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8월 중순 쯤 제가 일하는 주유소 벤치에 앉아 차를
기다리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작은 종이에 메모한 후에 정리한
글입니다.
============================================================================================
20여년전,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에 내가 즐겨보던 TV 프로그램 중에 "TV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제목 그대로 문학 작품 특히, 중.단편
소설을 TV용 드라마로 각색한 후에 영상화 시킨 것인데 몇 몇 뛰어난 작품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중에서 아직도 기억이
남는 작품은 노인들의 황혼의 고독을 다룬 작품인데 제목은 잊었다.
작품의 초반에 두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빨간 차가 지나가는 군요"
"노란 차도 지나가는 군요"
....
독백처럼 앞만 보며 대화하는 장면은 아직도
인상에 남는다.
왜냐하면 TV 시청을 한 다음날, 친한 친구도 그 프로그램을 봤다고 해서 할아버지들의 대화를 바로 써먹은
거였다.
둘이서 학교 본관 앞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며
"빨간 티셔츠가 지나가는 군요"
"노란 가방도 지나가는
군요" 라며
낄낄대며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유독 그 장면만 더 생생한 것은 그 대사를 그 친구하고 몇
번이고 써먹었기 때문이리라.
TV에서 방영한 다음 날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우리는 툭하면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며
노인들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청치마가 꼬리치며 지나가는 군요"
"긴머리 처녀가 뛰어가는 군요. 지각이군요"
등등의 대화를 계속 만들어
써먹었었다.
지금 내가 일하는 주유소 벤치에 앉아 잠시 쉬노라면 No 1A 하이웨이를 씽씽 달리는 무수한 차들이 그 때의 대사를
다시 읊조리게 한다.
"빨간 FORD 트럭이 툴툴거리며 달리는 군요"
"오 예! 현대 엑센트가 보이는 군요"
난
그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되었다,친구가 되었다 그러면서 독백아닌 대화를 하며 혼자 웃는 것이다.
장소가 학교에서 캘거리의
NO 1A 하이웨이로,
인원이 친구와 나의 둘에서 나 혼자로,
대상이 여학생에서 다시 차로 바뀌었고
중요한 건 세월이 벌써
20년이 흘러 20대에서 40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아직도 차를 보며 낄낄대고 있다?
정말 우습지
않은가?
아니면 나야말로 그 "TV문학관"의 주인공 할아버지들처럼 그 나이가 되어서도 그럴것인가?
나는 남들이 열심히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보고만 있는 방관자인가?
남들은 좀 더 빠르고 좀 더 성공하려 발버둥치는데 난 그것에 장단만 맞춰주며 사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은 내가 바로 저 차를 모는 주인공인데 잠시 쉬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남들은 차를 타고 가는데 난 걷고
있는 것인가?
차를 보며 옛추억에 빠져 낄낄대다가 갑자기 철학적(?)사고에 빠져 헷갈리기 시작하자 머리가 어지러워
진다.
어지러워진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그 곳에 구름이 있다.
구름은 얼마나 멋지게 달려가는가, 아니
흘러가는가
또 하늘은 얼마나 아름답게 구름을 구경하는가.
주유소 벤치에 앉아 차를 구경하는 그 자세에서 눈의 각도를 1도만
높혀서 보면 바로 구름과 하늘이다.
그 1도의 차이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보는 것과 그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차만 볼 땐 옛 추억과 달리는 것과 성공 그리고 현재의 나를 생각하게 되지만
하늘을 보면 구름과
아름다움과 그리고 自然을 생각하게 된다.
달리는 차를 보며 어지러워지며 조급해졌던 마음이 눈을 들어 하늘 보니- 이건 찬송가
256장의 첫 줄 가사이다- 편안해지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달려가던,걸어서 가던 하늘을 향한 내 목표를 보고 꾸준히 가면 언젠가 이
땀방울들의 댓가를 알리라.
지금 이 곳 주유소에서 생전 처음 흘려보는 기름 섞인 땀방울들은 언젠가 이 곳 캘거리에서 나의 밑거름들이
되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시 편안해지고 하늘은 더욱 맑아지며 구름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사이에도 차들은 여러대 와서 기름을 넣고 갔다.
저기 넓다란 구닥다리 GM차가 오고 있다.
"하이"
"Fill it
up, Please"
"땡큐"
난 힘차게 gas gun을 잡고 한마디 느리게 중얼거린다.
"회색 지엠차가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