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pa/ Paul Anka
북미 팝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인 폴 앵카(Paul Anka·65). ‘다이아나 ’, ‘유 아 마이 데스티니’, ‘퍼피 러브’ 등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그 멜로디를 익숙하게 여기는 그의 명곡들이다. 50년대 아이돌 스타로 화려하게 음악계에 입문한 뒤 125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15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그는 지금도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로 빛나는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제가 성공했다면, 그건 음악과 노래에 온 정신과 노력을 집중해 살아왔기 때문이죠. 열정과 사랑을 남김없이 노래에 쏟아 부었고 후회 없이 열심히 해왔습니다.” 그는 “나 자신을 최고의 팝 스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항상 노력할 뿐”이라면서도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나트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가수라고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1941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난 폴 앵카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차고 넘쳤지만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 부닥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14세 때 가족들 몰래 아버지 차를 몰고 나가 아마추어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는 등 자신의 꿈을 위한 정진을 계속했다. 그는 “16세 때는 이미 노래를 평생의 업(業)으로 삼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그의 히트곡 ‘다이애나’는 알고 보니 그의 청소년 시절 아련한 추억의 한 장면이었다. 자신의 동생을 돌보던 보모를 흠모한 끝에 작곡한 노래였다고 한다. “내가 15세 때, 그 보모는 18세였어요. 이름은 다이애나였죠. 사랑을 느꼈지만 나이 차이가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당시에는 달랐거든요. 동생들을 보살펴주는 그녀의 평온한 얼굴은 너무 예뻤고 사랑스러웠어요.” ‘아이돌 팝 스타’의 원조로 꼽히는 그는 10대 시절 일찌감치 수퍼스타로 뜬 비결에 대해 “타이밍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천편일률적 팝 스타일과 정반대로 내 노래는 에너지가 넘쳤는데, 이게 팬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평생 승승장구하며 살아온 것 같지만 그에게도 고통의 시간은 있었다. 폴 앵카는 “비틀스의 등장과 함께 하드록이 득세하면서 내 스타일의 음악이 외면받기 시작할 때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내 열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정직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분석해 위기를 이겨냈어요.” 그는 요즘의 아이돌 팝 스타들에 대해 “섹시하고 멋있지만 노래의 정수(精髓)에 충실한 것 같지는 않다”고 한마디 했다. “요즘은 (녹음)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진실한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죠. 물론 여전히 노래 잘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걱정스러울 정도로 못하는 친구도 있어요. 미국 팝 음악계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진짜 음악(real music)을 해야 합니다.” 그가 여전히 열정을 뿜어내는 것은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관리한 덕택이기도 하다. 그는 “일주일에 다섯 번, 1시간 이상씩 웨이트 트레이닝과 걷기를 한다”며 “술, 담배도 안 하고 육식도 가급적 피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