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야기
짧은 여름이 드리운 그늘 아래
서서히 나뭇잎들 흔들린다.
하늘은 무섭도록 깊어지고
끝 모를 설움이 날린다.
많은 것들이 떠나가고 있다.
피멍드는 가슴을 감추지 못하고
벌판에 어둔 구름 한점 고정된다.
바늘처럼 차갑게 번뜩이며
가슴에 한다발씩 빗살로 꽂히는 가을 비
잎새들 안간힘으로 팔랑댄다.
빛 좋은 자리마다 빼곡히 터 잡고
짐짓 먼 산 만 바라보는 침엽수
입 굳게 악다물고 저 홀로 사철 푸르다.
그 푸르름에 가리워
설 익은 채 맥없이 잎 떨구는 낮은 골짝
가난한 사랑이 훑고 지나간 뒤로
시리디 시린 이별의 깃발
바람 부는 데로 듬성 듬성 꽂힌다.
가지 말라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 만큼 치졸한 건 없다.
그만큼 간절함도 없다.
허공에 날리며 허우적 대는 손짓
텅 비어 투명한 빈손 이라서
목이 메어도 차마 숨죽이던 노래
어느새 하얀 서리 맞고 잦아 든다.
가을 이다.
떠남은 결국 혼자 남는 것
무게 없는 낙엽에 그렇게 써 있는 걸
그대, 울고 있는가
그대, 정말 떠나는가
(2004.09)