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숨다 /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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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개로 인하여 슬퍼지기도 하고 결국 혼자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불투명한 안개를 걷게 하는 힘은 투명한 사랑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나를 비우는 곳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이겠지요.
비워진 내 안에 상대방을 채워넣는 헌신(獻身)의
힘이겠지요.
굳이 상대방과의 적당한 간격을 말하자면, 그건 아마도 존중과 이해의
공간이 되어야 하겠지요.
물리적 거리로서의 간격이 아닌, 사랑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통로가 되어야겠지요.
-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