 메세지는 오늘 현대 사회와 관련된 메세지이며 일찌기 첫 세기에 마태의 사회와 그보다 500년 전 에스겔의 사회와 인류 역사를 통한 모든 사회와 관련된 메세지이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정의대로 먹고 살아가기를 요청했다. 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은 일 년에 한번이 아니라, 매일매일 순간순간 축하해야 한다. ‘성스러운 순결함의 탄생인 성탄절은 사랑과 평화와 함께 아파함이 변함없이 탄생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순결함의 탄생은 과거에 한번 있었던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공정한 분배의 정의가 사람들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과정이다. 예수의 탄생의 의미는 일년에 한번있는 축제에 있지 않다. 그의 탄생은 모든 생명이 간직하고 있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끊임없이 축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너희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생명의 중심에 하느님이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고 예수는 도전했다.

 

성탄절은 오고 있거나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성탄절은 지금 이 세상에서 순간순간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매일매일 성탄절을 축하하는 사람들이다. 성탄절이 지금 여기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매일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의 공정한 분배의 정의대로 먹고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그것을 축하할 기회가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 하느님의 사랑이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 (참고: 마커스 보그/존 도미닉 크로산, 첫 번째 크리스마스’,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 존 도미닉 크로산, 예수는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연구소 (1998); 로버트 펑크, 예수에게 솔직히,’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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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5-12-0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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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내사랑아프리카  |  2015-12-0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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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법정 공휴일이니까 본인의 소감을 당연히 표명할 수 있다고 보구요. 한국에는 석탄절이 있는데 나중에는 라마단도 공휴일로 정하자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십년 후면 성탄절이나 석탄절도 없애자는 주장이 나오고 또 사라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무신론자도 석탄절의 의미를 당연히 말할 자격이 있고 성탄절 무용론을 주장해도 된다고 보구요. 늘봄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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