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드림 캐나다 앨버타주 1등 신문

라이프

자유게시판

백수일기 2) 아내의 다리가 또다시 부러졌다

작성자 떠돌이 게시물번호 19270 작성일 2025-10-14 15:23 조회수 249

 

한국에서 산에 다닐 때 아내의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 지리산 산장에서 하루 자고 백무동 다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산세를 뒤돌아보다가 길 위에 얼어붙은 살얼음에 쭉 미끄러지면서 왼쪽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도 산속이 아니라 거의 다 내려와 부러져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지난 8월 아내는 또 발을 부러뜨려 먹었다. 이번엔 아예 등산화를 신기도 전에 부러졌다. 밴프의 투잭 레이크 가기 전 바로 못 미쳐 호수변을 산책하다가, 아마도 프레리도그가 만들어 놓은 굴속에 오른쪽 발이 빠지면서 부러졌다. 그래도 산 위가 아니라 산 밑에서 부러져서 참으로 다행이다. 하마터면 산꼭대기에서 헬리콥터 부를 뻔했다.

 

계획된 등산과 캠핑을 포기하고 풋힐 병원 응급실로 갔다. 그곳은 내가 예전에 담석에 의한 급성 담낭염으로, 격통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데굴데굴 굴렀던 곳이다. 잠시 뒤 트리아지 간호사와 만났다. 간호사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재 얼마나 아픈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생글생글 웃으며, “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 했다. 나는 황급히 간호사에게, “아냐, 아파서 한 발짝도 못 걸어.” 라고 호소했다.

 

아내는 고통에 대한 내성이 엄청나다. 아기를 낳을 때 10시간이 넘게 산통을 겪었는데 소파 수술과 무통 주사를 거부하며 결국 자연분만을 해냈다. 의사가 아내를 검진할 때마다 “괜찮아요? 지금 많이 아플 텐데, 이상하네” 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그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은 탈이 나서 신생아는 퇴원할 수 있지만 아내는 좀 더 입원할 것을 권유받게 되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흥,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이라는 듯이 퇴원해 버렸다. 그래서 그 응급실 대기실에서 내가 예전에 데굴데굴 굴렀던 생각이 나서 열등감 속에 괜히 등짝에 진땀이 났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상황판을 보니 대충 다섯 시간 반 정도 대기가 필요했다. 2시간 반 정도 후에 아내는 응급실로 들어갔고,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진료실에서 아내는 또 2시간 정도 의사를 기다렸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진료실 간호사가 무척 불친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엑스레이 촬영 결과 진짜 골절로 드러나면서 갑자기 친절하기 그지 없는 간호사로 돌변했단다. 그러게 병원에서는 아픈 걸 좀 엄살 떨 필요가 있다니깐 말이지!

 

한국에서의 골절은 부정형이라서 수술을 받았었다. 그리고 2주 넘게 입원했었다. 나는 퇴근하고 매일 아내의 병실을 방문했는데 어느 날 의료보험공단 직원으로부터 취조를 받게 되었다. 아내의 골절이 혹시 가정폭력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 받았던 것이다. 가정폭력에 의한 부상은 의료보험의 보장 범위가 아니란다.

 

캐나다에서의 골절은 다행히도 아주 예쁜 것이었다. 그래서 의사는 아내에게 에어부츠와 목발 한 쌍을 처방했다. 아내는 옛날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석고 깁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참 별거에 다 기뻐한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내를 침대에 올려놓고 돌아서는데 아내가 “나 밥해줘” 했다. 아내는 침대 위에서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활짝 웃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꼬마 악마 같았다.

 

침실 방문으로 닫고 나가며, 사실 나도 속으로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최소 6주간 아내의 사육으로부터 벗어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더불어 이제 거꾸로 아내를 사육할 시간이다. 으흐흐, 으히히히…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