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앵무와의 동거 / 허영숙
자정의 초침 사이를 성큼 건너가는 달
현악기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는 하루에 지친 잠은
달보다 무거운가, 제자리에서 겉돈다
지인이 떠 안기듯 주고 간 모란앵무가 횃대를 시끄럽게 긁고있다
바닥에 한 마리가 죽어있다
암컷이 수컷을 물어 죽였다
부리에 찢겨 사족처럼 버려진 깃털
새를 꺼낸다
죽음을 증명하듯 차가운 내장이 아래로 불룩하게 쳐진다
몸 속 장기의 무게를 팽팽하게 견디고 있던
들숨을 놓아버린 새는 무거웠다
가벼운 깃털로 땅의 힘을 어떻게 견디며 이 몸을 공중에 띄웠을까
바람을 가르기 위해 내부의 길이란 길을
죄다 움켜쥐어야 했던 치열한 날갯짓에 조문을 하며
무화과나무 아래 새를 묻는다
팽팽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구나
죽은 새가 가진 몇 그램의 무게가 손바닥에서 나를 깨운다
그믐달이 가지에 조등으로 걸린다
경북 포항 출생
釜山女大 졸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시집, <바코드 2010> 等
2016 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금 대상자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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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죽음'을 통해서 '삶'을 認識하는 방식은
마치 어둠을 통해서 빛을 眺望하는 것과 같다 할까
한 마리의 앵무새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앵무새가 지녔던 삶의 흔적과 죽음 후에 남겨진 무거운 허무감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지닌 <내면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省察이 엿보인다
과연, 우리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삶은 얼마만큼의
팽팽한 張力을 지닌 영혼의 몸짓인 것인지...
어쩌면, 우리네 삶의 몸짓은
앵무새가 지녔던 가벼운 깃털의 몸짓만도 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疑懼의 시선마저 가져보는데
사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잘 것 없는 앵무새의 깃털조차도
중력의 힘을 이기는 치열한 魂이 깃들어 있는 것을..
그런 앵무새의 주검에서 현재의 삶에 대한 覺醒을 모색하는,
차분한 詩的 전개가 깊은 느낌으로 가슴에 자리한다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