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흐린 날의 기억
안희선
문득, 시야(視野)의 포로가 된 눈이 답답해
안경을 벗었다.
이윽고 흐려지는 육신의 촛점.
생각없이 보고 스쳐 지나간 것들이 한꺼번에 다가선다.
흐린 세상 안에서 또렷해지는 또 다른 세상.
빛의 굴절에 시달렸던 고요한 평화가 내가 무심코 버리고 온 하늘과 땅에 가득했다.
늘, 촛점 밖으로 사라지던 나의 길은 창망(愴輞)하기만 했던 세상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언제나 보이는 것에만 익숙했던 내 영혼의 눈빛 때문이었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