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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남편

작성자 어진이 게시물번호 16833 작성일 2023-03-08 14:33 조회수 5558

아들과 남편   2003-7-3
  
누구였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오래 전에 어느 수필가가 쓴 수필 중에 “닭똥집이 두개라면…” 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분의 불만은 하나밖에 없는 닭똥집이 항상 자기의 몫이었는데 아들이 생기고 나서 어느때부터인가 고놈의 닭똥집이 아들의 몫이 되었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닭다리처럼 똥집이 두개라면 섭섭함이 좀 덜 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요즘 그 수필가가 느꼈던 섭섭함을 난 가끔 느낀다.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저희들도 할일이 바쁘니까 함께 모여서 저녁을 먹을 기회도 점점 적어졌다. 아내는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오면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지 많이 피곤해 하곤했다.

어느 날, 식탁의자에 맥없이 털석 주져 앉더니 아내가 말했다.
“
여보, 미안해. 오늘은 아무거나 간단히 먹어요”
“
그래, 난 아무래도 괜찮아”
“
여보, 김치하고 무말랭이 무친 것 좀 꺼내와요”
“
알았어”
“
여보, 밥 좀 퍼와요”
“OK”
아내는 한참 정신없이 밥을 먹다가
“
여보, 물 좀 줄레요?”
“
아이구! 내가 물을 안 줬어? 기다려”
“
여보, 나 밥 좀 더 먹어도 돼요?”
“
그럼~ 더 퍼다 줘?”
“
네~”

‘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맥을 못출까’ 아내가 애처러웠다.’ 아이들 기르느라고 고생하고, 아이들 대학 보내느라고 지난 10년간 세탁소에서 때묻은 옷들과 씨름하는 아내를 보면 고맙기도하고 안쓰럽기도했다.
‘
에이구! 나라도 잘 해주어야지…’

“
아! 잘 먹었다”
“
김치하고 무말랭이해서 잘 먹을게 뭐있어?”
“
아냐요, 정말 잘 먹었어요”
“
이럴 줄 알았으면 회덥밥 사줄걸…” 아내는 회덥밥을 참 좋아했다. 돈 안드는데 무슨 말을 못하랴! 아내가 약간 감동먹는 눈치였다.
“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How about coffee?”
“
끓여 주면 좋고용!”
“
알았어”
‘
오늘은 어리광이 좀 심하군!’ 나도 하루종일 일했는데… 회사에서 세탁소에서…
‘
에라! 해 주는 김에 화끈하게 해주자!’
아내는 coffee가 될때까지 넋놓고 앉아 있었다.

아내가 막 coffee잔을 집어드는데 큰 아들이 들어왔다.
“Hi
엄마, 아빠”
“
어디갔다 이제 오니?”
“
회사에서 좀 바빴어요”
“
저녁 먹었니?” 여지껏 맥놓고 앉아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
아직 못 먹었어요”
“15
분만 기다려!” 아내의 눈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난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 저것 꺼내고 oven에 불을켰다. 채소를 써는 칼소리가 경쾌했다. 지지고 복고 끓이고… 순식간에 부엌에는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
이 여자가 조금 전까지 축처져서 “반찬 꺼내와라, 밥 퍼와라, 물 떠와라”하던 여자 맞어?’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
어디서 저런 힘이 솟아 날까!’

정말 15분 후에 그럴듯한 요리가 준비되었고 무럭무럭 김이 나는 막 해낸 음식들이 먹음직스러웠다.
“
진아, 다 됐다! 빨리 내려와!” 아내가 윗층에 대고 소리쳤다.
‘
야! 정말 너무하다!’ 어디서 저런 힘찬 목소리가 나올까!’
“
음~~~ 맛있겠다. Thanks mom!”
“
많이 먹어” 맛있게 먹는 큰 아들을 대견한듯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
‘
아! 저게 모성이구나!’
“
여보, 당신도 좀 잡술레요?”
“
어이구, 일찍도 물어 보시네용! 아들 줄려고 한 음식을 내가 왜 축냅니깡, 싸모님”
“
아이구, 삐지긴…”

“
우리집엔 아들이 셋이니…, 닭똥집이 네개는 돼야 겨우 내차례가 되겠군!” 혼자 중얼거렸다.
“
당신 뭐라구 그랬어요?”
“
아니, 암 말도 않했어”
‘
하기사, 닭똥집이 다섯개는 돼야, 아내한테 차례가 갈테니… 난 불평할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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