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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書: 조윤하 선생님께
작성자 조윤하     게시물번호 -2102 작성일 2005-11-15 20:07 조회수 1125

김창한님,

 

용기와 격려로 주시는 말씀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깊게 품고

님의 건안과 건필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조윤하 올림



☞ 김창한 님께서 남기신 글


조윤하 선생님의 시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올리신 "책방의 추억"을 읽으면서 몇 번 댓글을 달려다가 망설였습니다. 선생님의 책에 대한 사랑과 애환이 글 한자 한자에 새겨져 있는 듯 하였습니다.

 

저도 책에 대한 추억을 몇 마디 하고 싶군요.

 

작년 여름,한국에 갔을 때, 약 두달 동안 서울에 있는 "유명" 헌책방 거의 모두를 돌았습니다. 어떤 분이 헌책방에 관한 책을 냈는데, 그 안내를 따라 책 순례를 다녔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헌책방이 무척 많더군요. 더운 여름 날 서울 거리를 혼자 배낭메고 다니면서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 때 헌책을 300 kg 이 상을 족히 샀으니....

 

밥값이 아까워서, 여기처럼 샌드위치로 도시락을 싸서 전철에서 혼자 먹거나 책 고르면서 먹곤 했었습니다. 낡은 책을 찾아 헤매는 남루한 저의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사지 않으면 휴지조각보다 못한 책들이 살아있는 언어로 생기를 되찾을 때의 감격은 남다르더군요.

 

선생님의 책방에 대한 추억은 어쩌면 책의 역사같더군요. 낡은 책 뒷편의 출판년도의 추이를 따라가 보면, 60-70년대의 개발독재, 80년대의 격동, 90년대의 새로운 사상적 조류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책과 함께 조 선생님께서 사셨으니 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다르실 것같군요.

 

제가 책을 찾아 돌아 다닐 때, 용산의 어느 서점의 아저씨는 갈 때마다 커피를 타 주시고, 낙성대 서점의 어저씨는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CNN을 틀어 놓고 계셨습니다. 그 옆에 새로 생긴 헌 책방에는 부자간의 정이 흐르고 있었고, 서울대 앞 녹두거리의 두 헌 책방에는 복제판 영어 원서들이 즐비하고, 사회과학책들이 줄을 이어 시대의 추이와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구마"라는 헌책방의 깊은 미로를 힘들게 돌아 다니노라면, 그 책들에 치여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외대근처에서 수제비 한그릇 먹고 몇 군데를 돌면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고, 독립문 근처의 간판없는 헌책방 아저씨는 인심이 참으로 후했습니다. 연대 앞과 홍대 쪽 헌책방을 걸어서 돌면 어느새 허기가 져서 움직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성대, 성신여대 근처까지 오면,이제 그만 돌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하철 3호선으로 연결되는 적지 않은 서점들이 있는터라 그 순례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책을 많이 산 날은 어깨가 지게짐 누르듯하여 참 힘든 날이었습니다. 길거리에는 유희의 소음이 공기처럼 탁해서 걷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동대문 근처의 헌책방 아저씨께 참 어리석은 질문을 했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헌채이 많이 나오고 많이 팔리지 않습니까?  

"아니요. 헌책도 돈이 돌듯 돌아야 장사가 잘되는 법이여!"

 

갑자기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산 헌 책방 순례기는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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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히려 "모든 책은 새책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헌책방의 책들은 시간을 견딘 책이고, 유통과정의 테스트를 견뎌 낸 것들입니다. 그러니 늘 새롭습니다.

 

우리의 삶도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내는 헌책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돈 많다고 뻐기는 속물도 아니고, 힘 세다고 뽐내는 정치가도 아닌, 평범한 삶 속에서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

그들에게 시간의 테스트를 통과시켜 주는 그런 만남의 장에서 산다면 이보다 더 훈훈할 데가 없을 듯하군요.

 

뵌 적은 없지만, 책을 사랑하시는 조 선생님 부부 두분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두손 모아

빕니다.

 

그리고 시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흔적을 다시 새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억과 망각의 어울림 속에서

회상의 언어는

우리 삶의 근원이자 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께 더욱 가까이

간다고 느낄 때마다

죽음이 저와 항상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절대자의 영역이고

그런 차안과 피안의 교차로에서

초월의 언어는 시인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잊음이 필요한 이에게는 망각의 언어를

망각의 세월에 고통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회상의 언어를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차안과 피안의

비시간적인 미적 공간을

시를 통해서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선생님의 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독자

김창한 올림

 

 

**************************************************

아래 글은 시인 조윤하 님께서 지난 5월에 올린 글입니다.

허락없이 퍼 올려서 죄송하지만, 잊지 않은 추억이 되길 바라면서 감히 올립니다.

**************************************************

 

 

 

*** 책방의 추억 ***

-조윤하

 

 

내 흘러간 세월 속에 책방의 추억이 단연 기니긴 시간의 띠로

내 허리를 감고 있다.

 

결혼을 하여 일년을 더 출판사 근무를 하던 중

노량진 언덕배기에 차린 신혼 살림에서

아침이면 시간에 맞춰 경사진 비탈을 뛰어 내려오던 출근 길,

급기야는 나도 모르게 들어 선 태중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으로

직장을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써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가난한 남편은 이제나 그 때나 책을 사 들이는 독서광이 였으며

줄 담배를 피우 듯 책을 연이어 읽었다.

그 결과의 산물이 우리들 결혼 당시의 신접살림은 허접한 가구

몇 점과 그와 내가 모아 놓았던 책장의 책무더기 뿐이었다.

 

그의 적은 봉급으로는 도저히 우리들의 미래의 꿈을 가꾸기엔 턱없는 부족함으로 내 부업을 설계하던 중

책방을 선택 1호로 꼽고 노량진 시장 좁은 골목에 작은 서점을

open 하였다.

 

후에 아들 셋을 낳아 이름을 三友書籍 이라 간판을 다시 갈아붙힌

이유는 이 책방이 나의 세 아이들의 더 없는 벗이 되어줄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이 커 가듯 조금씩 키워 온 서점이 대로변으로 나와

노량진 삼거리 코너에 번듯하게 자리 잡고 신림동으로 옮겨 온

서울대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70년대 유신체제를 거치는 동안

참으로 금서가 많았었다.

리영희교수의 8억인과의 대화며 신동엽전집, 한완상교수 저서며

김지하시인의 5賊과 셀 수 없이 많은 판금서적들로 수시로 서점을

뒤지며 책을 걷어가곤 했었다.

 

유신시대가 물러가는 동안 나라 살림이 조금씩 늘아가는

5공시절, 국민의 의식과 관심을 레저와 스포츠 방면으로

몰고 가면서 국민들의 독서량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고

입시를 돕기 위한 참고서 위주의 판매가 서점의 위기를

버텨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노량진 부근으로 몰려오는 유명학원들을

따라오는 수많은 서점들의 난립으로 오히려 굴러들어 온 돌들

오래 박힌 돌을 밀어내고 있어

급기야  17년의 오래도록 흘러온 강물의 고기 

수 만권의 서적을 출판사로 반품처리를 하며 정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나는 정리단계에 남겨 놓았던 몇 권의 책을

이민 보따리 속에 끼워넣어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을 키우며 서점을 작은 평수에서

제법 큰 서점으로 키워가던 그 시절이 참 아름답고 아득한 

추억으로 떠 오르곤 한다.

겨울이면 책방 한 가운데 벌겋게 타 오르던 연탄난로의

치열한 삶의 불덩어리를 잊을 수가 없다.

 

요즈음도 나의 남편은 여전히 많은 책을 사 들이고

독서로 밤을 패고 있다.

이따금 이곳 서점 챱터나 인디고를 따라가곤 한다.

내가 서점을 할때 꿈꾸던 분위기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보고 싶은 책을 뽑아들고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푹신한

쇼파에 깊게 몸을 묻고 몇시간 몇페이지 눈을 박아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커피향이 짙게 퍼지는 카페분위기도 곁드려 C D를 귀에 꼽고 클라식으로 부터 최신 팝송까지를

감상도 할 수 있는 책방,

그런 책방이 아니어도 작은 한국책방 하나쯤 아쉬워지는 것은

그 때의 추억이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오늘도  추억 한 줌에 젖어보는 싸늘한 봄밤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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